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결혼식의 현실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결혼식 생각을 하면 못내 아쉽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우리 부부는 전주의 조그만 호텔 연회장에서 직계 가족과 친구 몇 명만을 초대해 총인원 이십여명의 스몰 웨딩을 치르고 부부가 됐는데, 사실 그것은 원래 우리 부부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라스베가스에 가서 작은 채플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치르고, 그 결혼사진을 지인들에게 전격적으로 투척하며 딱 한구절로 우리 결혼 소식을 알리려 했었다.
We just got married!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미국에 사는 동안 라스 베가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엘에이 인근에서 3년을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왔을 때마다 내 차에 태우고 네시간 정도를 달려 라스 베가스 스트립의 끄트머리 싼 호텔에서 묵곤 했었다. 그때마다 언젠가는 꼭 멋진 남자와 저 5성급의 베네시안 호텔에서 묵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특히 라스 베가스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린 스타들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도 어차피 일반 결혼식은 하기 싫으니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도 안주는 저런 형태의 결혼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그러다 연애시절 남편에게 우연히 이 말을 했더니 남편이 더 반색하며 그렇게 하자고 덥썩 미끼를 무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라스베가스에 가본 적이 없어서 겸사 겸사 가보고도 싶다며 당장 추진하자는 통에 실제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계획을 세운다고 해봤자 다 내가 알아봐서 계획하는 것이고 미국을 잘 모르는 남편은 그저 대한항공 비행기표 예매만 하는 것이었다.
5년전 시점에서 구글링한 결과로는 라스베가스의 작은 채플들은 단돈 5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리무진 픽업에 채플 예식서비스를 해주었다. 물론 이 가격은 가장 기본적인 예식 서비스, 그러니까 20분도 안돼 끝나는 성혼선언문 낭독 정도가 전부인 서비스였기에 이렇게 저렴했고 서비스가 많은 좀 화려한 웨딩을 원할 경우 가격은 올라간다. 서비스도 다양했고 어떤 서비스를 원하느냐에 따라 웨딩비는 천차만별이었다. 내가 신청하려던 서비스는 호텔에서 채플로 긴 세단의 리무진이 와서 데리고 가고 주례와 직원 한 명 정도가 간단히 예식을 진행해주는 가장 기본형이었기에 그렇게 저렴했다. 결혼식에는 신랑과 신부 친구 적어도 한명이 증인으로 대동해야 했는데 마침 엘에이에 살고 있는 남편 친구부부가 흔쾌히 같이 가주겠다고 하여 우리는 결혼계획을 구체화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엘에이 공항으로 가서 거기서 렌트카를 빌려 라스베가스로 이동한 후 거기서 결혼식과 관광을 하고 그랜드 캐년을 거쳐 하와이에 가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실로 알차고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남편은 당시 너무도 들떠서 결혼식날을 학수고대하는 눈치였고, 우리는 그렇게 중년의 라스베가스식(?) 결혼식의 주인공이 될뻔 했다.
미국 엘에이행 대한항공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라스베가스의 흔한 작은 웨딩 채플에 50만원을 입금하려는 순간, 불쑥 현타가 왔다.
그땐 남편을 만난지 불과 반년 정도 지났을 때인데 그런 편하지 않은 애인을 데리고 내가 렌트카 빌려 운전해 라스베가스로 가서, 결혼식장을 찾아가 흑인인지 백인인지 모를 결혼주례 전문 상업 목사님 밑에서 잘 안들리는 영어 땜에 웃픈 실수를 하지 않으려 바짝 긴장하고 예식을 치를 생각을 하니 갑자기 아찔해지는 것이다. 이게 진정 누구를 위한, 또 무엇을 위한 결혼식인가 하는 생각이 확 들면서 갑자기 결혼 자체가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부담 백배인 결혼을 하려고 라스베가스 가려던 것은 아닌데....? 내 지난 날의 로망에는 이런 구체적인 수고로움까지가 계상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식을 온전히 내 수고로움으로 해낼 생각을 하니 정말이지 갑자기 너무 하기 싫어졌다.
아마도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나는 라스베가스 결혼식을 기꺼이 강행했을 것같다. 어차피 가는 신혼여행 겸해서 라스베가스 약식 결혼이 좋은 대안일수 있었던 건데, 문제는 결혼식 전후를 둘러싼 이 전반의 이벤트를 해내기 위해서는 보통의 에너지가 필요한게 아니었던 것이다. 50이 된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렇잖아도 그 시기 갱년기가 스멀스멀 오고 있었던 터라 나는 정말로 계획이 구체화되니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으로 며칠을 아차 싶던 나는 염치 없지만 한껏 들떠있던 남편에게 이 계획을 취소하자고 말했다. 도저히 부담되어서 안되겠다고.... 중년인 우리가 하기엔 너무 피곤할듯 하다고.... 그렇게 우린 라스베가스 결혼식을 접었고 덕분에 항공권 취소 수수료 등 몇몇 예약 취소 수수료를 지불하느라 백만원 넘게 돈만 날리고 말았다. 그런 시행착오가 있은 후 우리가 최종적으로 하게 된 결혼이 몇 달 후 내가 사는 전주에서의 작은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순백의 웨딩 드레스도 입었음은 물론이다. 장단점이야 있겠지만 가뜩이나 긴장될 수밖에 없는 결혼식, 익숙한 곳에서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 것도 같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작은 결혼식이 더욱 대세가 되고, 예비 부부들의 로망이 반영된 이색 결혼식이 많아졌다는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5년전 실행하지 못한 라스베가스 결혼식이 생각나곤 한다. 그때 가서 했더라면 더 좋았을까? 더 행복했을까?
알수 없다.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자칫 여행하다 피곤해져서 싸우고 안좋은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마냥 편안한 관계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젊지 않아 피곤에 취약한 사람들이었으니....
모르는 미국인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진 않더라도 언젠가 남편과 라스베가스에 꼭 같이 가고 싶다. 아직도 비용이 그렇게 저렴하다면 리마인드 웨딩이라도 올릴지도 모른다. 나는 못하고 말았지만 꽤 괜찮은 아이디어이지 않은가?
로망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어쩌면 마음먹기 나름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얼른 얼른 실현시키자고 중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중년에도 결혼식은 소중한 이벤트이고 결혼은 더욱 좋은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