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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임무

신성을 드러내다

by 안이서

이서는 육체에서 빠져나와 제자들의 숙소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 잠든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에너지체를 목격한 제자들은 하나같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밤, 이 산을 넘어야 해.”

이서는 질문할 틈도 주지 않고 앞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은 지면에 닿지 않았다. 허공에 살짝 떠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제자들은 당황하면서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첫째 제자가 이서의 옆으로 다가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승님의… 에너지체입니까?”

“응.”

“그럼… 육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 침실에.”

제자는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말끝을 흐렸다. 상황 자체가 현실감 없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런 마음을 읽은 듯, 이서는 제자들 모두의 머릿속에 직접 목소리를 울렸다.

『곧 아르마게돈이 들이닥칠 거야. 그들의 목표는 나다니엘과 나지만, 너희들도 안전하지 않아. 아니, 분명히 위험할 거야. 그들은 누구도 살려두지 않을 테니까.』

이서는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육체를 두고 이렇게 에너지체로 나타난 건, 너희가 앞으로 성취해야 할 호흡 수련의 궁극적인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서야.』

텔레파시로 전달된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단단했지만, 제자들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시지 않았다. 아르마게돈—그저 뉴스 속의 과격 단체일 뿐이었다. 설마 자신들과 이렇게 엮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다니엘 때문에 우릴 습격하는 건가요?”

누군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자들 모두 알고 있었다. 아르마게돈의 목표가 나다니엘이라는 사실은. 하지만 의문은 남았다. ‘그들이 어떻게 나다니엘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았지?’

제자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설마… 우리 중에 첩자가 있는 건가?’

그때, 또 다른 제자가 다급히 소리쳤다.

“스승님! 강률하고 다연이가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 멀리서 여러 대의 차량이 들이닥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늘한 밤 공기를 가르며 헤드라이트 불빛이 언덕 아래를 환히 밝히기 시작했다.

이서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멈추지 말고 이 산을 넘어가. 산 중턱에 암자가 하나 있을 거야. 암자 옆에 있는 불상을 옆으로 밀면 동굴이 열릴 거다. 다들 그곳에 몸을 숨겨. 내가 곧 따라갈게. 이따 다시 만나자.”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고, 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서는 자신의 육체로 돌아갔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다연을 회개의 기회로 이끌어야겠다는 생각, 아르마게돈이 신의 이름으로 죄를 짓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지구에 남겨질 제자들에게 수행을 멈추지 말라고 독려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동시다발로 떠올랐다. 그리고.

‘나다니엘과 강률은 잘 가고 있을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늘 밤 벌어질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리는 다 됐다.


아르마게돈 동지들의 차가 여섯 대나 들어왔다. 차례로 세워지는 차를 보고 다연은 적잖이 당황했다. 나다니엘 한 명 납치하는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왜 필요할까, 싶었다. 그리고 납치라면 소리소문없이 침입해야 할 텐데, ‘너 잡으러 왔다!’고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꼴이지 않은가. 휘둥그레진 눈을 굴리며 얼떨떨하게 서 있는 다연에게 총을 든 대장이 물었다.

“나다니엘은 이 안에 있어?”

물론이다. 스승과 함께 이 방으로 들어간 후 줄곧 감시했었다.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연은 거칠게 움직이는 대장의 팔을 잡았다.

“이 많은 사람들은 다 뭐야?”

다연의 손을 뿌리치며 대장은 시궁창에 빠진 듯 불쾌한 표정으로 선원 전체를 둘러보았다.

“여긴 악의 소굴이야. 신을 욕보이는 잔챙이들이 먹고 사는 곳이지. 싹 다 없애 버려야할 바퀴벌레들.”

출동 전에 계획을 짜 둔 것처럼 다른 동지들도 착착 움직였다. 차 한 대가 수련동으로, 두 대는 제자 숙소로, 한 대는 식당으로 향했다. 남은 한 대에서 내린 네 명의 동지들은 나연의 숙소에 총구를 대고 자리를 잡아 섰다. 대장의 눈에 빈틈없이 들어찬 살기가 다연에게 사형들의 맑은 눈을 떠오르게 했다.

