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고종(高宗), 남송의 고종(高宗)
명심_
1. 사십 육 년이나 재위하면서 '한 국가의 사령탑'으로 일했다지만 실제로 소신껏 일할 수 있었던 때는
별로 없었다. 그는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양어머니 조대비와 친아버지 흥선 대원군에 가려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으며, 마침내 친정을 시작한 뒤에도 권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버지는 끈질기게
그의 왕좌를 노렸다. 그리고 역대 어떤 군주도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물결이 예고도 없이 닥쳐왔다.
그 속에서 그는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기 전에 '근대화'와 국권 수호의 힘겨운, 아니 거의 절망적인
싸움에 나서게 되었다.
누가 그의 편에 설 것인가?
그는 세도정권의 주역들처럼 강력한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위정척사를 내세우며 개화정
책을 못마땅히 여기는 선비들도 그를 돕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새로 나타나기 시작한 개화파는 고
종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일본의 힘을 빌려 나라를 단숨에 뒤바꿔 놓으려는 꿈을 꾸
었다. 외국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동학은 대원군과 손을 잡았고, 독립협회는 일본의 뜻에 따라 움직
인다는 의심을 받음으로써 마찬가지로 고종의 힘이 될 수 없었다. 그나마 힘이 되어준 건 명성황후
민 씨와 그녀의 일가친척들 뿐인데, 그 사실조차 보수와 진보,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여자에게 휘
둘리는 무능한 왕, 처가 식구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며 나라를 말아먹게 한 자격 미달의 지도자 같은
의심을 사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손마저 가슴 찢어지는 아픔 속에 놓아야 했다.
함규진_고종, 죽기로 결심하다
개인생각_
정말 흥미로운 주제의 내용이었다. 고종..이라는 묘효의 의미.. 특히 대원군의 권력욕이 병인박해로 이어지는 서사는 놀라울 정도다.
병인박해->병인양효->운요호사건->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동학의 재봉기
->민비시해->아관파천->광무개혁->러일전쟁->헤이그특사->순종에게 양위->고종승하->3.1 운동
숨쉴틈 없는 진행.. 세상의 모든 사건은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 된다면 함규진이라는 작가의 책들을 전체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 내가 배우고 싶은 글쓰기의 "결"이다. 이분의 글을 보면서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마지막 질문을 한다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지금은 조선의 고종이 무능력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고종이라는 이름은 당나라에도, 남송에도 있었다.
당나라의 고종은 황후 측천무후에게 지나친 권력을 줌으로써 결국에는 그녀가 당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최초의 여성황제가 되도록 했다.
남송의 고종은 간신의 대명사인 진회를 중용하고 충신 악비를 물리쳤으나, 결국 금나라에 스스로 신하로 칭하는 굴욕의 태도를 취해 겨우 나라를 보전했다. 후에는 황위를 물려주고 풍류나 즐기며 편안하게 살았다.
...
좀 소름 끼치는 사실이지만... 왜 하필... 나라가 완전히 넘어간 마당에 조선총독부는 망국의 제왕에게 굳이 '고종(高宗):높고 존귀하다'이라는 묘효를 정했을까?
"명성황후의 치마폭에 싸여 지냈고(중국최초의 여성황제를 만든 당나라의 고종),
종묘사직을 외국에 바치고 안일함을 추구했다(금나라의 신하를 자처한 남송의 고종)."
이름의 뜻과 달리 지금의 후세들에게 고종에 대한 평가는 이 정도이다.
이런 의미를 복선으로 깔고 '고종'이란 묘효를 정한 일제의 음흉한 계획대로... 우리들,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도 모르게 각인되고 있는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