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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의집 Jul 05. 2018

#오래오래오오래

나는 왜.

오래된 것에 열광하는가.


올해 내내 맴맴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꼭 이 욕망의 원흉을 찾아내고 말테다......................



생각의 여정을 따라가보자.






사고의 단초는 역시

역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려서부터 나는 누군가 따라하는 것을

미치도록 싫어했다.

내가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은 무조건 피했고,

나를 따라하는 누군가는 되도록 피했다.

 

왜 그럴까?


타고난 본성도 있겠지.

자라 온 환경 탓도 있을거고.

내 선택에 대해 존중과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그것들이 모여모여 점점 개성과 고집으로 진화했겠지?


개성 강한 친구들도 많았다.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다양한 선택지가 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아빠때문인 것 같다!!!!!!!!!!!!!!!!!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인 나에게

"유나야 너 카피라이터 해봐. 그거 참 멋진거 같아"

아빠는 '카피라이터' 라는 낯선 말을 가르쳐줬다.


또 입버릇처럼

"유나야 남들 한다고 따라하지마"

"유행따라 사는 건 절대로 하지마"

개성개성개성.

개성, 너만의 것. 이란 말을 달고 사셨다.


내가 아무리 어려서부터 개성이 강했어도,

어린아이에게 엄마와 아빠는 막강한 우주일 수 밖에 없다. 엄마아빠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빨리 눈치를 챘을테고, 아빠는 따라하는 것을 싫어하니 아빠를 기분 좋게 하기위해서라도 남들과는 다른 내가 되려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20대가 되자 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아니면 사람냄새나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왜 이야기였을까?

왜 사람냄새였을까?


20대가 되자 따라하는 것을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 나만의 것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 유일한 것.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 물건은 아무리 비싸도 따라사면 그만이지만 그 물건과 나의 관계. 이야기가 있는 물건은 오직 세상에 하나 뿐이었다. 이야기가 있는 물건에 열광하다보니 결국 빈티지, 오래된 물건에 다달았다.


[갑자기 요약]

오래된 물건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야기가 담긴 물건은 유일하다.

유일한 것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



또 하나의 가설이 있다.


나는 8세부터 분당에 살았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내고

(회사도 분당이었던 4년까지!) 25년을 한동네에서 살았다.


한 동네에 오랜 시간을 산다는 것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걸 수 있을까? 아니아니.

적어도 아무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이것은 분명 내 인생의 중요한 맥락으로 작용한다.


지금도 여전히 초등학교 때 가던 빵집을 가고,

명동이든 강남이든 30분만에 나를 쓩~ 서울로 데려가주는 버스를 탄다.

파랑색 우리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그 때의 우리처럼 길거리를 거닐고, 초중고 동창들이 앞동에 뒷동에 근처 마을에 여전히 살고 있다. "가운데에서 만나" 라고 말하면 더이상 물을 것도 없이 그곳에서 만나고, 거리를 지나다니면 누구하나 아는 사람을 꼭 만나게 된다. 25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누구나 오래된 추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추억 안에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등학교/대학교를 졸업하며, 자취를 하거나 졸업/취업을 하며 살던 동네를 떠나기 마련이니까.


한 동네에 오래 살며 '세월' 이란 것을

매일 보고, 듣고, 생생하게 만진다.


와~ 이 나무 정말 오래 됐구나~

오랜 중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저걸 언제 다 짓냐....

허허벌판에서 삐까뻔쩍한 단지가 들어오는 과정을 오롯이 관찰한다. (사막같던 판교에 현대백화점이 들어올 때까지 바로 옆에 살았다)

애기 때 오가던 동네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한 친구를 보면서는 익숙한 새로움에 찌릿찌릿하다.


박제되지 않은 내 인생의 박물관

나는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갑자기 요약]

한 동네에 25년을 살았다.

나 뿐 아니라 친구들까지 모두.

세월이 물들어가는 것에 대한 가치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한 아이러니.

나는 새로운 것에도 무척이나 흥분하며 열광한다는 점!


특히 전자기기.

종이와 티비를 그렇게나 좋아해 잡지 에디터나 피디가 될 줄 알았는데, 결국 IT 기획자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저 오랜 세월만 담고 있는 이야기는

아무 재미가 없다.

무조건 질리기 마련이다.


질리지 않는 오래됨을 위해선

하나밖에 방법이 없다.

바로 '지금' 을 사는 것이다.

오래됐다는 핑계로 그 시절에 박제되어

과거형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사람도. 물건도.


아름다운 주름을 위해

그저 지금! 롸잇나우를 사는 것이다.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그래서 날마다 젊을 수 밖에 없는 것들을

나는 온마음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결국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승효상 선생님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하셨고,

배철수 아저씨는

음악캠프 라디오DJ 자리를

27년이 넘도록 지키고 있다.

엄마가

20대에 입은 치마,

30대에 찼던 시계를 지금의 내가 걸친다.




오래된 것에

+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

+ 새로운 지금을 맞이해보자

=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것의 탄생!




그나저나

나는 왜 이것이 아름답다고

세상에 외쳐야 하는 것일까?




오래된 것으로부터

새로운 개성을 만들어 내는 것.




이건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방법이다.

늙어가는 것만이 정답인 인생길에서

재미있게 늙어가는 방법이 되어 줄 것이다.



나를 살린 진리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렇고, 우리의 관계가 그렇다.

오래오래오오래 전 이 땅에 오셨지만

‘지금’ 살아 숨쉬는 그분의 사랑.



어찌

세상에 외치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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