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사보나롤라, 프랑스 혁명, 그리고 트럼프의 미국

by 슈퍼T
Girolamo_Savonarola.jpg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초상화 (1498년경) (이미지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공공 도메인)


Gros_-_Louis_XVIII_of_France_in_Coronation_Robes.jpg 루이 18세의 대관식 복장 초상화 (이미지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공공 도메인)


역사는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민낯


“역사는 되풀이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칼 마르크스가 남긴 이 유명한 말은 역사가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벌어진 사건이 심각하고 비극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비슷한 사건이 나중에 다시 벌어질 때는 원래의 심각함이나 무게를 잃고 희극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현된다는 뜻입니다. 즉, 역사적 사건이 반복되더라도 그 맥락이나 결과가 동일하지 않고, 두 번째 반복은 첫 번째만큼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러니하거나 어이없는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경구가 아니라, 역사를 읽는 하나의 중요한 관점입니다. 역사는 과거 사건들이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 반복되는 현상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인간의 심리와 사회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우고 주목해야 할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불타는 그림, 잘리는 머리, 그리고 다시 돌아온 대통령

1497년 봄, 이탈리아 피렌체의 시청 앞 광장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불을 지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불길은 단순한 쓰레기를 태우는 불이 아니었습니다.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거울, 아름다운 비단 드레스,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들, 그리고 심지어 보티첼리가 그린 르네상스의 상징이던 신화화 일부까지도 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시 피렌체 사회가 아름다움과 예술이라 여기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이 극적인 장면을 이끈 사람은 한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였습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르네상스 문화의 화려함을 ‘신에 대한 모욕’이라 단죄하며, 피렌체를 다시 ‘신의 도시’로 되돌리겠다고 외쳤습니다. 그의 강력한 설교는 많은 시민들의 열광을 불러일으켰고, 한때 르네상스를 찬미하던 도시를 엄격한 신정주의 사회로 뒤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질서는 결국 스스로의 내적 모순과 권력 투쟁 속에서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18세기 말, 이번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역사의 또 다른 비극이 펼쳐집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루이 16세 왕과 귀족들의 사치와 무능은 결국 시민 혁명의 불길을 피워올렸습니다. 그 혁명은 자유와 평등, 박애를 외치며 구체제를 무너뜨렸지만, 곧 그 대열은 공포 정치로 전환되었고, 수많은 사람의 목이 단두대에서 떨어졌습니다. 혁명의 열망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제정으로, 다시 왕정 복고로 이어지면서 과거로의 회귀를 경험합니다. 자유와 혁명의 이름으로 시작된 변화는 결국 또 다른 권력의 탄생과 사회의 혼란을 낳았습니다. 혁명이 가져온 격변은 새로운 안정과 질서를 갈망하는 사회적 욕구와 충돌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구체제의 재등장을 불러왔습니다.

시선을 현대 미국으로 옮겨보면, 이 역사적 반복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몇 년 전 폭동과 혼란이 있었던 미국 의사당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 남자가 다시 대통령 후보로 돌아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그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고, 퇴임 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일부는 그를 민주주의의 파괴자라 비판하고, 또 다른 일부는 ‘진짜 미국의 수호자’라며 찬양합니다. 그의 등장은 미국 사회 내부의 깊은 분열과 갈등, 그리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향수의 복합적인 감정을 상징합니다. 급격한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과거의 모습을 다시 불러내려는 사회적 힘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유

이 세 가지 사건은 서로 시대도 다르고 정치적 상황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진실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급격한 변화 뒤에는 언제나 과거를 향한 강렬한 유혹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사회가 불안과 혼란을 겪을 때, 사람들은 흔들리는 현실에서 안정감을 찾기 위해 과거의 질서나 상징을 다시금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때로는 보수주의의 형태로, 때로는 극단적인 복고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글은 피렌체에서 파리로, 그리고 워싱턴 D.C.까지 이어지는 이 역사적 평행선을 따라가며,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의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역사가 보여주는 ‘회귀의 심리’와 ‘진자의 운동’을 깊이 탐구하면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역사와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키워나가고자 합니다.


