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타락
30년 후. 노바리스 에테리아
인간들의 타락
강률은 행성의 반대쪽에 있었다. 반대라는 방향성은 에덴스아크의 위치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지구에서는 이 행성을 ‘노바리스 에테리아’라고 명명했는데, 정작 이곳에 온 인간들은 ‘새지구’라고 부른다. 크기는 지구보다 살짝 크다고 들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강률은 피식 웃었다.
‘행성의 크기가 뭐가 중요할까? 어차피 인간들은 번식을 못하는데.’
삼천여명의 인구로는 이 행성을 정복할 수 없다. 이 행성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밤이다. 큰 달, 작은 달, 큰 달은 밝고, 작은 달은 거리가 더 멀기 때문에 시큰둥한 밝기다. 그래도 정답게 겹친 날이었다. 인간들은 두 개의 달이 겹치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더 우울하다나? 화가 나기도 하고, 책임감 없는 짓을 저지를 확률이 높아지더라고 사회학자가 말했었다. 강률은 그 사회학자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천 명의 인간관계에 사회학자의 광범위한 관계 지식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열세 명은 이주 전에 임신한 여인들이 우주를 이동할 때 낳은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지구에 대한 기억 자체가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 태어난 귀한 생명들이지만, 강률은 그들에게 영~ 정이 붙지 않았다. 워낙 귀한 아이들이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우쭈쭈’ 거리며 상전처럼 대하니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열세 아이 모두가 버르장머리가 없는 건 아니다. 대여성명 정도?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너무 짙어 그들이 근처에 오면 강률의 에너지체는 소름 돋듯 삐죽삐죽해졌다.
강률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들 따위를 생각하느라 겹친 달밤의 고즈넉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는 광활한 호수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발아래 반짝이는 모래들. 겹친 달의 중력으로 좀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파도. 물 마시는 사슴. 사슴의 콧등과 목에서 은은한 빛이 흘렀다. 지구의 사슴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강률은 그냥 사슴이라고 불렀다.
강률은 이동의 한계가 없기 때문에 이미 행성의 곳곳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주친 생명체들의 이름을 만들어 불렀다. 지구의 생명체 중 비슷하게 생긴 것들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 주었다. 사슴, 뱀, 쥐, 바퀴벌레, 침팬지……. 이름을 붙이면서 가슴 안쪽에서 미묘한 감정이 올라왔는데 뭐랄까, 자신이 창조주가 된 것 같은 전능함? 아니다, 그건 너무 앞질러 간 것 같다. 최초의 인간으로 다른 동식물의 주인이 됐던 아담? 강률은 자신이 이 행성의 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 아름다운 행성의 주인.
강률은 빛나는 모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구처럼 달빛을 반사하는 게 아니다. 노바리스 에테리아의 암석은 어떤 형광물질이 포함돼 있어 스스로 빛을 냈다. 암석의 종류에 따라 다른 빛을 냈다. 암석이 부서진 모래들은 한데 어우러져 오색의 빛을 냈다. 황홀함에 싸이게 하는 빛이다.
형광물질은 생명체에도 있다. 땅을 기는 동물, 걷는 동물, 하늘을 나는 동물 모두 해가 지면 신체 특정한 곳에서 빛이 흐른다. 강률은 그 현상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어두운 밤에 몸에서 빛을 내면 천적을 유인하기 더 없이 좋지 않겠는가. 왜 생존에 도움이 안 되게 진화했을까? 그 답은 얼마 안 가 얻었다.
이 행성의 동물들은 죽어서 빛을 잃은 동물만 먹었다!
빛이 없는 식물을 먹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강률은 전율이 올라올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자아개념이 없는 동물에 불과한데도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얼마나 품위 있는 생명체들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어요. 이미 신과 같은 존재가 됐는데, 영성 수련? 하하하! 그런 게 왜 필요하죠?”
인간들은 인간으로 남기로 했다. 신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동물적 본성을 즐기는 인간으로. 강력한 지도자였던 나다니엘이 죽은 후 에덴스 아크의 인간 사회는 규율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규율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너무도 쉽게 타락을 선택했다.
“타락? 우리가? 도대체 당신이 뭐라고, 무슨 기준으로 우리를 타락했다고 하는 거지?”
나다니엘의 첫째 아들로 현재 지도자 중 한 명인 레이지가 강률에게 반박했었다.
“타락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거야.”
어느 날은 에덴스 아크 정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남녀가 강률의 바로 옆에 앉더니 갑자기 섹스를 하는 거다. 여자는 도전적인 시선으로 강률의 에너지체를 위아래로 훑더니
“넌 이런 재미도 못 보지? 유령, 귀신같아. 소름끼치게 음습해.”
라고 말했다. 남자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강률은 천천히 일어서며 덤덤하게 대응했다.
“당신들은 소름끼치게 천박하고.”
겹친 달밤의 낭만을 즐기고 싶었는데 갑자기 인간들 생각이 나 기분이 더러워졌다. 떨쳐 버리자. 그는 에너지체이기 때문에 몸을 눕힐 침대나 허기를 채울 음식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그건 굳이 에덴스아크로 돌아가 볼썽사나운 인간들 속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는 자유로운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