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by 사해

나름대로 길었던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처음 든 생각은 후련하다는 거였다. 처음엔 의지가 있었다. 뜨겁게 타오른 불꽃은 멈출 줄 모르고 거세게 타올랐으니. 문제는 그 불꽃이 원동력이었던 희망마저 불태워버릴 줄은 몰랐던 거지.


좋아해서 시작했던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픔이 찾아와도 내성이 있을 거라 착각했다.

그래, 멍청한 나의 착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재미보단 고통으로 다가왔다. 분명 나를 위해서 시작했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무언가를 지속해서 이어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흥미를 장작 삼아 나태한 육체를 끌고 나가던 성격의 나에겐 더더욱.


포기하고 싶었다. 매 순간이 내겐 지옥이었고, 폐허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갇혀 보이지 않는 빛을 갈구하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괜찮았다. 그래서 막연하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줄도 모르고 나는 보이지 않는 허공을 바보 같이 휘적거렸다.


상상으로 간신히 붙들어놨던 희망마저 사라진 순간 깨닫게 되었다.

이 앞은 무저갱 같은 낭떠러지라는 걸.


짐작은 하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평균정도 되는 지능의 머리로 간신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정보는 확실하지 않았고, 그저 빈약한 상상력으로 공포를 억누른 것에 불과했다.


그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겁 없이 달려든 거지.


이후 전개는 안 봐도 뻔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제대로 찾아갈 수가 있을까. 나는 허공에 발을 디뎠다. 그곳은 너무 높고, 아무것도 없는 암흑이었다.


부유감.

그리고 절망감.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심연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추락했다.

떨어지면서 몸이 부딪치고 까졌다.

그러나 고통보다 더 큰 아득한 좌절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생각을 방해했다.


아, 나한테 허락된 건 여기까지구나.


그때 나는 포기하려 했다. 떨어지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내 가슴속에서 희망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건 확신이었고, 곧 강한 긍정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끝없는 추락이 오히려 공포를 떨쳐내게 만들었다.

내 몸은 바닥에 부딪히는 대신 어둠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떨어진다는 감각 자체가 나의 어수룩한 편견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내 몸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 그랬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고. 생각을 바꾸자 부유감이 사라졌다. 떨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기분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중력이 없는 어둠 속에서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게 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주변이 온 통 캄캄한 어둠이었으므로.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어둠 속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한 줄기 빛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그건 나도 알지 못한다. 망막을 통해 비치는 광경이 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가? 나는 못한다.


예전엔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허나 시간이 흐르고 경험을 쌓아갈수록 그건 나의 크나큰 착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전부 현실이 아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 그 말이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단지 진실의 파편뿐이니까.


나는 방황한다.

자아를 인지했을 때부터, 이제는 그래도 성인이라고 불릴 만큼 나이를 먹은 지금 이 순간까지.

어쩌면 내 육신이 관짝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방황을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거 한 가지만은 확신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며, 틀린 인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난 틀리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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