도덕의 이름으로, 혁신을 거부하다 — 사보나롤라의 피렌체

1490년대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였습니다. 르네상스의 진원지로서 고대 문명의 부활을 꿈꾸던 인문주의자들이 모여들었고, 예술과 사상이 꽃피는 곳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메디치 가문이 있었고, 이곳은 곧 ‘예술과 권력, 돈과 사상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찬란한 빛을 만든 주역은 메디치 가문이었습니다.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손자 로렌초 ‘일 마니피코’는 단순한 은행가가 아니라 정치인이자 외교가이며, 예술의 후원자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시기 피렌체에서 첫 제자로 활동했고, 미켈란젤로는 로렌초의 저택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보티첼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부활시키며 세속적 아름다움을 찬양한 대표적인 화가였습니다. 이처럼 피렌체는 ‘이성과 아름다움의 낙원’이었고, 문화가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르네상스의 이면에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부의 집중과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농민과 중산층 시민들은 전쟁과 과도한 세금에 시달렸습니다. 고대 로마 신화를 묘사한 누드화가 성당 벽을 채우고, 화려한 연회와 가면무도회, 사치스러운 의상이 거리를 뒤덮으면서 피렌체는 점차 ‘사치의 도시’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을 잊은 도시’, ‘도덕을 잃은 사회’라는 비판이 고조되었고, 이에 맞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였습니다.

사보나롤라는 1452년 이탈리아 페라라에서 태어난 도미니코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세속 문명을 혐오하며 금욕과 종말론에 집착했습니다. 1480년대 피렌체에 와서 설교를 시작했으나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는 ‘종말론적 비전’을 강하게 외치며 도시의 미래를 경고했습니다.

“이 도시는 불길에 휩싸일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몰락하고, 오직 신의 정의만이 이 도시를 구원할 것이다!” 라는 그의 예언은 1492년 로렌초 데 메디치 사망과 1494년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침공으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권력을 잃고 도망쳤으며, 충격에 빠진 시민들은 사보나롤라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단호했고 분노에 가득 차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당신들도 죄인이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1497년 2월 7일,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거대한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이 불길은 단순한 쓰레기를 태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귀족들의 거울, 향수, 화장품, 카드놀이 도구, 사치스러운 옷과 함께 고전 문학인 호메로스와 오비디우스의 책들, 그리고 보티첼리의 신화화 일부까지도 불태워졌습니다. 이 ‘허영의 화형식’은 단순한 도덕 운동이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문명을 상징적으로 불태운 정치적 퍼포먼스였습니다. 사보나롤라는 예술과 철학, 심지어 과학까지도 희생시키면서 피렌체를 ‘신의 도시’로 만들려 했습니다.


도덕적 열광은 왜 반혁명이 되었는가?

사보나롤라가 독재자가 아니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그는 시민들에 의해 선택받았고, 대중은 그를 숭배했습니다. 시민들은 화려한 예술보다 정신적 구원과 도덕적 명확성을 갈망했던 것입니다. 이 열광은 강렬했지만 짧았습니다. 그 도덕주의는 급진적이었고 결국 반대파에 의해 사보나롤라는 체포되고 고문당한 뒤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1498년, 그의 짧은 혁명의 불씨는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가 무너뜨리려 했던 르네상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미켈란젤로는 위대한 다비드 상을 조각했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새로운 정치철학을 열었습니다. 피렌체는 다시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이처럼 도덕의 이름으로 혁신을 거부하려던 시도는 결국 역사적 흐름에 의해 다시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변화와 보수, 혁신과 반혁명 사이에서 인간 사회가 겪는 긴장과 갈등을 깊이 보여줍니다.