대장이 바퀴벌레라고 했던 그 사람들은 모두 다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자기 안에서 울리는 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신의 뜻인 양심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신의 뜻이 어떠한지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해 이성의 언어로 표현하려 애쓴다. 왜냐하면……,

다연은 그제야 자신에게 ‘영성’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승님과 사형들이 수련과 함께 속세의 공부를 한 이유는

‘영성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신의 뜻인 양심을 설명하기 위해서’

였다. 이 사단이 나고 나서야 이 단체를 이해하게 됐다니!

다연의 속이 갑자기 울렁거렸다.

“설마, 다… 죽이겠다는 거야?”

대장은 대답 없이 다연을 밀치고 문을 총구로 부순 뒤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다연도 재빨리 따라 들어갔다.


이서는 침대가에 바르게 앉아 쳐들어 온 대장과 다연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이 순간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서와 눈이 마주친 다연의 온 몸에 소름이 와르르 돋았다.

‘내가 첩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도대체 언제부터?’

대장이 총구를 이서에게 향하며 물었다.

“나다니엘은?”

대장에게 향한 이서의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꼭 그의 영혼을 심판하는 것처럼 단호한 빛이 서늘하게 뿜어져 나왔다.

“너에게 신은 어떤 존재인가?”

이서는 그의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했을 뿐이었다. 다연이 느끼기엔 그랬다. 하지만, 대장은 이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의 정신을 뺐는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표정이었다. 그는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들 주며 다시 물었다.

“요망한 혓바닥 놀리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나다니엘 어딨어!”

“너는 너와 분리된 어떤 존재를 유일한 신으로 칭하고, 그 신에게 인정받으려 살생을 행한다.”

“시끄러! 나다니엘 어디 있냐고!”

대장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차분하게 흘러나오는 이서의 목소리에 다연은 짓눌려 버렸다. 자기들이 지금까지 진리하고 믿었던 무언가가 산산이 깨질 것 같은 두려움이 훅! 밀려왔다.

“우주를 창조한 전지전능하신 그 신. 네가 믿는 그 신이 우리와 분리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에 연결돼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넌 길가의 꽃 한 송이도 꺾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대장의 총구에서 총알이 다발로 발사됐다. 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려 했는데, 불같은 화가 입으로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흘렀다고 치자. 얼떨결에 방아쇠에 얹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버렸다.

다연이 놀라기도 전에 스승의 몸에서 붉은 피와 살점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대장에게 ‘뭐하는 짓이야! 이건 아니잖아!’라고 외치고 싶은데, 목구멍이 막히고 혀가 마비되는 광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바닥으로 고꾸라진 만신창이 스승의 육체 너머에 반투명의 온전한 스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대장의 총소리가 신호라도 됐는지 사방에서 총소리와 욕지거리가 울렸다.

“스…” 다연은 숨을 크게 토해내고 나서야 다음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승님.”

대장은 얼빠진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며 총을 몇 발 더 쐈다. 대장도 떨고 있었다. 그 떨림에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서의 에너지체는 침대에서 일어나 미끄러지듯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먼저 대장에게 물었다.

“네 눈에, 나는 인간이냐? 신이냐?”

대장은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서가 스스로의 존재성을 밝혔다.

“나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성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너에게 구원은 무엇이냐? 죽은 후 천국에 가서 영원히 아름다운 것들만 누리는 것이냐?”

대장은 여전히 벌어진 입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그것을 믿었을 것인데, 지금은 의문이 드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본 이서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연은 죄책감에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붙들린 것처럼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다연을 보는 스승의 눈에 책망의 빛은 없었다. ‘그저 너는 너의 순리대로 움직였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다연아, 나는 네가 내 가르침대로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는 지금 네가 본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해라. 지금 나의 이 몸이 인간이 궁극적으로 얻어야 하는 영생의 몸이다.”

다연의 온몸이 두려움과 경외로 흔들리듯 떨렸다.

“그 영생의 몸은 어떻게 얻는 건가요?”

이서가 미소를 지었다.

“수련 내내 이야기 했건만, 너는 일도 관심이 없더구나.”

그리고 두 사람에게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이서의 에너지체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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