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처음 소개로 만난 6년 전의 여름날, 그날은 우리를 소개시켜 준, 사실상 남편의 친구들 둘과 넷이서 나만 어색한 술자리로 시작됐었다. 이미 술기운이 올라오던 셋이서 흥겨운 대화를 하는 시간이 1차 내내 이어졌고 나는 그저 그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미소를 띠며 안주만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내가 주인공이지 않은 시간이 이어지던 와중에도 앞에 앉은, 비범한 리엑션의 중년 아저씨를 보며 한순간 어렴풋이 ‘이 사람과는 한동안 만나겠구나’ 하는 인연의 이끌림이 순간 확 왔다. 생전 처음 경험한 느낌이라 스스로도 순간 깜짝 놀랐었다. 별 대화도 안나눴던 상황이고 남편의 외모가 연예인급도 아니라 신기한 일이었다.
느낌대로 그 후 서너번 정도 만났을 때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당시 남편을 만난지 석달도 안될 무렵 우릴 소개해준 지인과 여럿이 같이 한 모임자리에서 나는 ‘이번 겨울에 결혼해 버릴까봐?’하고 말하니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다들 말렸다. 심지어 우릴 소개해준 지인까지도...!
“왜 그렇게 결혼을 서둘러? 결혼은 그렇게 하는게 아냐~” 좀더 길게 친구처럼 사귀어보고 하라는 둥, 1년 사계절은 만나보고 하라는 둥 다들 결혼을 말려서 몇달 더 늦추기로 했다. 사실 사람들 말에 흔들려서는 아니고, 이미 남편과 나는 꽤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누구랄 것도 없이 곧 결혼해 가정을 이룰 것이라고 믿었기에 결혼식을 언제 하느냐는 그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추운 겨울방학에 하는 것 보다는 여름 방학이 낫겠다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결혼을 몇달 늦추기로 했다.
텔레비전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첫 만남에서 한눈에 반했다, 결혼할 사람이라고 느꼈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이~ 말도 안돼’ 하거나,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상대방이 미인이기 때문에 미모에 반했다는 거겠지' 하는 정도로 생각한다. 고로 그렇게 미남 미녀가 아닐 경우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 의외로 첫눈에 알아보는 경우가 다반사인 중년 결혼 커플들 -
내 경우, 그리고 주위에 중년이 되어 만나 결혼한 커플들을 보니 다소 느슨한 형태이나마 첫눈에 반해 하는 듯하다. 다만 첫눈에 반한다는 의미가 이팔청춘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색깔인데, 뭔가 청춘때처럼 가슴이 벌렁벌렁 하는 형태는 아닌 듯하고 뭔가 잔잔하게 우주의 기운이 모여지는 느낌이랄까? 잔잔하지만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 같다. 40대 초반에 결혼한 한 후배는 남편과 두 번째 만남에서 호텔로 갔을 정도로 한 눈에 알아봤다고 한다. 사실 그 친구는 남자랑 키스 한번 해본 적도 없는 모태솔로인데 어떻게 그런 대범함이 생겼는지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뭔가 이 사람과는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확신으로 고속 직행하는 것이 중년 성공 커플의 모습인 듯하다. 나도 그렇고 내 주위의 중년에 만나 결혼한 커플들이 모두 그랬다. 첫 인상은 너무 아니었는데 상대가 대쉬해서 만난 경우는 없었다. 종종 드라마를 보면 여주인공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데도 남주인공이 무슨 보살도 아니고 끈질기게 대쉬해서 사랑을 쟁취하게 되는 스토리가 많은데 현실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자존심 버리고 대쉬하지도 않거니와 한두번 거절 당하면 모두 나가떨어져 관계가 그냥 끊기고 만다.
심지어 중년의 만남은 첫 한발을 띠기도 힘든데 상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모두 첫 만남에서부터 둘다 끌림이 있었고 둘다 적극적이어야 성공하는 것 같다.
- 밀당했다간 망하기 일쑤인 중년 연애-
특히 중년 연애에는 보편적 연애기술이라는 밀당이 필요 없다. 그런 밀고 당기는 식의 잔머리를 안굴려도 된다. 그런 잔재주가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나이이기에 굳이 가벼운 테크닉을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밀당의 부작용이 더 클수 있다고 경고하고 싶다. 젊은 시절 연애할 때처럼 상대가 밀당을 하려고 한다면 중년의 데이트 상대는 지레 피곤해져서 그만 두고 말 가능성이 높다. 중년이 되면 피곤한 연애는 절대 못한다. 그럴 에너지가 중년들에겐 없다.
중년엔 그냥 좋다 싶으면 표현하고,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이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자기 확신이 청춘시절 보다 많아진다. 나이가 주는, 세월이 주는 경험치에서 우러나온 자기 확신과 지금 결혼해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절박함이 합해져 남보다 늦게 만났으니 빨리 같이 살고 싶어진다. 주위의 반대나 우려에 흔들림이 적고 그냥 과감하게 스스로를 믿고 밀고 나간다. 주위 중년 커플들도 하나같이 처음부터 급속도로 발전해 몇 달 사귀다 자연스레 부부가 되었다.
서로에게 확신이 빠른 중년의 만남,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결혼은 성숙한 부부 관계로 연결된다. 쓸데 없이 자존심 세우고, 사소한 일에도 날카로워지는 일이 별로 없는 중년 커플의 풍경들....
나는 정말로 중년 결혼을 권장한다. '내 배우자'라는 관계가 주는 압도성은 세상 무엇보다 비교우위의 안정감과 충만함을 준다. 중년에 결혼하면 참 좋다, 그게 초혼이든, 재혼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