자유는 피로하고, 왕정은 익숙하다 — 프랑스 혁명과 복고주의

“자유여, 너의 이름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1789년 프랑스 파리는 단순히 구체제의 무너짐을 넘어 인류 역사에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온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해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되었고, 왕의 권위는 무너졌으며, ‘왕 없이도 세상은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대중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의 시작이 감동적이고 희망적이었던 만큼,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자유란 감동을 주는 동시에, 피로하고 두려운 것이며 매우 큰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첫 모습은 빛났습니다. 민중이 자유를 외쳤고,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왕과 성직자의 특권은 해체되었습니다. 국민 주권의 개념이 부상하며, 정치의 주체가 시민으로 이동하는 혁명적 변화가 펼쳐졌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급진적이자 진보적인 질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곧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루이 16세는 처형당했고, 귀족과 성직자들은 추방되었으며, ‘공화국의 적’이라 불린 수천 명이 단두대에 올랐습니다. 1793년부터 1794년까지 이어진 ‘공포 정치’ 시기 동안, 로베스피에르는 단순히 정권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성격과 도덕을 새롭게 만들려는 이상을 품었습니다. “국가는 시민을 덕으로 만들고, 혁명은 인간을 새로 탄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주의는 현실의 인간에게는 가혹한 요구였습니다. 친구가 배신자가 되고, 이웃이 감시자가 되며, 한마디 말조차 생사의 갈림길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자유는 그토록 원했던 ‘빛’이 아니라 공포와 감시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혁명은 단지 정치 체제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 언어, 일상적 질서까지 뒤흔들었습니다. 달력이 바뀌었고, ‘당신’을 뜻하는 존칭 대신 ‘너’라는 반말이 사용되었으며, 교회는 폐쇄되고 대신 ‘이성의 여신’이라는 새로운 제단이 세워졌습니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는 시민들에게 엄청난 피로를 안겼습니다. 자유는 뿌리내리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데, 너무 많은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뀌면서 시민들은 혼란에 지쳐 안정과 질서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틈을 타 질서와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고, 1804년 스스로 황제에 즉위합니다. 그는 자신을 ‘혁명의 계승자’라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권위와 위계질서를 복원하는 제국의 군주였습니다. 귀족제를 부활시키고, 언론을 검열하며, 종교와 타협하는 등, 나폴레옹의 통치는 구체제의 여러 요소를 되살렸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에게 환호했습니다. 왜냐하면, 혼란과 불확실성보다는 예측 가능한 권위가 더 큰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유’보다 ‘안정’을, ‘공화국의 이상’보다 ‘질서 있는 제국’을 선택한 셈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난 뒤, 유럽 왕조들은 다시 힘을 회복합니다. 1815년 빈 회의에서는 부르봉 왕조의 복권을 결정했고, 루이 18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왕정은 복원되었지만, 혁명 이전의 절대왕정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헌법이 존재했고, 언론의 자유도 제한적이나마 인정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이전처럼 무조건적인 복종을 거부했습니다. 즉, 왕정은 돌아왔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 구조는 이미 변했고, 과거로의 완전한 복귀는 불가능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었지만, 그 안에는 늘 자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반작용이 내재해 있었습니다. 사보나롤라의 피렌체 시민들이 도덕과 신의 질서를 열망했듯, 프랑스 민중도 이념보다 생활의 안정과 질서를 원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이상주의는 때때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변화의 통과의례이며 자유가 얼마나 고된 싸움인지를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미국의 ‘위대했던 시절’은 어디였을까? — 트럼프와 현대의 회귀

“우리는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J. 트럼프가 내건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은 단순한 정치 구호를 넘어 수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동시에 현대 사회에 대한 막연한 피로와 불안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위대했던 시절’은 언제였으며, 누구에게 위대했던 시절이었을까요?


향수의 정치학: 이상적인 과거라는 환상

트럼프가 말하는 ‘위대한 미국’이 언제를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1950년대의 미국을 떠올립니다. 당시 미국은 보수적 가치가 지배했고, 백인 중산층이 번영했으며, 세계 최강의 경제 및 군사 강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동시에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였고, 여성의 권리는 제한적이었으며, 성소수자들은 사회의 그늘 속에 머물러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즉, 트럼프가 내세운 과거는 모두를 위한 과거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재구성된 과거의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그의 지지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정서를 공유합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방인이 된 것 같다.” 트럼프는 바로 이 불안과 상실감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데 뛰어났습니다.

트럼프는 단순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존 공화당 엘리트와 기득권층을 강하게 비판했고, 주류 언론을 ‘부패한 권력’으로 규정하며 대중과 분리된 체제를 공격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것은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감정적 프레임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무시한다.”, “나는 그들과 싸울 유일한 사람이다.”, “우리만의 미국을 되찾자.” 이러한 메시지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를 넘어서,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위기의식과 정체성 정치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이는 사보나롤라가 도덕의 이름으로 르네상스를 불태웠던 심리, 프랑스 민중이 혼란을 피해 왕정으로 돌아갔던 심리와 유사합니다.

