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의 나는 OO 없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프리랜서'라고 대답한다.
나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직장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기에 졸업하자마자 베이커리와 관련된 알바를 했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1년 4개월을 일하게 되었다. 나는 조직적으로 하는 일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내 생각의 틀이 강한 나는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회사는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가장 심하게 들은 말은
"넌 왜 민폐만 끼치냐." 이 말이었다. 비속어까지 들으면서 이곳에서 일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염증이 났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스트레스로 살이 빠졌고, 사람에 대한 불신, 번아웃이 왔다.
처음엔 돈 걱정이 가장 먼저였다. 교통비와 핸드폰 요금까지 어떻게 충당하지? 싶었다. 그렇지만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눈을 뜨면 "아, 또 출근해야 돼? 진짜 일하기 싫다."라는 말을 입에 달았을 정도였으니. 이대로면 내가 죽겠다 싶어 퇴사했다.
처음에 카페 일을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할지 한참을 찾다가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시터처럼 아이들을 돌보거나, 과외를 하기로 했다. 수입은 불안정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했던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것이 좋았다.
최소한의 생활비가 필요했지만 상황은 내가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교통비가 없어 버스로 30분 만에 갈 거리를 2시간 30분 동안 걸어간 적이 있다.
그때 "하.. 진짜 걸어가기 싫다. 얼른 집 가서 자고 싶다. 돈이 없는 건 너무 불편해. 다리도 아프고.."라며 투덜거렸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집으로 가다가 예전에 일하면서 잘렸던 포토부스가 보였다. 급여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던 곳 중 하나였다. 혹시라도 매니저와 마주칠까 안보는 척하며 걸었다.
프리터족으로 살아가게 된 건, 내 선택이었다.
불안정한 수입도 내가 감당해야 될 현실이기도 했다.
가끔은 나 스스로 위축이 들었다. 엄마나 아빠의 지인들이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면 뭔가 그럴싸한 직업을 대야 할 것 같았으니 스트레스기도 했다. 한국에서 프리터족은 아직은 부정적인 시선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작아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살아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