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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만남

학살의 현장

by 안이서

달빛 하나 들지 않을 것 같은 울창한 숲이 나왔다. 식물은 바위와 달리 빛을 내지 않아 더 어둡다. 상관없다. 강률의 눈은 보려고만 하면 잎맥에 흐르는 수액까지 훤히 볼 수 있으니까. 숲을 천천히 배회하는 그의 옆에선 외로움이 동행했다. 강률의 영성이 낮을 때 외로움은 고통이었지만, 영성이 깊고 넓어진 지금은 우아한 친구로 변했다. 외로움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내면의 세계에 가 있던 강률의 의식을 외부로 돌렸다. 강률은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무 사이로 간간히 스치는 빛의 파편들. 한 유인원이 무언가를 경계하듯 이동을 멈추고 나무 뒤에 숨은 것 같았다. 가슴이 볼록한 것이 유인원은 암컷이었다. 콧등, 귓바퀴, 목에서 앙가슴까지 퍼져있는 형광빛. 유인원은 나무 뒤에 숨어 맑고 파란 눈알을 사방으로 굴렸다. 극단의 공포 기운이 전해져왔다. 이 별의 생명체는 살아있는 무언가를 경계하는 일은, 강률이 알기로 없었다.


‘뭐에 저렇게 겁을 먹은거지?’


강률도 유인원의 옆으로 스르르 가서 그것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같이 살펴보았다. 이쪽? 아무 것도 없다. 저쪽? 거기에도 없다. 왼쪽? 없지. 오른쪽? 강률은 오른쪽도 확인하고 유인원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그것의 시선이 정확히 강률에게 꽂혀 있었다. 설마……. ‘내가 보일라고?’ 강률은 가장 기본적인 상태였다. 에너지를 더 끌어 모아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


“네 눈에 내가 보이는 거니? 설마 내가 널 그렇게 두렵게 하는 거야?”


강률은 텔레파시로 물었다. 유인원은 ‘아갸갸갸갸갸갸~~~~~~!’라는 의성어를 냈지만 강률이 느끼기엔,

‘어매, 이 생물은 뭐다냐? 눈깔에 훅 들어와버렸네잉… 으찌 이리 이~쁘다냐.’

라는 의미였다. 우주의 전능한 정보가 통역기처럼 작동한 것이다.


푸하하하하하하! 강률은 웃음이 터졌다. 한동안이나 하하하하하하하하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게 얼마 만에 겪는 사심 없는 웃음이란 말인가. 웃음을 멈춘 강률은 유인원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맑은 두 눈에 강률에 대한 감탄과 그 전에 겪은 공포가 공존해 있었다.


우주의 정보는 느낌의 보따리처럼 툭 떨어진다. 느낌의 보따리를 풀어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는 일은 정보를 받은 자의 몫이다. 유인원의 ‘아갸갸갸갸갸’를 강률이 해석한 방법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나를 볼 수 있지? 지금 내 에너지체는 보이지 않는 상태일 텐데?’

라는 의문에 방금 강률이 받은 정보는,

이 유인원들은 아직 전두엽의 발달이 미미한 상태라 본능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내용이었다. 전두엽이 발달한 존재는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면 두 눈이 있어도 못 보는 것들이 있다. 전두엽에서 정보 입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으니까. 본능, 느낌, 직감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률이 그것에게 보였다.


‘그런 거였구나.’ 이해를 한 강률은 정처 없기는 하지만, 가던 길을 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유인원이 품고 있는 공포는 처음 보는 생명체인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될 수 있으면 빨리 그 유인원에서 멀어지려고 서둘렀다. 그런데 뒤에서 부시럭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유인원이 강률을 따라오고 있었다.


“가. 네 친구들 찾아서 가.”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유인원의 발자국 소리도 여전히 들렸다. 강률은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아갸갸. 아갸갸. 아갸.”

[여긴 너무 어두워. 무서워. 내 친구들 다 죽었어. 무서워.]


강률이 고개를 갸웃하자, 유인원도 따라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유인원이 자기 말을 이해하고 아갸거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강률은 의심하면서도 물어보았다.


“친구들이 다 죽었다고?”


유인원은 강률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손으로는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아!’ 유인원도 느낌으로 강률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챘다. 이번에는 강률이 유인원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 숲 언저리에 도착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두 개의 달 중 하나는 지평선으로 넘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남은 달 하나는 산등성이에 걸쳤다. 뿌옇게 퍼지는 햇살에 유인원의 친구들 모습이 드러났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잔인하게 난자된 수십 구의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충격이 덮쳐 강률의 에너지체가 일렁이듯 흔들렸다. 자기를 데리고 온 유인원을 보니 그것은 사체들의 반대 방향에 엎드려 고개를 두 팔에 파묻고 부들거렸다. 밤에 처음 발견했을 때 보다 환할 때 보니 더 처참했던가보다.

유인원들의 살을 베어 벌린 것은 정교한 기술이 들어간 무기가 분명했다. 아주 깔끔하게 베여 있었다. 노바리스 에테리아, 새 지구. 이 행성에서 이처럼 섬세한 기술력을 가진 존재는…….

강률은 방금 자기 머릿속에 날카롭게 꽂힌 생각을 떨쳐버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눈이 받은 충격이 좀 가라앉은 후에는 코로 불쾌함이 밀려들었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한 것이다. 숲 곳곳에서 먹이의 냄새를 맡고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물들의 주린 배는 채울 것이나, 저 유인원이 그 모습을 보는 건 안 될 일인 것 같았다. 강률은 몸에 에너지를 집중해 투명한 몸을 물질화했다. 물질화 된 몸은 다른 물질들과 접촉이 가능하다. 강률은 울고 있는 유인원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유인원은 눈물이 범벅된 눈으로 강률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강률은 유인원이 알아듣기를 바라며 조용히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떠나기 전 강률은 넓은 나무 판 하나를 주워와 글을 썼다.

[공포의 기억은 지워버리고 편히 잠들길.]


사체는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될 테니 따로 매장할 필요는 없었다. 강률은 그 참사의 터에 나무 판을 박고 고개 숙여 애도했다. 강률의 행동을 세심하게 살피던 유인원도 따라서 고개를 숙여 강률을 바라보았다.


‘내가 보았던 어떤 동물과도 다른 존재다. 나와 다른 존재. 나와…, 다른 존재…….’


처음이지만 익숙한 느낌이 유인원의 내면에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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