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의미
어느 날, 이서가 말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존재야.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해.”
모든 제자들에게 한 말이었지만, 강률은 자기를 콕 집어 하는 말처럼 들렸다.
“자기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 생각, 그것을 통해 겉으로 나오는 행동, 하나하나 분석해야해. 처음에는 그 분석이 힘들고 어렵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다른 생각에 빠지고. 그래도 해야 해. 호흡 수련으로 에너지체를 만든다고 해도, 신성을 갖춘 의식이 없다면 의미가 없어.”
그때 강률을 괴롭게 하는 건 스승님에 대한 연정이었다.
‘난 왜 밤마다 스승님을 품에 안는 상상을 할까?’
여자에게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었다. 아무리 예쁜 여자가 보여도 그냥 한 사람으로 인식했었다. 스승님은, 본인 스스로가 여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든 인간이 깨어나길 바라는 영성지도자가 유일한 정체성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여인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성의 눈이 아닌 본능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를 향한 갈망을 품었을까.’
아무리 분석하려해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스승님의 말대로 분석은 힘들고 어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드러눕는 순간, 스승님의 애정 가득 담긴 눈이 허공에 떠올랐다.
“아!”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수개월 동안 그의 가슴을 막았던 체증이 확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 답을 찾았다.
사랑으로 가득했던 눈.
강률은 자신의 엄마에게도 그런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기대에 차지 않은 아들에게 향한 눈은 한심과 원망이 어려 있었다.
환상 속에서 스승님의 알몸을 끌어안고 있어도 강률은 그 몸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오직 자신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두 눈만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본 적 없었던 따뜻한 눈빛, 스승님의 인류애를 강률은 이성적인 사랑으로 꿈꾸었던 것이다. 혈기왕성한 나이라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이 강률이 떠올릴 수 있는 변명이었다.
몇 개월이나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의 원인을 깨닫자 세상이 다 환해 보였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우주에게 용서 받은 느낌에 휩싸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제야 강률은 스승님이 말한 회개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됐다.
10년 전 그때, 스승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은 정리가 됐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오늘 밤, 정리된 게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낮에 이서가 나다니엘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자신의 마음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여전히 불 켜진 이서의 창문을 보며, 저 방 안에서 둘이 뭘 하는 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몰래 가서 들어 볼까?
강률은 육체에서 ‘에너지체’를 분리했다. 2년 전 죽지 않는 육체를 완성해냈다. 모두가 잠 든 새벽 2시에 강률은 숙소 밖으로 이동했다. 콘크리트 벽은 그의 ‘에너지몸’을 막지 못했다. 땅을 밟지 않고 이동할 수도 있었다.
‘세상에! 이게… 가능하다고?’
그의 육체는 여기에 있는데, 동시에 없기도 했다.
첫 경험에 신나 선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교육관으로 가야겠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에너지몸은 그곳에 이동해 있었다. 육체는 생각한 후에야 움직인다. 하지만, 에너지체는 생각보다 빠른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몸은 생각도 하기 전에 스승의 방에 가 있었다.
이서는 이불 속에 바로 누워 있었다. 어둠은 에너지몸의 눈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강률은 낮보다 더 선명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극대화 되는 세상이었다. 그가 보는 이서도 나이가 없는 존재였다.
그때 이서가 눈을 떴다. 그녀의 육체 눈을 뜬 게 아니었다. 육체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이서의 에너지 몸이 육체와 분리돼 강률의 앞에 섰다. 이서는 강률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성공했구나.”
입을 벌려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텔레파시처럼 머릿속에 전달됐다. 강률도 대답을 생각으로 해 보았다. “네.”
“에너지 몸을 완성한 제자는 네가 처음이야.”
이서의 감정도 바로 강률에게 전달됐는데, 방에 함부로 침범한 것을 탓하는 건 없었다. 그녀는 강률을 기특해 했다. 그리고 걱정도 조금했다.
“사형들한테는 네 성취를 말하지 마. 알았지?”
“왜죠?”
“인간 본성엔 질투도 있지. 우리 선원에 질투라는 에너지가 묘하게 스며들길 원하지 않아.”
그리고 이서는 빙그레 웃었다.
“장하다, 강률아.”
그녀의 칭찬이 좋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그녀의 ‘장하다’는 말이 강률의 가슴을 데웠다. 그러나 그 따스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무언가에 의해 방 밖으로 내쳐졌다.
스승의 음성이 울렸다.
“다시는 남 몰래 내 방에 들어오지 말고.”
몰래 가서 염탐이라도 해 볼까, 하는 생각은 접었다. 에너지 몸으로 가보려 했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것이다. 스승님만 빼고.
‘저건 누구지?’
스승의 숙소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의 형체가 강률의 눈에 들어왔다. 주변을 살피다 몸을 숙여 창 아래로 가 쭈그리고 앉았다. 동공에 힘을 주고 자세히 보니 검은 형체는 ‘다연’이었다. 이상했다. 평소에 호기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안 보이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강률 만큼이나 나다니엘과 이서의 관계를 궁금해 하고 있었다. 강률은 물리적 육체에서 에너지체를 분리했다. 스승님을 염탐하는 다연을 염탐하기 위해 그녀에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