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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우주 속으로

by 안이서

육체는 죽었다. 몸과 연결이 끊어진 이서는 주변의 소음이 점점 커지고 다채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현재 발생되는 세상의 모든 정보가 한꺼번에 그리고 줄기차게 에너지체에 흡수되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수많은 파동과 정보들. 고통이었다. 쏟아지는 소음을 막기 위해 이서는 무의식적으로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서는 나다니엘에게 집중해 보았다. 그는 자신의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집중했다. 동굴 안에서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나약한 영혼들이 느껴졌다. 지금 이서가 가야 할 곳은 제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너희들과 함께 하는 기간 내내 얘기했었지. 인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이다. 너희는 지금까지 잘 해 주었어. 다만 아직 에너지체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구나. 이제는 호흡 수련에 집중해 보자.”


십수년을 해 왔던 수련이라 제자들은 곧 임계점에 도달해 며칠 만에 모두 에너지체를 만들어 냈다. 이제 이서는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너희들은 세상으로 나가 새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을 사람들에게 보여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양심과 에너지체를 성취하도록 도와주어라. 그것이 너희가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난 이유이다.”

“스승님은, 떠나실 건가요?”

한 제자가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서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에너지체를 없애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항상 연결돼 있다. 너희 앞에 있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느낄 수 있어.”


사랑하는 제자들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서로 아끼고 의지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번 삶에서 이서의 임무는 완성됐다. 해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엔 나다니엘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다. 이서는 바로 그가 있는 우주선으로 이동을 했다.


우주선은 광활한 우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스, 승님….”

생각지도 못한 이서의 등장에 강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맞았다. 그리고 바로 당황한 에너지가 온몸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가 내뱉는 에너지 정보. 그것만으로도 이서는 나다니엘이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과거의 정보들에서 이서는 나다니엘의 마지막을 보았다.

강률은 얼른 자기에게서 퍼져가는 에너지를 끌어들여 압축했다.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나는 찜찜함을 누를 수는 없었다. 그는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

이서는 두 눈으로 말했다.

[너는 너의 일을 했구나…….]

타박도, 원망도 아닌 강률에 대한 모든 감정을 내려놓은 시선이었다. 그 시선에서 강률은 자신이 이서에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됐음을 느꼈다.

“스승님……. 제 잘못이 아닙니다. 전 정말 다 죽은 줄 알았어요.”

강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안다. 다만, 죽은 줄 알았던 건 5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후에는 바로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강률은 나다니엘을 향한 원망을 거두지 않았었다.

“강률아, 난 너를 원망하지 않아. 그저, 우리의 인연은 여기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나다니엘은 스승님이 노바리스 에테리아에서 영성 지도자가 되기를 원했잖아요.”

강률의 목소리는 떨렸다. 스승에게 버림받을 거라는 두려움이 그를 압도했다.

“이 번 생에 내 임무는 인간이 신성을 발현하도록 돕는 일이었어. 나는 그 일을 해 냈고.”

이서는 잠시 전생을 떠올렸다. 인간들 위에 군림하려 했던 달의 모습. 아마 신은 달에게 영성 지도자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이번 삶을 계획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임무가 달에게는 회개인 것이다.

“강률아, 노바리스 에테리아에서의 영성 지도자는 네 몫인 것 같아.”

“스승님은 절 떠나시려고 합니까?”

강률의 에너지체가 흔들렸다. 눈물 없는 울음이었다.

‘내가 네게 미안해해야 할까?’ 이서는 생각했다. 전생에 달로 인해 목숨을 잃었던 서루를 생각하니 미안해 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이서의 에너지체는 우주 밖으로 나갔다. 어둠 속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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