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지성 Nov 22. 2022

중년 혼자여행, 그리고 커플여행

이탈리아 한달여행 후기

어느새 이탈리아를 다녀온지도 거의 한달이 흘렀다. 지난 9월 27일 로마공항에 입성한후 한달간 이탈리아 15개 도시를 여행하다 10월 26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는 이탈리아!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담은 이탈리아여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었으나 여행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여독이 풀리지 않아 도무지 무엇을 쓴다는 것이 힘들었다. 여독이 풀린 후에도 한국에서의 일상으로 돌아오는게 쉽지 않았다. 한달의 베낭여행은 50대 중년에겐 체력적으로 무리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돌아오고나서 한동안은 매일같이 똑같은 꿈을 꾸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분명 베네치아로 보이는 마을에서 소소한 일상을 사는 모습인데, 매일같이 거의 똑같은 광경이었다. 그 꿈은 7-8일간 매일 이어지다 9일째 정도가 되어서야 사라졌다. 너무도 신기해서 "내가 영혼은 이탈리아에 두고 몸만 한국으로 왔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 여행지가 베네치아여서 그런지, 베네치아 여행이 더욱 임팩트가 남아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실 나는 피렌체를 더 좋아한다. 다만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산마르코광장 카페에 느긋하게 앉아 사랑하는 사람과 차(술) 마시기, 베네치아 본섬에서 숙박하며 밤늦게까지 수변 마을을 천천히 걸어다니기...를 마침내 해냈다는 점에서 여운이 꽤 오래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베네치아


사실 내 버킷 리스트는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 하기'의 식이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전제가 충족되지 못하면 할수 없는, 어이없는 것들이다. 혼자서 세계 어디라도 가서 여행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할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라는 전제는 내 나이 49살이 될 때까지도 너무도 요원해보였던 터라 사실 버킷 리스트를 해낼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았었다.


그.런.데. 

무려 49살에 내 인생에 혜성처럼 나타난 남편 덕에 나는 한가지씩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고 있다. '중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오랫동안 묵히고 묵혀둔 버킷 리스트를 꺼내어 하나씩 실행하면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는 것을 실감하는 일이기도 한가 보다. 


여행전 썼던 글에 밝혔듯 이번 한달간의 이탈리아 일주여행은 원래 혼자 하는 것으로 기획됐고 그렇게 나는 홀로 26사이즈의 만만치 않은 캐리어 한개와 작은 베낭 하나, 그리고 난생 처음 시도해본 소매치기 방지용 복대를 허리춤에 차고 로마공항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20일을 혼자서 이탈리아 동남부부터 서북부 알프스지역까지 다니며 7개의 호텔을 전전하느라 고생이라면 고생이고 호사라면 호사인 여행에 익숙해질 즈음, 남편이 로마로 왔다. 


천공의 섬 모델이 된 치비타 디 반뇨레쪼


혼자 여행하는 아내의 안부에 늘 노심초사였던 남편이 아내의 여행 마무리를 같이 해야 할것 같다며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남편과 10일간의 여행으로 나의 장장 한달간의 이탈리아여행이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혼자 했던 20일간의 여행도 좋았지만 남편과 함께 한 10일에 비할 수는 없을 듯하다. 물론 이미 이탈리아 여행가이드를 할 수도 있을만큼 이탈리아에 익숙해질 즈음 남편이 왔기에 더 심적으로 편안해진 측면도 있으나 둘이기에 가능했던 여러가지 일들을 시도할수 있어서 체험의 깊이가 달랐다. 


정말 꿈처럼 아름다워 울컥했던 산마르코 광장에서의 밤이 떠오른다. 예전에 패키지여행으로 낮에만 잠시 들렀을 때는 몰랐었는데, 밤에는 광장 3곳의 카페에서 클래식 라이브연주를 해준다. 술과 음료,스넥 정도만 파는 이 카페들의 가격은 충격적으로 비쌌지만, 사실 그 가격부담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스프리츠를 마셨던 산마르코 광장의 밤은 영원히 잊을수 없는 행복한 기억으로 우리 부부에게 각인되었다. 지금도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며 그때의 감동적인 행복감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우리가 갔었던 곳들을 화면으로 다시 만나며 다시금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즐거움, 이것이 나이 들어 하는 여행의 또다른 묘미인듯 하다.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 카페


베네치아 리알토다리 옆 수로변 레스토랑에서 마지막 밤 만찬을 즐기던 순간,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앞 광장 카페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게 실화냐?' 싶은 행복감이 밀려들었던 순간들, 천공의 섬 라뷰타의 촬영지인 토스카나지역의 치비타 디 반뇨레쪼로 들어가는 신비스러운 다리를 걸을수 있었던 것, 정말 이뻤던 포지타노와 카푸리.... 이같은 행복한 순간은 사랑하는 남편이 없었으면 결코 경험되지 못할 행복이었다. 


피렌체의 미켈란젤로광장


'언제 또다시 할수 있을까' 싶은 이탈리아 한달 베낭여행을 추억하며 나이들어 하는 여행의 의미와 효용을 생각해본다. 혼자서 20일, 그리고 둘이서 열흘을 함께 했던 여행. 둘중 무엇이 더 좋냐 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여행은 혼자서건, 둘이서건 좋은 것이다. 할수 있을때 주저하지 말고 하는게 좋다고 단언한다, 혼자서건, 둘이서건....

  

다만 한가지, 내 경우 여행이 주는 감동은 얼마나 아름답고 경외스러운 예술작품, 풍경을 보느냐 보다는 '그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순간'에 극대화된다는 것이  명확해지는 여행이었다. 정말 질릴 정도로 아름다운 예술품과 아름다운 풍경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이탈리아에서 단지 혼자서 그것들을 본다는 것은 '와~ 아름답다!' '열심히 살아서 이런데도 와보고 참 좋네!'하는 정도였는데 남편과 함께 보는 광경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 뭔가 생에 감사하게 되는 숙연한 감동을 주었다. 뭔가 이제 욕심을 좀 내려놓고 보다 감사하며 살고, 주위에 이 감사함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여행하며 여러번 했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무리해 보이는) 여행을 감행했냐'며 대단하다고 혀를 차는 지인들의 질문에 나는 이제서야 답을 할 수 있을듯 하다. 


어쩌다 중년...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어선 지금, 앞으로 가야 할 중년의 시간과 조금은 두렵기도 한 노년의 삶을 서서히 준비하기 위해 다시한번 힘을 내야 했다고.... 그러기 위해 중간 휴식과 점검이 필요했다고.... 그리고 열심히 산 인생에 한번쯤 상을 주고 싶었노라고.... 그리고 또 한가지, 아직 난 이렇게 하고 싶으면 실행하여 해낼 수 있는, '늙지 않은 능력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번 여행의 덤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혼자만의 장기 여행은 앞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혼자 해외 베낭여행은 사실 가성비 문제가 만만치 않다. 여행 전에도 준비해야 하는 많은 것들에 들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다녀와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중년이라서 그런지 더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이래서 한살이라도 젊을때 놀라고 했나 보다. 


한국으로 돌아와 거의 한달이 되어가는 오늘, 그러나 늦은 여행 후기를 쓰다보니 다시금 베낭을 매고 떠나고 싶은 유혹이 훅 들어온다. 아마도 한동안은 어렵겠지만 열심히 살다 언젠가 또 홀연히 떠나고 싶다. 다만 남편과 함께...! 


  

폴리냐노 야 마레


 



  

작가의 이전글 고통도 두배, 기쁨도 두배인 결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