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일본 교토 금각사를 향하여

by 쓰는사람 명진


#새해다짐

해가 바뀌면 늘 다짐한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고. 더 열심히, 더 건강하게, 더 멋지게 살겠다고.

새해가 오면 늘 루틴처럼 다이어리 첫 장에 같은 문장을 썼다.

“Better Version of myself.” (더 나은 내가 되기)


그러나 연말 모임에서 했던 말이 하늘을 노하게 했던걸까?

“더 바라는 게 없어요. 최고의 한 해였거든요. 내년엔 이대로만 가도 충분해요.”
라고 웃으며 말했던 그날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아빠를 잃었다.


겸손하라던 아빠의 말을 가볍게 넘긴 벌이었을까.
타이슨의 말처럼, 나는 그럴싸한 다짐 하나 안고
인생이라는 링 위에 올랐다가
정통으로 한 방을 맞고 쓰러졌다.
그제야 김영민 작가의 말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링위에 오를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2 금각사

오늘 아침 금각사를 가기로 결심한건, 단지 책속의 한문장 때문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란건

실낯같은 희망이라도 걸어보고 싶다는 절실함인걸까

금각사에 가면 나도 조금이나마 김영민 작가님처럼 삶에 너그러워 질수 있을려나.


아버지와 멀어지기 위해 애쓰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며 직장인이 되었다.

아빠가 안쓰럽다고 생각한건 오랜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해였다.

그리고 10년후, 아빠는 내게 제일 친한 친구이자 대나무숲이었다.


아버지가 아닌, 아빠를 잃고, 아니 나의 절친을 잃고 비틀거리는 내게

악마가 다가와 영혼을 바꿀 제안을 한다면 난 무어라 말할까?


"내가 10년전으로 시간을 되돌려주지, 아버지와 서먹했던 그 순간으로 말야.
그때로 돌아가 아버지와 친해지려던 노력들도 하나씩 제거해주지.
그러면 넌 지금의 지독한 슬픔에서 해방될 수 있어.
자, 내 제안을 받아 들일텐가? "


"매우 매력적인 제안고마워.

지금의 난, 너무 힘들고 지쳐있고, 슬픔의 끝을 모르겠어.

아니, 그 끝이 있는지 조차 모를 어두운 긴 터널안에 있지만


네가 시간을 되돌릴수 있다면,

날 20년전으로 되돌려줘.

내가 첫 월급을 받던 그 순간으로.


월급을 받는 날마다 아빠와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동네 구석구석 모든 가게를 돌아 다니며 소주를 마실거야.

우리 아빤 소주파였거든.

가을이면 단풍구경대신 아울렛으로 갈거야.

60이 넘은 아버지는 처음으로 멋을 부려보시고는 참 좋아하시더라.


10년의 고통이 이렇게 아픈데,

20년의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슬픔은 사랑의 대가니까.

그 값을 치르며 살아갈게.


그러니 나를 20년 전으로 되돌려줘

....제발...





이 연재는 여행정보 보다 ‘마음의 결‘을 따라갑니다.

한 조각씩 읽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함께 걸어주시면

슬픔이 희미해지고 다정함이 스며드는 흐름을

더 선명히 느끼실 수 있어요.


제1화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