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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카

1편

by 안이서

방 안에는 희미한 꽃향기가 감돌았다. 지구에서 가져온 향수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말리카는 수경 재배실에서 얻은 꽃가루와 합성 알코올을 섞어 자신만의 향을 만들었다. 자신의 아름다운 젊음을 확인할 수 있는 거울이 하나 뿐인 것이 많이 아쉽다. 그때

“어머니!”

세라이아가 말리카의 방문을 박차듯 열고 성큼성큼 들어왔다.

다행히 그날은 옷을 제대로 입고 있었고, 침대 위에 알몸의 남자도 없었다. 늘 보던 광경이었지만, 아들은 매번 세상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어머니……” 하고 말하며, 끝내 뒷말은 삼켰다. ‘돌멩이에 대고 설명해 뭐하나’ 하는 눈빛이었다.

그 표정을 보면 반드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강률.

자신도 별다를 것 없으면서, 마치 뭐라도 되는 듯 도도하게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그 녀석 말이다.

그래도 세라이아를 미워할 수 없는 건 ‘내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

나의 아름다움을 뛰어 넘는 외모(그 외모는 말라카에게는 훈장과 같은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었다. ‘나’니까 이런 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야)와, 나다니엘의 마지막 핏줄. 귀한 아들.

그 한심한 표정은 질타가 아니라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기에 변명 대신, 그저 “아들~~~~!” 하고 반겨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의 얼굴엔 알몸의 남자를 봤을 때보다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큰 분노가 서려 있었다. 간신히 억누른 분노였지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무슨 일이지?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어?”

세라이아는 소파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한참이나 고통과 분노를 억눌렀다. 이제야 감정 조절이 되겠는지 고개를 들어 말리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지도자회의에 야미 일행의 만행을 고발해야겠어요.”

에덴스아크에는 노바리스 에테리아로 이동하던 중 우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열세 명 있었다. 야미는 그 중 첫 번째로 태어난 아이였다. ‘우주에서 탄생한 첫 인간’이라는 영광을 쥔 아이다. 그 열세 명의 아이는 십구 세에, 그러니까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세포를 지닌 나이에 유전자 조작 시술을 받았다. 덕분에 세라이아도 늘 아름답다.

야미는 레이지의 아들이다. 나다니엘의 첫째 아들이 낳은 첫 아들. 인물은 그럭저럭이었지만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라 귀여운 면이 있었다. 게다가 눈치가 빨라 사람들과 대화할 때 상대방을 기분을 좋게 만드는 기가 막힌 기술이 있었다. 어린 아이(사실 이들은 실제 나이는 벌써 삼십 대 초반이다)가 그렇게 서글서글하기는 어려울 텐데, 야미는 남다른 친밀력 덕분에 에덴스아크에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야미가 왜?”

“야미 일행이 탐험을 나가서 무슨 짓을 저지르는 지 제 두 눈으로 보았거든요.”

말리카는 그들이 우주선 밖으로 나갔을 때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 뭐가 있는지 한참이나 상상해 보았다. 모르겠다. 그래서 물었다.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이 행성의 생명체들을 죽여요.”

말하는 세라이아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세라이아는 방금 전에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지금도 믿을 수 없는지 역겨움에 질린 두 눈이 흔들렸다.


“네 차례야. 저 암컷의 배를 갈라.”

라고 말하는 야미의 두 눈은 해맑았다.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

“탐험에 나가서 우리가 뭘 하는지 궁금하다고 쫓아 온 건 너야.”

야미의 일행 중 한 명인 에릭이 말했다. 다섯 명으로 무리를 지은 이들은 늘 자기들끼리만 탐험을 다녔었다. 왜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외부세계 구경도 하고 싶은 마음에 한 번만 같이 가자고 졸랐던 건데, 그런 참혹한 장면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낄낄 거리며 공포에 질린 유인원들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얘들은 심장이 어디에 있을까?”

에릭은 장칼의 끝으로 유인원의 상체 여기저기를 콕콕 찍으며 말했다.

“여긴가? 여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이 나 세라이아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비참하고 역겹다.

말리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물었다.

“고작 그걸로 지도자회의에 고발한다고?”

그녀는 아들이 겪은 고통이 어떤 것인지 묻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기준으로 생각했다.

“고작 그러라니요? 그 녀석들은 학살을 했다고요!”

세라이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으로 걸어가 고개를 처박고 흐느꼈다.

“이 행성의 유인원들을 죽이고 즐거워했다고요. 흑흑흑….”

말리카는 그런 아들의 행동이 과해 보여 속으로 웃음이 터졌지만, 겉으로는 짐짓 달래는 투로 말했다.

“아들, 네가 날 닮아서 성품이 고귀한 줄은 안다만, 사냥은 인간의 본능이야. 유인원 몇 마리 사냥했다고 네가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서 고민도 됐다. ‘이렇게 나약해서야, 냉혹한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남지?’

말리카는 세라이아 옆으로 가던 중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잠시 멈춰 얼굴을 좌우로 돌리며 턱 선을 확인했다. 완벽해. 그리고 세라이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들, 세상은 냉혹한 거야.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거라고. 만약에 그 유인원이 인간보다 강했다면 우리 손에 죽을 일이 있었겠어? 아니겠지. 반대로 우리의 목숨이 위태로웠겠지.”

세라이아의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 세라이아는 말리카를 쳐다보았다.

“너도 강해져야 해. 야미가 유인원 한 마리를 죽여서 자기 힘을 과시했다면, 넌 두 마리를 죽여서 그 애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 하는 거야.”

세라이아는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라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니 강률의 얼굴이 아들에게 겹쳐졌다. 순간 말리카는 짜증이 올라왔다.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말했다.

“삼십 년을 살았으면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지,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엄마 앞에서 징징거려야겠니?”

“…….”

“걔들이 밖에 나가서 개미굴에 물을 쏟아 붓건, 코끼리 코를 베건 무슨 상관이야? 인간들에게만 해가 없으면 되는 거지. 설마 동물하고 인간을 같은 급으로 보는 거야?”

“…….”

서서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라이아의 시선이 불편해졌다. 말리카는 세라이아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다른 손으로 쓱쓱 털며 말했다.

“난 약속이 있어. 그 정도로 호들갑 떨지 말고 가 봐.”

세라이아는 생각을 가늠할 수 없는 얼굴로 감정을 가다듬고 인사도 없이 방을 나갔다.

‘세상에나! 가라고 했다고 그냥 저렇게 가 버린다고?’

‘어머니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어머니, 조언 명심 할게요.’ 같은 말도 일절 없었다. 어떻게 자식이 부모한테 그럴 수 있지?

그전에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은 종종 지었지만 오늘처럼 묘한 긴장감만 남기고 가 버린 적은 없었다. 괘씸하기 짝이 없다. 동시에 괘씸하기 짝이 없는 그 인물이 당연한 듯 떠올랐다.

‘강률! 강률! 강률!’

말리카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은 유일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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