카페의 하루 일과표

외식경영 전공자의 외식업계 퇴사기 [카페, 4편]

by 투투

우리는 왜 배달의 민족인가

우리나라만큼 배달문화가

잘 된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해외여행 한 번 안 가봤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소비자로 있을 때는 이런 좋은 시스템을 개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막상 내가 서비스의 주체가 되었을 때는

배달 좀 그만 시켜-.

카페의 하루 일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원두의 품질도, 예쁜 라떼 아트도 아닌 배달업무다.


(출처:unsplash)

오전 업무: 배달 준비, 빵 포장

"배달의 민족 주문~" 오전에 출근하면 매장 전용 태블릿 pc의 전원을 켜고 전날 '품절'로 걸어뒀던 메뉴를 다시 '판매' 상태로 바꾼다. 그럼 채 5분도 안 돼서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첫 배달 주문이 들어온다. 카페에 근무하면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바로 이 배달 업무다. 중요한 만큼 손도 많이 가고 실수도 많다. 우리 카페는 베이커리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직원들이 직접 수량을 체크하며 일일이 배달 어플에 접속해 품절처리를 해야 했다.


곤란했던 에피소드는 매장에서 픽업하기로 한 케이크를 배달로 받겠다고 했던 고객이다. 원래 케이크는 배달이 안 된다. 배달 중에 형태가 찌그러질 위험이 아주 높기 때문에. 그 고객은 이런 위험을 본인이 다 감수하겠다, 지금 매장으로 음료 주문할 테니 같이 보내달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매뉴얼상 이건 안 되는 일인데.. 고객 스스로도 무리한 부탁인 걸 알면서도, 우리가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이렇게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진짜 물건이 파손돼서 가면 분명 말을 바꾸고 매장 탓을 할 게 뻔한데. 뭐, 어쩌든 내 잘못이 될 텐데. 정말 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기사님께 "이거 진짜 정말 중요하신 분 주문이라 죄송하지만 진짜 조심히 다뤄주세요" 라며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출처: unsplash)

똥 손은 어딜 가나 살아남기 힘들구나

오전에 들어오는 커피 주문은 대부분 아메리카노 아니면 라떼. 두 종류였고 수량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빵을 구매하는 손님이 더 많았기 때문에 오전 근무자는 빵 포장을 최대한 빠르게 해내는 능력이 필요했다. 손이 작고 느린 나에게 아침 빵 포장은 지옥이었다. 오전 근무자는 고작 두 명, 쏟아져 나오는 빵의 종류와 양은 어마어마했다. 아침에 모닝커피를 마시러 직장인들이 단체로 들릴 때는 산더미처럼 쌓인 빵을 보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느리게 하더라도 예쁘게 하면 몰라, 나는 느린 데다가 못생기게 포장해서 참 많이도 혼났다. 난 어렸을 때부터 리본 묶기나 머리 묶기, 가위질, 포장 등에 정말 손재주가 없었다. 여태 선물 포장할 일이 있으면 손재주 좋은 친언니에게 부탁해서 위기를 넘기며 살아왔는데, 여기에 와서 제대로 한계에 부딪혔다. 빵 외에 쿠키류나 원두를 구매하면 리본을 묶어줘야 했는데 포장이 느려 손님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은 적도 있다. 나중엔 곧잘 빠르게 잘했지만, 이에 관한 실수 에피소드도 한 번 풀면 끝이 없다.


*피크 타임*

(출처:unsplash)

오전에 포장 업무가 겨우 끝나갈 때쯤이 되면 하루 중 제일 바쁜 피크 타임이 다가온다. 간혹 아침에 손님이 너무 많으면 이때까지도 포장해야 할 빵이 남아있곤 했는데, 그렇게 되면 음료도 만들고 빵도 포장하면서 동시에 고객까지 상대해야 했다. 이때 누군가가 사무업무 때문에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게 되면 한 사람이 혼자서 모든 업무를 감당해야 했다. 피크 타임은 모든 업무가 짬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빵을 잘라서 포장해달라, 원두 선물 포장해달라, 음료 주문하겠다- 하는 고객들의 요구와 동시에 배달 서비스까지 함께 진행해야 했다. 제대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정확한 서비스를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바리스타로써 커피의 맛이라든지, 원두의 품질이라든지- 풉. 이런 건 생각도 못할 만큼 바빠지고 중요해지지 않는다. 그딴 것보다, 레시피의 정량대로 음료의 품질을 일정하게 나가는 게 우선이니까.


오후 업무: 마감 준비

짧고 굵은 피크타임이 지나가면 카페는 급속도로 한산해진다. 대신 그만큼 설거지와 청소 일거리가 늘어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는 미들 근무(오전과 오후 사이, 피크 타임 근무자)가 꿀 알바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마감이 더 나은 것 같다. 대부분 마감 근무자는 피크 타임 이후에 투입되고 점심만 바쁜 매장이라면 한산한 저녁에는 여유롭게 청소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마감 청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극도로 예민해져야 하는 피크타임보다는 나았다.

(출처:unsplash)

마감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온몸이 찌뿌둥하다. 카페는 주로 3교대를 이룬다. 오픈, 미들, 마감.

마감 출근자는 늦게 출근하는 대신 저녁에 내 시간이 없다. 외식업 특성상 주말근무는 필수고 한 달에 쉬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외식업 직종은 이렇다 할 복지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하루에 9시간 내지는 10시간 동안 근무하며 휴게시간은 1시간. 내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일을 위해 사는 건지. 어쩐지 다니면 다닐수록 주객전도가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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