2021년 1월 6일, 수천 명의 트럼프 지지자가 미국 의회를 점거한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전례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집단적 열망과 광기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이 외친 것은 ‘자유’가 아니라 ‘우리만의 질서’였으며, 지키려 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이 믿던 과거의 안정과 확신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트럼프는 공화당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2024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정치적 복고주의의 현대적 형태’로 해석합니다. 이는 단순히 한 인물의 재등장이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정신적 회귀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보나롤라가 신정질서를 재구성하려 했고, 프랑스가 입헌군주제로 왕정을 부활시켰듯, 트럼프 역시 이상화된 과거의 질서를 복원하려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완전한 회귀를 허용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어떤 회귀가 일어나더라도 완벽한 과거로의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로 다시 부흥했고, 프랑스는 궁극적으로 공화국 체제를 회복했으며, 미국 또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 해도 과거와 같은 시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한 번 경험한 변화는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에 깊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흑인 민권 운동, 여성의 권리 신장, 성소수자의 가시화, 이민자 다양성 등은 미국 사회에 굳건히 새겨진 자취이며, 아무리 강력한 복고 정치라도 이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불안이 어떻게 정치적 동력으로 전환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회귀가 갖는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공통된 구조, 다른 옷을 입은 역사

역사는 마치 무대 위 배우처럼 그 옷을 갈아입고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중세 피렌체의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불러일으킨 신정주의적 회귀, 혁명의 혼란 속에서 다시 왕정을 맞이한 프랑스, 그리고 21세기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나타난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 현상까지, 이 세 사건은 시공간과 인물, 제도가 모두 다르지만 그 뿌리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이 닮은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바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공통된 구조는 급진적인 변화 뒤에 뒤따르는 불안과 피로입니다. 사보나롤라가 등장한 시기의 피렌체는 르네상스라는 급진적인 문화 부흥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종교적 질서가 흔들리고, 예술과 사상의 자유가 꽃피는 가운데, 동시에 시민들 사이에서는 도덕적 불안과 사치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습니다. 프랑스 혁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권과 특권의 붕괴라는 거대한 변혁이 일어났지만, 그 혼란과 공포 정치의 시기는 민중에게 깊은 피로와 혼란을 남겼습니다. 결국 그들은 질서와 안정을 갈망하며 왕정을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현대 미국에서 트럼프가 부상한 배경 역시 급격한 다문화 사회의 확장과 진보정치의 대두, 그리고 이에 따른 백인 중산층의 정체성 위기와 소외감입니다. 급격한 변화를 겪는 사회는 언제나 ‘변화가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며, 이 감정이 커지면 과거에 대한 미화와 회귀 욕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두 번째 공통된 구조는 권위와 도덕의 언어로 포장된 회귀라는 점입니다. 사보나롤라는 신과 순결이라는 종교적 도덕의 이름으로 세속적 르네상스 문명을 부정했고, 부르봉 왕정은 왕권과 전통이라는 권위의 언어를 앞세워 혁명으로 무너진 질서의 복원을 시도했습니다. 트럼프 또한 미국의 정체성과 법과 질서라는 구호를 내세워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재를 단순하고 명확한 도덕적 프레임으로 재구성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회귀는 단순히 과거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행위가 아니라, 불안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일종의 도덕적 위안이며 정치적 도구입니다.

세 번째 공통된 구조는 열광하는 민중과 회귀의 짧은 한계입니다. 이 회귀들은 처음에는 대중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는 권력에 의한 억압이 아니라, 심리적 위안과 안전을 갈망하는 민중의 열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회귀들은 모두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보나롤라는 불과 몇 년 만에 체포되어 화형당했고, 프랑스의 복고왕정은 입헌군주제로 제한된 권력만을 유지하다 결국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트럼프의 시대도 마찬가지로, 그의 권력이 잠시 후퇴한 뒤에도 미국 사회 내 깊은 분열과 갈등을 계속 낳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과거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다는 한계 때문입니다. 한 번 경험한 변화는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에 깊게 각인되어 영원히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 세 사건은 이렇게 닮은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각각은 자신만의 시대적 특성과 복잡한 맥락 속에서 전개되었습니다. 르네상스 피렌체의 사보나롤라는 신의 정의라는 절대적 가치 앞에 사치를 단죄했고, 프랑스의 복고왕정은 혁명의 혼란을 수습하며 권위와 전통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정체성과 경제적 불안을 대변하는 한 정치 현상으로, 복고라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진자 운동 속 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진자의 궤적을 그립니다. 진보와 퇴보, 개혁과 회귀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뒤로 물러나지만, 전체적으로는 점진적 변화를 이룹니다. 이 같은 역사의 패턴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속에 숨은 심리와 사회 구조를 이해할 때,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되새기며 더 현명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옷을 다른 시대가 입고 돌아오는 역사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일은 그 어떤 이론보다도 우리에게 깊은 통찰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며, 그 속에서 현재를 비추는 거울을 찾는 길입니다.


