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 MBTI_열네번째

선조_이 연(생.1552~(재위1567~1608)~졸.1608_55세)

by 서애가

1.선조_이 연(생. 1552~(재위 1567~1608)~졸. 1608_55세)


2. 내가 느낀 그의 성격 : ISFP

동일한 성격의 조선왕_9대 성종


호기심 많은 예술가, 성인군자형

말없이 다정하고 온화하며,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상대방을 잘 알게 될 때까진 내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의견 충돌을 피하고, 사람 간의 화합을 중시한다.

사람과 관계되는 일을 할 때 감정에 지나치게 세심하고 민감한 경향이 있다.

이들은 결정력과 추진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Ni(내향 직관)이 3차 기능치 고는 발달 해 있어 [14] 눈치가 빠르다.

조용히 자기 일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변 상황 파악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과의 갈등이 심화되었을 경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 ISFP의 특성 중 하나이다.

문학, 음악,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예술가 기질도 있으며,

사회봉사 직종에도 잘 어울리는 유형이다.

따라서 평범한 회사 사무직이나 사회봉사직에도 적지 않게 분포하는 종류의 유형이다_출처 나무위키


3.ISFP의 성경인물-요셉


4.ISFP의 유명인

남 : 이재용, 김영철, 김종국, 김현수, 양준혁.. 등

여 : 나르샤, 간미연, 박보영, 안영미.. 등


5. 그의 삶에 결정적인 사건 : 임진왜란(壬辰倭亂)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년) 전국 시대가 끝난 도요토미 정권 치하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발발하여 1598년(선조 31년)까지 이어진 전쟁이다.

두 차례의 침략 중 1597년의 제2차 침략을 정유재란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뿐만 아니라, 대명과 여진족 등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전쟁의 결과, 조선은 경복궁과 창덕궁 등 2개의 궁궐이 소실되었고,

인구는 최소 100만 명 이상감소했으며, 경작지의 2/3가 소멸했다.


6. 그의 삶을 함께한 사람들 : 율곡이이,퇴계이황,유성룡, 오성과 한음, 이순신, 허준, 이경록, 신립, 원균,

곽재우, 권율,김덕령,이산해, 정여립,정철,조헌,고경명 등


7. 그의 가장 큰 업적_젊은 이순신과 이경록의 사면.


이순신이 녹둔도 조산보 만호(현 중위정도)였던 시기 녹둔도 전투에서 조선인 11명이 전사하고 군민 160여 명이 납치되며 15 필의 말도 약탈당했다.

하지만 1,000명 이상의 기마병에게 기습당한 상황에서 불과 수십 명으로 방어에 성공하고 반격까지 감행,

50여 명의 포로를 구출해 피해를 최소화해서 할 수 있는 대처는 다 했다고 인정받았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과 이경록은 용맹을 제대로 보여줬으며 이순신이 단지 훌륭한 전투지휘관으로

끝나는 인물이 아니라 무예도 뛰어났음을 증명했다.

저 정도 병력 차이라면 장수의 무예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전투이다.

북병사 이 일은 일단 패전의 책임을 물어 경흥부사 이경록과 조산만호 이순신, 선전관 이운룡 등을 잡아 가두었으나 조정은 경흥부의 녹둔도가 야인 지역과 너무 가까워 처음부터 소수의 병력으로 방어하기 힘들었음을 파악하고 있었고, 이순신과 이경록의 보고를 종합한 이일의 장계를 통해 이순신이 열세한 상황에서

충분히 분전했음을 인정하고 국왕인 선조가 이순신은 패배한 것과는 다르다며 구분 짓고

장형을 친 후 백의종군으로 마무리지었다.


이순신과 이경록을 죽여야 한다는 신하들의 읍소를 무시하고 그를 살린 것이 선조였다.


후에 이순신은 남해바다를 지배함으로 조선을 지켰고 조정의 보급이 없어진 상황에서

제주도에 있던 이경록은 때에 맞는 보급으로 조선수군에 힘을 불어넣었다.


8. 그의 가장 큰 실수

- 기축옥사(己丑獄事)

조선 선조 때 발생한 옥사로, 1589년 10월,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에서 시작되어 약

3년간 정여립과 연루된 1,000명의 동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여립의 옥사로도 불리는 이 옥사는

붕당정치가 시작된 초반 과도기에 당쟁에 의해 벌어진 권력투쟁사건이다.

사화(士禍)와 붕당(朋黨)으로 지배체제가 크게 동요한 16세기에 벌어진 기축옥사는

조선시대 역모사건 가운데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후에 동인김성일과 서인황윤길의 엇갈린 보고로 임진왜란초반에

전쟁을 대비하지 못하게 한 사건의 원인이기도 하다.


선조만큼 엘리트교육을 받은 이도 드물고

선조만큼 많은 분야의 천재들을 골고루 등용한 조선왕도 없었고

선조만큼 자신이 등용한 천재들을 시기질투한 조선왕도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캡처.JPG 선조가 아픈 딸(정안옹주)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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