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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신경전

by 안이서

지하통로는 백 미터쯤 이어졌다. 아마 사형들도 이런 비밀통로가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를 것이다. 식당 창고 밖으로 나오니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차키가 없다!

그때였다. 주방 이모가 다급한 걸음으로 강률과 나다니엘에게 달려왔다. 강률을 본 순간, 이모의 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엄마야, 너… 몸이… 왜 그래?”

입을 열었지만, 상황이 급하다는 걸 알았는지 이모는 곧바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까 스승님이 내 차를 쓸 일이 있을 거라고 하시더라고.”

말을 마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지문을 찍어 차 문을 열었다. 차에 올라타는 강률을 보며 이모의 얼굴은 여전히 귀신이라도 본 듯 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 어둠을 가르며 차가 내달렸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강률은 에너지체로 물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없어 조수석에 앉았다. 나다니엘이 운전석에 있었다. 그러나 운전대를 잡고 있을 뿐, 실제 운전은 자율주행이 대신했다. 덩치 큰 그의 자세는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영상 속, 거대한 풍채를 쫙 펼치며 등장하던 그는 지금 어디에도 없었다. 범접할 수 없던 저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구부정하게 앉아 조심스레 핸들을 잡고 있는, 그저 한 남자일 뿐이었다.

나다니엘은 항상 이동할 때마다 서류를 손에 쥐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두 손을 어쩔 줄 몰라했다. 차는 고속도로에 들어섰고, 마침내 나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당신 발끝에서 뻗어나간 그 흰 줄은 뭡니까?”

귀에 꽂힌 번역기가 그의 말을 옮겼다. 강률은 나다니엘이 가리킨 것을 내려다보았다.

입을 여는 것조차 싫었다. 그의 숨결 하나하나가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침묵은 더 피곤할 것이다.

“생명줄입니다.”

입을 뗀 김에 덧붙였다.

“내 육체에 연결된 줄이에요. 이게 끊어지면 내 몸은 죽어요.”

나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엔 아직도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실감하는 표정이었다.

“수련하는 사람은… 다 이런 걸 할 줄 아나요?”

나다니엘이 손끝으로 흰 줄을 가리켰다.

“아뇨. 나만 성공한 겁니다.”

강률의 턱에 자부심이 실렸다. 너 따위는 평생 수련해도 절대 못할 거라는 조롱이 살짝 묻어났다. 나다니엘도 그 눈빛을 읽었다. 강률은 첫 만남부터 도전적인 눈이었다.

“우린 어디로 가는 건가요?”

강률이 물었다.

“인천. 내 비행기가 거기 있어요.”

나다니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서는… 어디로 온다는 거지요? 인천? 미국? 우리가 인천에서 기다려야 할까요?”

그 말에 강률도 문득 궁금해졌다.

‘스승님은… 어쩔 작정이시지?’

스승님을 떠올리는 순간, 가슴 안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노바리스 에테리아로 함께 떠나자던 말에 막연히 기뻤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저 인간 옆에 계신 스승님의 얼굴을 봐야 한다. 심장이 비틀리는 것 같았다.

“우리 스승님하고… 어떤 사이입니까?”

강률이 물었다. 나다니엘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그녀는…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맨 사람이에요.”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두 눈엔 먼 회한이 담겼다. 강률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 질투와 분노가 교차했다.

“쳇! 평생 찾아 헤맸다고? 웃기지 마십시오. 당신이 몇 번이나 결혼했는지 전 세계가 다 압니다!”

숨결마저 싫었다. 그 숨 속에 스승님의 온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강률의 분노는 한계점을 넘었다.

“왜… 왜 스승님은 당신 같은 바람둥이한테—!”

나다니엘이 곁눈질로 강률을 바라봤다. 미묘한 침묵. 눈빛만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이 녀석도 이서를 좋아했구나.’

서로의 가슴속 비밀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입은 닫혔고, 시선은 도로로 돌아갔다.

나다니엘의 눈앞에 이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눈으로 강률을 바라보던 그녀. 강률은 분명 그녀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이서, 강률—그들은 과학의 도움 없이 인간의 힘으로 한계를 넘어섰다.

‘과학의 끝은… 결국 영성인가?’

나다니엘은 생각했다. 약과 유전자 조작으로 젊음을 유지했던 자신의 삶. 하지만 그들은 영혼으로 영원을 갈구했다. 자신의 삶이 참으로 공허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마음속 어둠이 심장을 천천히 먹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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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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