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계, 퇴사합니다.

외식경영전공자의 외식업계퇴사기 [프롤로그]

by 투투
(출처: Unsplash)

퇴사했다. 취직한 곳에서 1년도 안 다니고, 새로 발령받은 곳에서 한 달을 채우지도 못 하고.

해마다 청년 실업률이 올라가고 있는 이 고용불안 사회에서 퇴사했다.

내가 매일 쓰는 커피 머신 부품 이름을 몰랐다는 이유로.


내가 가장 공들인 '외식경영 전공자'라는 모래성에 대해

취득한 순서대로 양식, 한식, 중식, 바리스타 2급, 1급, 외식경영 관리사, 푸드코디네이터 2급, SMAT 2급.

처음 요리를 시작했던 건 4달 만에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외식업을 꿈으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건 3년의 사춘기를 보내고 맞이한 고등학교 1학년 때. 3년 만에 칼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한 번에 취득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5번을 떨어졌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결국 나는 자격증을 취득해냈지만 스스로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난 손이 작다. 손이 작아서 큰 칼은 다루기 어려웠고 재료들을 제대로 잡지 못해 칼질이 일정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음식을 만들 때 즐거움도 알지 못했다. 아무리 화려한 조리기술과 멋진 셰프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요리학원에 다녔던 친구들처럼 쉬는 날엔 집에서 요리를 만들어 예쁜 그릇에 담아 SNS에 사진을 올린다든지, 여기저기 맛집을 다니며 '음식' 그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든지 등의 요리에 대한 애정이 내겐 일절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요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으로 참 잘 보여져 왔다. 이후엔 외식경영학과에 입학하고 조리 현장을 겪어보고 '요리사'는 맞지 않다고 판단,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에 입사했다. 대학교 졸업식은 출근하느라 불참했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오롯이 '외식업계' 단 한 분야만 바라보고 달려온 내게 이제는 재능이 꽃피울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하기 전까지는.


이상한 설렘이 있던 그날의 감정

퇴사 사유란에 매일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사용하고 관련 자격증까지 있다는 전공자라는 놈이 여태 사용한 기물 이름도 몰라서요.라고 적고 싶었지만 참았다. 맞다. 나는 커피 머신의 아주 작은 부품 이름 하나를 몰라서 퇴사하는 이 지경까지 왔다. 하지만 난 내가 그 기물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얼마나 이 일에 관심이 없으면 전공자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 카페 일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나보다 낫겠다. 그래, 나 이 일 진짜 안 좋아하고 싫어하나 보네. 이 상황과 문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인 설렘을 느꼈다. 이번에야 말로 이 일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

(출처: Unsplash)

사실 이름은 핑계고요, 계기가 필요했어요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거기엔 서로 일이 바빠서, 먼 해외로 가게 돼서-같은 그럴싸한 이유도 존재하지만 만날 때마다 같은 메뉴를 먹어서, 신발 벗어놓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 양말을 이상하게 벗어놔서 등의 머리가 띠용 하는 이유들도 존재한다. 어떤 이유로 헤어졌든 헤어진 연인들의 원인은 똑같다.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할 수 없어서'. 그럼 그냥 '마음이 식었다' 하고 헤어지면 되지 왜 이상한 이유를 늘어놓는 걸까? 그건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계기는 극복할 수 없는 강한 오점으로 보이기 시작하며, 노력하면 나아질지도 모르는 그 상황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만두고 싶었던 외식업계에게 내가 이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납득시키고 싶었다. 그게 뭐가 됐든 간에. 사실 이름이야 까먹을 수 있는 거고 다시 알면 그만 아닌가. 전공자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갖고 있는 자격증은 그냥 나 말고 국가에서 '이 친구 대충 그 일을 알고 있긴 하대요-' 딱 이 정도의 신빙성을 실어주기 위해 발행해준 표일 뿐인데. 그냥 나에겐 계기가 필요했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었던 외식업계를 이제 그만두고 싶어서. 질려버린 외식업계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두 번째 십 대 시절을 맞이하며

(출처: Unsplash)

나는 카페에 취직하기 전에 조리 현장에서 일했고 취직 전에, 외식경영 전공자가 되기 위해 '입시 요리'를 준비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외식업 분야에 핸디캡(자신에게 특별히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이 많던 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도, 현장에서 일을 할 때도 언제나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학원 다니면서 많이 듣던 말이 '네가 달리고 있을 때 네 친구들은 날고 있다' , '지금 네가 이렇게 쉴 때 네 친구들은 요리 영상 하나 더 보고, 자격증 하나 더 준비한다'라는 식의 당근보다 채찍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나라 입시 특성상 학생이 진득하게 한 꿈을 추구하지 않고 여러 꿈을 갖는 것은 문제가 된다. 학생 때 꿈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거고 바뀌어야만 하는 건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참 바보같이 요리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진짜로 좋아하는 것들은 단지 '재능이 없다'라는 편한 핑계를 대면서 무시해 왔다. 정말 바보 같다. 요리는 뭐 재능 있어서 오래 했나.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제일 최근에 한 퇴사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젠 영영 돌아갈 일 없는 외식업계에서의 퇴사. 내 엉성한 꿈으로부터의 퇴사. 어쩌다보니 다시 하고 싶은 게 없고 뭐 해야할지 모르는 막막한 십 대 시절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새 길을 걸을 준비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외식업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걸어온 나의 모든 과정을 담아, 탈출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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