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니엘의 죽음
에덴스 아크의 내부는 한 도시의 축소판 같았다. 아니, 연구실의 도시화? 농촌의 기술화? 하여간 강률의 머리로는 상상도 못할 광경이었다.
“에덴스아크가 노바리스 에테리아 문명의 시초가 될 거야.”
나다니엘이 말했다. 에덴스 아크는 나다니엘 일생의 업적이 분명했다. 나다니엘의 자랑이었다. 강률의 에너지체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종교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신성을 구현하는 일. 하지만, 인간은 신의 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어중이 떠중이들 때문에 지구에서는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다. 또 지구에는 자기가 사랑하는 존재가 없다고 확신했었다. 사랑하는 존재는 지구 아닌 다른 별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막연함에서 확신으로 굳어진 게 며칠 전이었다. 나다니엘이 원하는 것은 모두 지구에서는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 행성으로 떠나기로 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보니 다 쓸데없는 망상이었다. 그 모든 이상은 절망 위에 쌓은 신기루였다.
지구에는 이미 신성을 이룬 인간이 있었고, 나다니엘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랑하는 이가 바로 그 존재였다. 안이서.
“이서는 언제쯤 올까?”
나다니엘이 초조하게 물었다. 이서를 만나자마자 연락처를 받지 않은 자신의 불찰을 수백 번 탓했다. 당연히 강률도 궁금했다. 텔레파시로 몇 번이나 ‘스승님!’을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은 에너지체라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떠올랐다.
‘멍청하게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마 나다니엘과 함께 움직여야 해서 자신도 육체 상태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강률이 ‘선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에너지체는 선원 주차장에 이동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강률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에너지체는 숨을 쉬지 않는데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수십 대의 소방차, 경찰차의 경광등이 밤의 어둠을 불안하게 흔들어 놓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소방차는 불길을 잡으려 불을 뿌려대고, 셀 수 없이 많은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건물은 이미 화마 속에 갇혔고, 불길이 뒷산으로 옮겨 붙는 중이었다. 뒷산 앞의 제자 숙소를 보니 그 안에 있을 자신의 육체가 생각났다. 강률은 얼른 생명줄을 확인했다. 없었다. 육체와 연결됐던 흰 줄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아마 그의 육체는 불에 일그러져 자신인지 알아보지도 못할 상태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두려움이 밀려와 그의 에너지체를 검게 물들였다.
‘스승님은? 어찌 됐을까?’
강률은 용기를 내 스승님의 방으로 이동했다.
피비린내…. 살점이 떨어져 나간 처참한 육신이 불길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두려움은 분노와 참담으로 바뀌어 그의 에너지체를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강률의 에너지체는 쫓기듯 에덴스아크로 돌아가 있었다.
선원의 식구들은 모두 착했다. 서로 아끼고 의지했다. 쾌활하고 잘 웃었다. 아름다운 지구를,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그들이 죽었다.
강률은 원통함을 못 누르고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강률의 에너지체는 검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송곳처럼 에너지가 사방으로 뻗쳤다. 눈물이라도 쏟아내야 한이 좀 씻길 듯한데, 에너지체는 눈물이 없다. 비수같은 에너지가 방 안 구석구석을 무자비하게 쑤셔댔다.
강률 앞에서 있는 나다니엘의 심장에도 비참한 에너지가 꽂혔다. 불길함에 압도돼 얼어붙은 나다니엘이 강률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강률의 에너지체가 순식간에 나다니엘의 앞에 섰다. 대량학살의 원흉!
“너만 아니었으면!!!!!!!”
외치는 강률의 입 끝이 바르르 떨렸다. 나다니엘도 부들부들 떨었다. 강률의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강률이 목격하고 온 그것이 무서워서였다.
“어떻게 된 거야?”
나다니엘은 침을 삼키고 다시 물었다.
“이서는?”
‘제발, 제발, 제발… 내가 지금 생각하는 그게 아니기를….’하면서도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질문이 허공에 흩어졌다.
“돌아가셨어… 다… 스승님, 사형들 다… 너 때문에…. 망할! 너만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라고! 네가 다 죽인거야!”
강률의 말이 진행되면서 나다니엘의 머리가 하얗게 새기 시작했다. 강률의 말이 일갈로 끝났을 때, 나다니엘은 80대의 노인이 돼 버렸다. 몸의 기운도 다 빠져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곧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상실감이라는 바이러스가 침투해 유전자 조작으로 이룬 젊음의 방어막을 삽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서…….’
나다니엘의 갑작스러운 노화에 당연히 강률도 놀랐다. 그를 휘감았던 분노가 당황으로 변했다. 멍하니 초췌한 노인네를 보고 있자니, 거칠었던 에너지가 가라앉으며, 스스로에게 이성적인 질문을 하나 던졌다.
‘사형들이…… 죽은 게 진짜 맞아? 넌 시신을 확인하지도 않았잖아. 스승님은? 육체는 사라져도 에너지체는 남아있지 않을까? 나처럼?’
하지만, 숨이 흐려져 가는 나다니엘에게 그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다니엘이 힘겹게 손을 뻗어 강률이 가까이 오도록 손을 흔들었다. 멈칫거리던 강률이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귀를 기울였다.
“자네가 이주민들의 영성 지도자가 돼 줘. 그들이 신성을 되찾을 수 있게 자네가 이끌어 줘.”
강률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심경이 복잡했다.
‘스승님이 살아계실 수도 있다고 말하면 이 사람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마음 한 곳에서 다른 목소리도 올라왔다.
‘이 사람의 몰골을 봐. 이미 늦었어. 그의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야.’
‘아니, 스승님이 살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를 살려 낼 지도 몰라.’
‘살 수 있으면? 그가 죽지 않고 산다면?’
‘그럼 넌 이 사람과 함께 있는 스승님을 봐야만 해. 영. 원. 히!’
수많은 생각이 좌우로 왔다 갔다 저울질을 했다. 결국 마음을 정한 강률은 눈에 확신의 힘을 주며 대답했다.
“당신의 뜻에 따를 게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나다니엘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 번 생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낸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보다. 괜찮다. 이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다음 생에서는 좀 더 빨리 찾기를. 그래서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기를 신께 기도하며 마지막 숨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