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사탕

1000원

by 서애가

"경우가 1등으로 나왔구나!"

삼 남매 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내가 아버지를 첫 번째로 마중하게 되었다.

술기운이 잔뜩 올라 벌건 얼굴로 퇴근하신 아버지는 나를 칭찬하며 자신을 첫 번째로 마중 나온 막내에게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내미셨다. 학교도 아직 들어가지 않은 7살짜리 아이에게 천 원이란 돈은 엄청난 거금이었다. 당시 라면하나에 90 원하던 시절이었으니 다섯 가족의 한 끼를 해결할 수 을 정도의 큰 금액이었다.

"애한테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줘요!"

놀란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아버지는 술기운을 빌어 호기를 부리시면서

"내가 잘한 아이한테 용돈도 못줘?"라고 퉁명스럽게 답하셨다.

나의 손에 있는 천 원짜리 한 장은 부부간의 말다툼이 되었다. 왠지 이곳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갔고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이불을 덮고 두 눈을 꼭 감고 누웠다. 흥분과 설렘으로 잠들지 못한 아이의 머릿속에는 몇 번을 졸라도 안 사주셨던..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못 사주셨을 빨노파 신호등 사탕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빨노파 신호등 사탕을 먹게 되었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 잠이 오지 않았고 잠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부모님의 싸움의 끝이 어떻게 나던지.. 나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냥'신호등사탕' 이것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다음날.. 세 가지 맛의 신호등 사탕을 손에 넣은 아이는 파인애플향의 노란색 사탕을 선택해서 입에 넣고 빨간색의 딸기맛과 파란색의 사과맛 두 가지 맛을 소중하게 봉지째 왼쪽주머니에 한주먹 꽉 차게 넣고 다른 한쪽주머니에는 오백 원짜리 하나, 백 원짜리 네게, 오십 원짜리 하나 총 950원이라는 여섯 개의 동전을 한주먹 꽉 차게 쥐고 파인애플은 들어있지도 않을 파인애플향 사탕을 녹여먹으며 부자의 마음으로 저녁까지 하루 종일 행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녁에 퇴근한 아버지의 말씀에 행복한 기분은 이어지지 않았다.

어제와는 다른 목소리로 나를 부르시며 물으셨다.

"경우야.. 어제 아빠가 준 1000원 다 썼니?" 어린 나이였지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제일 나쁜 게 줬다 뺏는 건데..'

그냥 왠지 모를 울컥함과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울음을 참으며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아뇨, 신호등 사탕 하나만 사 먹어서 950원 남았어요."

잠시 찰나의 순간이었을 테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뜸을 들이시는 아버지의 침묵은 어젯밤 밤새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아이의 설렘 가득했던 잠 못 들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경우야.. 미안한데.. 그 돈 950원 아버지한테 다시 주면 안 될까?"

일곱 살 소년의 행복했던 부자놀이는 하루 낮으로 끝이 났다.

"아빠가.. 나중에 용돈 더 많이 챙겨줄게.. 아빠한테 줄 수 있지?"

그 조그마한 고사리손에 있던 동전들이 아이에게 하룻밤 행복을 꿈처럼 전해주고는 나의 아버지손으로 몽땅 넘어갔다. "원망, 속상함, 허탈함.." 그 어린 나이에 알지 못할 감정들.. 인생을 배운 순간이었다.

...

그날 다섯 식구의 저녁은 다른 날보다 조금은 특별한 반찬으로 채워졌던 거 같다. 그래봤자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몇 조각이었을 테지만... 아버지는 마음이 여려서 전날 엄마의 투정을 마음속에 두고 하루 종일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퇴근 때 어렵게 일곱 살짜리 막내아들에게 줬던 용돈 1000원 중 950원을 다시 달라고 해야 할 만큼 가난했던 가정의 가장이셨던 아버지였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거라 지금은 이해가 간다. 어떻든 그날의 특별한 고기반찬은 표현은 안 하셨겠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내민 말없는 화해의 손길이 아니었을까? 물론 7살 아이의 희생이 바탕에 깔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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