결론: 회귀는 환상이다. 그러나 강력한 유혹이다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 번의 역사적 회귀를 목격했습니다. 중세 피렌체에서 사보나롤라는 타락한 르네상스를 정화하겠다며 중세적 질서로 돌아가려 했고, 프랑스 혁명 후 혼란에 지친 민중은 왕정을 다시 맞이하며 안정을 갈망했습니다. 현대 미국에서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예전의 미국’을 꿈꾸며 도널드 트럼프를 정치 무대로 불러냈습니다. 이 모든 사례에서 공통점은 ‘지금보다 나았던 어떤 때’를 상상하고 그 환상을 현실의 선택으로 옮겼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과거’란 정말 존재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존재했던 것처럼 믿고 싶은 환상에 불과했던 것일까요?

인간에게는 ‘회귀 충동’이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때로는 질서 있는 억압이 혼란스러운 자유보다 더 편안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미래가 너무 빠르게 다가오고, 기존의 정체성이 흔들리며,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그리고 감정적으로 극심한 피로를 느낄 때, 집단 전체가 회귀의 본능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보보다 회귀를, 이상보다 관습을, 다양성보다 동일성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 심리를 간파한 권력자들은 ‘원래의 위대함’, ‘전통의 질서’, ‘신의 뜻’ 같은 상징을 내세워 과거의 복원을 약속합니다. 이 회귀는 심리적으로는 안정감을 주지만, 정치적으로는 미래를 향한 문을 닫아버리는 강력한 유혹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과거는 복원되지 않습니다. 사보나롤라가 꿈꾼 ‘신의 도시’는 결국 피렌체를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로 다시 일으켰고, 프랑스 왕정은 복원되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공화정으로 다시 재편되었습니다. 트럼프가 말한 ‘위대한 미국’은 이미 이민자, 여성, 성소수자, 젊은 세대의 삶 속에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회귀는 완전한 복원이 아니라, 과거의 일부 단편을 끌어와 만든 새로운 질서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질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한 번 확장된 인간의 의식은 다시 줄어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아름다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프랑스 시민들은 ‘자유’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뽑아낼 수 없으며, 현대 미국인들은 SNS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1950년대적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역사는 회귀를 통해 전진합니다. 회귀는 실패할지라도, 그 실패 속에서 사회는 자기 구조를 다시 조정합니다. 사보나롤라 이후 르네상스는 더 깊은 인간 이해로 나아갔고, 프랑스는 왕정을 거친 뒤 진정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했으며, 미국은 트럼프 시대를 겪은 후 정체성과 권력의 문제를 더욱 날카롭게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귀는 역사의 후퇴가 아니라 자기 점검과 통과의례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비판적 기억과 집단적 학습입니다. 회귀라는 유혹 앞에서 우리는 기억해야 하며, 배워야 합니다. 회귀에 맞서는 힘은 단순한 진보 정책이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입니다. 첫째, 집단의 기억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상상력의 회복입니다. 과거가 아닌, 아직 오지 않은 ‘가능한 미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셋째, 감정의 언어입니다.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며, 감정으로 말하고, 공포에 감정적으로 응답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즉, 회귀의 유혹은 지적 대응만으로는 막기 어렵고, 정서적 방어력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회귀는 환상임에도 불구하고 때로 현실보다 더 큰 위로를 주는 강력한 유혹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이 역사 속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회귀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귀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진짜 변화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늘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결국은 그리운 과거를 다시 발명하며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이며, 우리가 반복 속에서도 진보를 이룰 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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