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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밤

다시 이별

by 안이서

이번 생에 자신의 처녀성을 내 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나다니엘의 품안에서 감정적인 황홀함을 맛보았다. 육체는, 아리고 아팠다. 황홀과 비통, 해방과 포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녀의 첫 경험은 그랬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경험이 될 지도…….

상황이 급박하기는 했지만, 그 밤 두 사람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긴장이 풀린 나다니엘에게 피로가 확 밀려왔다. 그는 이서를 꼭 끌어안고 두 눈을 감았다.

“나 잠깐만 잘게. 아주 잠깐만.”

하지만 이서는 그가 자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옷을 입었다. 그녀의 행동에 나다니엘이 당황하며 쳐다봤다.

“당신은 이제 떠나야 해요.”

이서가 나다니엘의 속옷을 입히며 말했다.

“당신은?”

이서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나다니엘이 물었다.

“나와 같이 가기로 했잖아.”

이서는 나다니엘의 옷을 가리키며 빨리 입으라고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다니엘은 이서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주민들이 에덴스아크에 탑승해 있다는 거 알아요.”

일급비밀 사항인데 어떻게 알까? 이서도 그 사실을 아는지 둘만 있는 공간인데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말했다. 삼천 명의 이주민들은 우주선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려고 이미 터를 잡았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나다니엘이 물었다. 이서는 목소리를 낮추라고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셔츠를 입혀 단추를 채우며 다른 질문을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륙할 수 있는 거지?”

나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는 잠시 다른 것에 집중하는지 눈동자가 한 쪽으로 쏠렸다.

그 사이 정말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 챈 나다니엘이 옷을 입었다.

[에덴스아크 쪽은? 준비 중이래? 아직 여기 있어. 언제 떠나는지는 얘기 없었어. 대장은 얼마나 걸리는데? 30분?]

30분. 다연의 통화내용을 들은 이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나다니엘의 푸른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불길한 느낌이 나다니엘을 덮쳤다.

“나 혼자 가지 않을 거야.”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곧 뒤따라갈게.”

이서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듯 나다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이서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이번에는 절대 당신 혼자 두지 않아.”

팔을 풀고 그의 두 눈을 응시했다.

“알았지?”

그리고 이서는 텔레파시로 말했다.

[강률아, 밖에 있는 거 알아. 안으로 들어와.]

강률의 에너지체가 이서의 방으로 들어왔다.


강률은 순식간에 방 안을 훑었다. 침대보 위에 번진 붉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분노인지, 좌절인지, 배신감인지, 감정이 밀려들었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것들이. 에너지체 전체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공기가 서늘하게 식었다.

강률은 눈을 들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순간, 이서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맑게 울렸다.

“강률아, 나다니엘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


나다니엘의 눈에는 이서가 허공에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서는 허공에 다시 말했다.

“강률아, 우주의 에너지를 너에게 끌어 모아. 그럼, 에너지체가 물질화 될 수 있어.”

잠시 후, 강률의 형상이 투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비상식적인 현상을 본 나다니엘은 충격에 휩싸였다. 상황이 긴박한 와중에도 수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뭐지?’

‘수련만으로 이런 성과를 만들 수 있는 거야?’

‘왜 이들은 나와 동떨어진 존재로 느껴지지?’

자신과 한몸과 같았던 이서가 순식간에 먼 존재로 느껴졌다. 그는 이서를 보았다. 이서는 나다니엘을 보지 않았다. 강률을 보고 있었다. 시선이 다른 남자에게 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다니엘의 마음에선 질투심이 일어났다. 게다가 이서의 눈은 ‘지금 믿을 사람은 너 뿐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다니엘은 눈을 강률에게 돌렸다. 강률도 이서의 말을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강률아, 나다니엘을 미국까지, 에덴스아크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가야 해. 알았지? 그리고 같이 그곳으로 떠나.”

그 말에 강률의 마음에 희미한 기쁨이 번졌다. 스승님은 자기를 두고 가버릴 생각이 아니었다는 뜻이니까.

“스승님은요?”

강률이 물었다.

“난 지금 갈 수 없어. 이곳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어. 아르마게돈이 조만간에 대규모로 움직일 거야. 에덴스아크에 도착하자마자 이 땅을 떠나야 해.”

이서는 침대를 옆으로 밀었다. 그때 강률의 눈에 붉은 사랑의 흔적이 다시 들어왔다. 나다니엘을 향한 미움이나 스승님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는 건 뒤로 미뤄야 하는 게 분명하다.

침대 아래 숨겨진 비밀 문을 올리니 지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걸려 있었다.

“이 아래를 지나가면 식당 창고 위로 올라가게 돼 있어. 식당 뒤에 주차된 차를 타고 가.”

이서의 말대로 강률이 먼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나다니엘은 다시 한 번 이서의 팔을 잡았다. 이서는 자기를 믿으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나다니엘도 강률의 뒤를 따랐다.

비밀 문을 닫고 침대를 제자리로 옮긴 이서. 갑자기 적막이 몰려왔다. 이서는 텅 빈 방의 가운데에 섰다. 벗어나지 못한 그의 온기가 아직 공기 속을 떠돌았다. 외로움이 그녀의 영혼을 물들였다. 나다니엘과 함께 했던 짧은 시간들이 방안에 배어 있다. 이서는 천천히 그 공간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침대에 묻은 흔적이 보였다. 그 흔적이 이서의 심장을 무자비하게 찔렀다. 그립다, 그립다, 그립다……. 그의 온기가 사라지지 않은 이 방, 견딜 수 없이 그립다.


하지만, 이서는 다시 힘을 냈다. 둘만의 흔적이 남은 이불을 곱게 개어 침대 위에 올리고, 그녀는 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아르마게돈이 도착하기까지 몇 분의 시간이 있다. 이서는 제자 강률을 떠올렸다.

‘달…….’

처음 강률의 전생이 보였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그림자 같은 존재. 그 옛날 인간들에게 신으로 군림하고 싶어 하던 달은 왜 지금 강률로 다시 나타난 걸까? 기억이 지워진 채.

그 옛날 신족은 불사의 존재였다. 지금도 그들은 죽지 않는다. 스스로 인간의 삶을 경험하겠다고 한다면 신족의 기억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이서처럼 말이다. 아니면, 죄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해 기억이 지워진 채 인간의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 지금 강률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기대 이상으로 잘 하고 있었다.

‘어쩌면 전생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 삶을 통해 회개하려고 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믿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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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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