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의 숙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교내 고무동력기 대회에 참가했다. 웬일인지 그때 내 고무동력기가 제일 오래도록 신나게 날았다. 아직도 그게 뭐 때문이었는지는 모른다. 우연한 고무동력기의 발진 덕분에, 나는 학교 대표가 되어 고무동력기 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방과 후 교실에 남아 팔자에도 없는 고무동력기를 숱하게 만들었다. 고무동력기가 잘 날려면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데, 손재주가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제한 시간에 완성해야 하기에 소심한 내게는 긴장의 연속인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회 날이 되었다.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더니, 유난히 걱정이 많았던 나는 긴장한 나머지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말았다. 고무동력기의 중심이 되는 나무 동체를 반으로 뽀각 부러뜨려버린 것이다. 부상 부위에 열심히 접착제를 발랐지만 무게가 엄청 무거워졌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는 열두 살의 마음보다 무겁지는 않았지만.
몇 날 며칠을 함께 연습했던 학교 담당 선생님은 내가 접착제를 발라 완성한 고무동력기를 가져오니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더니 선생님 차가 있는 쪽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는 차 뒷좌석에서 내 고무동력기의 나무 동체를 연습용으로 가져온, 부러지지 않은 나무로 바꾸었다. 그 작업을 하면서 긴장감이 가득했던 선생님의 땀방울이 아직까지도 눈앞에 선하다. 워낙 소심해서 그 후로 지금까지 이런 행동을 주도하거나 동참한 적이 한 번도 없기에, 그 시절의 기억이 더욱 뚜렷하게 남아있다. 사실 당시에는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보다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책임질 만큼 성숙한 나이가 아녔기에, 어쩌면 당연한 감정이었다. 두려움이 좀 가시고 나서야 다음 감정이 자기 차례를 주장했다. 내가 저지른 말도 안 되는 실수 때문에 선생님한테까지 폐를 끼친 것 같아 너무 죄송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렇게 만들어진 고무동력기가 10초도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나의 무거운 마음이 담겨서인지, 내 고무동력기는 학교 대표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허탈한 비행을 선보였다. 하지만 돌이켜볼수록 10초의 기록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혹여나 그렇게 만든 고무동력기가 잘 날기라도 했다면, 상위권에 랭크되어 다른 참가자의 기회를 빼앗기라도 했다면, 나는 분명 시름시름 앓았을 것이다. 선생님도 자신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한 나를 대차게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고무동력기가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내게 주었다고 생각한다.
열두 살의 나는 지금보다 순간 대처 능력이 많이 떨어지고, 작은 일에도 긴장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이렇게 임팩트 있는 사건은 그 시절의 나를 좀 더 자세히 떠올릴 수 있게 만든다. 만일 학교 대표로 고무동력기를 날렸던 날 일기를 썼다면 십수 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내 생각을 보면서 한참 미소 지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다.
창조 과정은 일생을 통해 계속된다. 어떤 창조자도 자신의 창작물에 영원히 만족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생기고 그 때문에 창조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다. 완성된 작품은 길 위의 정거장일 뿐이다.
- 앤서니 스토, <고독의 위로>
스물아홉 살에 회상한 열두 살의 기억은 고무동력기가 거의 전부다. 소심하고 긴장을 많이 하긴 하지만, 묵묵히 수십 개의 고무동력기를 만들며 연습했던 초등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스물아홉 살인 올해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미래에 기억될까. 내 안의 것들을 열심히 꺼내어 보려고 노력하던 시기? 이북리더기를 들고 뒤늦게 신난 모습? 결혼을 준비하며 수백 가지의 결정을 내리는 모습? 미래의 내가 이 시절의 나에 대해 어떻게 기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스물아홉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살았는지, 당시 내가 쓴 글들을 통해 상상해볼 수 있다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 집 앞에서 보이는 구름은 몇 정거장 지나서 보이는 구름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푸른 하늘에 흰 조각이 떠있다는 건 같지만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우리도 알고 보면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는 사람들인 것처럼 말이다. 올해의 나는 긴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스물아홉이라는 한 정거장일 뿐이다. 무엇을 목표하고 달성했건 올해의 성취는 두 달 후면 완벽한 과거가 된다. 만일 내가 열두 살의 내 모습에 만족했다면 지금까지도 남을 속이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결과를 만들었다는 건, 살면서 다양한 자아를 만나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매일 다른 구름처럼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구름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