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너는 결코 혼자 걷지 않아

《호빵맨에 비친 나의 아버지》-일본, 오쓰에서

by 쓰는사람 명진

우산을 갖다줄 사람도 없는데 비가 내려

호독호독, 통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는데.

그 소리에, 조금은 살 것 같아.


갈 곳은 없는데, 걸었어.

잠시 빌린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이끌려

정처 없는 모닝 산책


고요한 주택가엔 사람도, 간판도, 소음도 없었어.

짙은 나무색의 집들 사이를 구석구석 걸으니

마치 여기에서 오랫동안 지낸듯한 기분이 들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면

아무런 일도 없던 때로 돌아갈수 있을까?


목적지가 없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아무데도 가고 싶은곳이 없네. 이상하게도



한참을 걷다 이른 아침 문연 빵집이 하나를 발견했어

그 시절의 태극당 같은 분위기랄까.


그곳엔 젊은 아빠와 5살 쯤된 아이가 빵을 고르고 있더라. 아기는 아빠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빵을 가리키며 종알종알 거리길래 나도 흘끔 쳐다봤더니 그 작은 손가락 끝엔 호빵맨이 웃으며 누워있더라구


아빠의 허리춤에도 닿지 않는 조그만 아이가,

언젠가 아빠의 키를 넘게 되면

이 날을 기억할까?

아빠가 꼭 잡고 있던 그 손의 온기를 말야


난 기억이 안나거든. 5살의 나와 젊은 아빠의 얼굴이.

하지만 이건 기억나.

아빠는, 내가 말 꺼내기 전에

맞장구부터 쳐주던 사람이었단 걸.


새옷을 사러가면

내가 고른건 유행탄다며 죄다 내려놓던 엄마와,

“그게 제일 예쁘다”며 내 편이 되어주던 아빠.

엄마를 흘겨보고 아빠와 눈빛을 마주하던

그 짧은 기억의 단편들. 피식


오늘 아침은 나도 호빵맨을 먹으려해,

행복함이 흘러넘치던 그 아이처럼


“You never walk alone.
Memory walks beside you”.
너는 결코 혼자 걷지 않아.
기억이 너와 함께 걷고 있으니까



이 연재는 여행정보 보다 ‘마음의 결‘을 따라갑니다. 한 조각씩 읽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함께 걸어주신다면 슬픔이 희미해지고 다정함이 스며드는 흐름을 더 선명히 느끼실 수 있어요.


1화 :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keyword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