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개인주의자인 한국의 중년여성들
개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 이미 주어진 연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대신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의 관심사나 취향, 목표에 따라 새로운 집단을 찾고 그러한 사람들과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으로도 네트워킹하는 사회, 즉 사회학자 배리 웰먼이 말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중년여성 세대들도 개인주의화 되었을까?
가부장적 전통의 남아선호사상의 분위기에서 딸로 태어난 이들은 일부 '내 딸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는 일부 통찰력 있는 어머니를 만나 오빠나 남동생 못지않게 길러진 행운의 케이스들도 종종 있었으나, 아직 다수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 받는 것을 어쩔수 없는 운명으로 내재화시키며 자라온 경우가 많았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던 88년도 전후엔 87년 629선언으로 인한 민주화의 급속한 진행과 88서울올림픽으로 사회가 비교적 활기찬 시기였는데 아직까지 대학에 진학한 여성들도 성평등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긴 성폭력특별법 등 차별금지 관련한 법률이 내가 사회에 나와서도 한참 지난 시기에 입법화되었으니... 여성은 아직 사회에 진출하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대학을 나와도 평생 직장개념으로 직장을 구하는 여성은 아직 주류가 아니었고 20대 중후반이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일반 기업체의 경우는 여성에게 지원 기회조차 주지 않거나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식의 기회만이 열려있어 대기업체 취직은 머나먼 꿈이었다. 따라서 대다수의 평생 직장을 원하는 여성들은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무원으로 막 몰리기 시작했는데 공무원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남성에게는 군가산점제도가 있었는데 현역출신인 경우 5점, 방위는 3점인가 가산점이 주어져서 여성은 남성보다 5점 이상 더 받아야 필기시험에 합격하기 때문이었다. 소숫점 차이로 붙고 떨어지는 9급 공무원 시험의 속성상 그 점수는 너무도 큰 점수였다. 내가 지방국립대 출신이어서 더 그런 현상을 목격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주위 공부 좀 하는 여성들은 죄다 공무원 9급 시험 준비를 했는데 그중 합격해서 공무원이 된 사람은 소수였다.
돌아보면 정말 여성이 취직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문과생이면서 지방대생이고 여성인 경우 최악의 취업조건이라는 말이 공공연한데 30년 전에도 사실 마찬가지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결국 지방에 사는 여성들 대부분은 보습학원 강사나 학습지 교사가 된 반면 그닥 신통하게 공부하지도 못했던 남자동기생들은 금융권이나 대기업체로 생각보다 쉽게 들어갔고 일부가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등 내 기억에 대부분 남성들은 직장을 어렵지 않게 잡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20대 후반이 되면 여성들이 서둘러 '취집'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20대 후반에 막차를 타고 시집을 간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을 나온 여성들도 쉽게 선을 보고 몇 번 만나지도 않고 서둘러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취직을 하기도 어렵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단절이 된 나이 든 여성이 결혼전 수준의 직장으로 재취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험봐서 들어가는 공무원시험도 연령제한이 심해서 이미 기회가 박탈된 상태였다. 이렇고 보니 교사나 공무원으로 진출한 케이스 아니면 모두 직장에서 멀어져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살다 뒤늦게 판매원이나 보험영업 같은 일부 서비스업종으로 중년이 되어 진입하거나 아니면 가정주부로서 중년을 맞는다.
사정이 이런데 혼자 사는 중년 여성 역시도 상황이 크게 다를수 없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채 부모에 일정부분 기대어 살거나 이러저러한 비정규 일거리를 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싱글 중년여성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부 소위 가방끈이 긴 여성의 경우 전문직업을 가지고 당당한 싱글로서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전문직업을 가진 여성은 전체에서 보면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차원에서 어쩌다 혼자 살게 된 중년 여성들이 겪을 현실이 어떨까는 짐작하고도 남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이런 한국적 배경 속에서 성장한 현재의 중년 여성들은 사실 공동체 문화와 성역할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적응을 하고 있으나 사실 그녀들은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들의 어머니처럼 여성으로서의 삶에 순응하는 보수적인 인류도 아니다. 불평등한 젠더 규범을 거부하는 페미니스트 딸에게 어쩔수 없이 사회가 바라는 ‘정상성’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잔소리하면서도 딸들의 의견을 넌지시 지지도 해주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은 혼자 사는 사람이 대세가 되고 있는 시대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녀들 시대의 보편적 삶의 모습에서 벗어난채로 중년을 맞은 자신이 때때로 불안하다. 혼자서도 잘 살아왔고 덕분에 편안한 노후를 맞고 있는 윗세대 여성노인의 모델이 거의 전무하기에 이대로 혼자 늙어가도 되는지 궁금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을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왼쪽 다리는 개인주의의 물결에 발을 담그고 오른쪽 다리는 그녀들이 관통해왔던 가부장적 사회규범의 교육환경에 발을 담그고 있는, 절반의 개인주의자인 한국의 중년 여성싱글들... 한국의 비혼 중년 여성은 그래서 가뜩이나 성찰적이 되는 중년기에 구도자가 된다.
혼자 사는 사람이 주류인 사회가 올 것이라고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견한다.
그게 사회와 인류에 좋은 것인지, 어떤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혼자 사는 것이 지금보다는 덜 불편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싱글의 삶을 예찬한 사회학자 노명우는 '사회적인 개인주의자'가 되라고 조언한다. 얼핏 언어의 유희같기도 한 이 말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쩔수 없이 공동체적 가치가 지배한 사회에서 자라났고, 현재 개인주의시대를 맞고는 있으나 개인주의의 대안 역시도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 사회의 구현이라는 점을 상기했을때 반쪽 개인주의자인 한국의 중년 싱글여성들의 삶도 어떻게 건설적인 방향으로 하이브리드화가 되어야 하는지 곰곰히 모색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