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사는 중년여성의 삶
요즘 혼자 사는 것이 대세인가 보다. 지성씨는 1인 가구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언론 기사가 최근 부쩍 많아진 것을 실감하며 오랫동안 자신을 지배해온 혼자 사는 삶에 대해 골몰히 생각해보았다.
혼자 산다는 것은 진정 자유롭고 낭만적인 일일까? 나이 들어서도?
성격적 특성에 따라, 또한 그 사람이 가진 경제적, 사회적, 지리적 상황에 따라 케바케(case by case) 겠지만, 지성씨는 혼자 사는 일이 그닥 낭만적이거나 권장할만한 일이라는데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그것은 지성씨가 결혼하기 이전에도, 지금도 그렇다.
지성씨는 30살에 작은 임대아파트를 얻어 24평의 비좁은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이래 20여년을 혼자 살았다. 결혼한지 4년이 흐른 지금도 주말부부라서 주중에는 여전히 혼자서 살고 있다. 혼자 산 기간으로 따지면 징글징글하게 혼자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고독은 내 숙명인가’ 얼마나 많이 곱씹었던가?
지금까지 혼자 살면서 혼자 보따리를 싸서 이사한 횟수를 합하면 족히 20회는 넘을 듯하다. 이중 7년은 미국 캘리포니아 엘에이 근처와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의 삶이 있었는데 이때 역시도 일년에 한번은 짐을 싸서 이사를 다니는 일의 연속이었다. 드넓은 국토와 상대적으로 낮은 인구밀도 때문에 인적 서비스가 거의 없고, 조립품을 직접 사거나 배달시켜서 일일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야 하는 가구들을 써야 하는 미국에서의 삶은 더욱 혼자 사는 삶을 힘들게 하였다.
문득 클리브랜드에 처음 정착하던 2007년의 여름 날이 지성씨 머리를 스친다. 지성씨는 학교 앞에 정말 작은 스튜디오를 얻고 마켓에서 사온 쇠로 된 조립용 옷걸이대를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43킬로의 지성씨가 하기엔 워낙 힘도, 기술도 없어서 조립이 잘 되지 않았다. 실랑이를 벌이다 엉성하게 연결된 쇠막대의 연결고리가 풀어지면서 지성씨 정수리 위로 쾅하고 떨어졌다. 그 순간 아픈 것은 고사하고 형언할 수 없는 짜증과 서러움이 폭발했다. 순간 정말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박사고 나발이고... 울컥 하는 마음으로 맥주 한세트를 사와서 어지러진 짐들 속에서 눈물 콧물 훌쩍이며 몇병을 들이키다 잠이 들었다. 그때 지성씨의 나이 39살. 중년의 문턱에서 혼자 사는 삶이라는 난제와 여전히 씨름하고 있었다. 귀국하고 대학에 자리를 잡고 나서도 그런 부유하는 삶은 꽤 오랜 동안 지속되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혼자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말고도 일상에서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중년이 되어 혼자 사는 삶은 자질구레한 일상의 해결 차원에서 더욱 도전을 받는다. 청춘시절엔 싱글 친구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에 품앗이 차원에서도 서로 부담 없이 부탁하고 돕는 일이 어렵지 않다. 썸을 타거나 사귀던 남자친구들도 간간이 있기에 도움받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일단 서슴없이 부탁할만한 홀가분한 친구들이 별로 없어진다. 몇 안남은 싱글 친구들도 직장 때문에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아 그나마도 부탁할 사람 자체가 별로 없다. 이미 그 많던 친구들은 각자 시집가서 아이 낳아 키우느라 소원해진지 꽤 오래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남자친구가 없어진 지는 더 오래고.. 형제자매 역시도 가까이에서 살아야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다들 사느라 바빠서 도와달라고 하기 쉽지 않다. 이래저래 인력난, 구인난에 봉착하기 쉽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중년 정도 되면 기대되는 역할이 청춘시절과는 다르다. 일을 장악하고 지시하고 조율하는 입장에서 궁상스러움을 노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존심과도 관련 있지만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도 있는척 잘 사는척 해야 한다. 그 나이가 됐으면 그쯤은 알아서 잘 하겠지 라고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듯해서 아쉬운 소리 하기가 점점 어렵다.
일일이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받아주면서 어울렁 더울렁 사는 것이 말이 쉽지, 오래 혼자 살아온 성격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다. 그렇게 친화력 있고 변죽 좋은 사람이라면 오래 혼자 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혼자서 오래 사는 사람은 혼자서 해결하는 일의 반복 속에서 혼자서 알아서 다하는 습성을 습관화시켰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더 혼자서 더 처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과정에서 피로도가 여간이 아니다. 가족이 있었으면, 남편이 있었으면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뭔가 불평등한 운명을 부여받은듯한, 일종의 약 오르는 느낌이 때때로 든다는 것을 지성씨는 체험으로 깨달았다.
혼자 여행은 어떤가? 지금은 많이 사정이 나아졌지만 혼자서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관광지의 먹고 싶은 유명식당에 혼자서 들어가 먹는 용기를 내기가 그리 쉬운가? 아니 그전에 혼자라고 하면 ‘죄송합니다 2인 이상만 가능합니다’라며 식당주인으로부터 퇴짜를 맞기 일쑤이다. 물론 요즘 1인석을 구비한 식당도 생기고 있고, 2인분을 시켜서 혼자서 당당히 먹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가능하다. 붐비는 관광지 맛집에서 남의 눈치 안보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베짱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쉽게도 지성씨는 그런 베짱이 없다. 남들 눈치가 자꾸 봐지고 그렇게 내 돈주고 먹으면서 남들 눈치 봐야 하는게 싫어서 못한다. 중년이 되면 이런 베짱이 더 생기는 줄 알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된다. 오히려 “저 아줌마는 왜 이런 관광지 와서 혼자 밥을 먹지? 남편 자식은 어디 가고?”하며 더 이상하게 쳐다볼 것 같은 생각에 더 눈치가 보인다. 아줌마가 되면 뻔뻔해진다는 말은 애를 많이 키워본 결혼한 주부들 이야기다. 오히려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과 다르게 살아오면서 무수한 편견 섞인 호기심의 눈초리 속에서 살아왔기에 싱글 중년 여성들은 되도록 그런 시선에 노출되지 않으려 조심하고 살아왔다.
노년학에서 연령주의(Ageism)라는 용어가 있다. 그 연령대는 이럴 것이라고 하는 사회적 고정관념과 그로인한 차별을 일컫는 용어로, 이제는 꼭 노인 뿐만 아니라 그 나이엔 이래야 한다는 연령편향적 고정관념을 일컫는 용어로도 쓰인다. 물론 개선되어야 할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습관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시대에 나서 자라온 현재의 한국 중년 여성들이 요즘 젊은 세대처럼 당당히 연령차별주의를 신경쓰지 않고 살수 있을까? 젊은이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게 잘 될까? 끊임없이 그런 관습을 주입받고 살아온 ‘자아’와 싸우며 지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다 결국 여행을 가지 않고 마는, 그래서 집에서 혼술로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식으로 흐르는 것의 연속... 그것이 혼자 사는 중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혼자 사는 중년은 혼자 사는 청년과 다르다.
사회적 눈초리도 다르지만 중년 스스로의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혼술 혼밥 혼여행의 의미도 그래서 티비의 설정 투성이인 중년 연예인처럼 멋있지 않다. 중년에게 혼밥, 혼술, 혼여행은 낭만도 로망도 아닌, 오히려 다소 쓸쓸한 일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