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부름을 읽고
<아이들 모임- 2달 전 책 읽는 모임에서 읽은 야성의 부름> 초등 5학년 아이의 시선에서 느낀 글
이 책은 평화로이 자기 집에서 사람들과 지내던 한 개가 갑자기 납치를 당해 야성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고 마지막에는 결국 늑대로서 살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벅은 산타클라라 계곡의 어느 저택에서 밀러 판사라고 불리는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저택의 정원사의 조수들 중 한 명인 마누엘이 벅과 몰래 저택을 빠져나와 벅을 이방인에게 팔아넘겼고 벅은 썰매를 끄는 개가 된다. 벅은 그곳에서 차츰 썰매 개로서의 생활에 적응한다. 어떤 날에는 개들을 혹사시키고 밥도 주지 않는 사람이 벅과 개들을 샀다. 그 사내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졌고 보다 못한 존 손턴이라는 사람이 벅을 데려갔다. 벅은 손턴의 사랑과 애정을 받으며 살다가 손턴과 함께 동부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던 벅은 다른 늑대를 만나 야성의 세계에 한 발을, 그리고 손턴과의 애정이 많은 세계에 한 발을 딛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이해츠 족이라 불리는 부족의 손에 손턴이 죽자 벅은 완전히 야성의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책에서는 ‘야성의 부름’을 벅이 손턴과 동부에 있었을 때 숲에서 들려온 늑대에 울부짖음에 비유한 것 같다. 벅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충동과 그리움 같은 감정을 느꼈고 유혹에 이끌려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즉, ‘야성의 부름’이란 동물이 태어날 때부터 자각하는 그런 사실들을 뜻한다. 나도 그런 느낌을 느껴보고 싶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자기의 본능대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단 지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되겠다.
과연 인간도 그런 야성의 부름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동물관 다르게 지능이 있어서 야성의 ‘감’보다는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사실에 따라 생각을 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이 지능이 없어진다면 가능할까? 아마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지능 없는 인간’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지능이 없으면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총이나 무기 같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야생동물과 싸우면 아마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본능이라는 차이점이 또 있는 것 같다.
결국 이 책의 교훈은 ‘동물을 하찮게 보지 마라. 동물은 우리가 얻지 못할 본능을 가지고 있다.’인 것 같다.
오빠들 읽어줄 때 옆에서 듣던 막내가 3학년 가을쯤 혼자 책을 즐기게 되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혼자 책을 즐기는 시간이 있었다.
작년에 둘째 독서모임이 생기면서 막내도 같이 꺼서 오빠, 언니들과 책을 읽고 가끔 감상문을 적어서 읽는 시간.
작년 초에 아이의 글과 지금 아이의 글이 많이 달라져서 신기하다.
아이가 되고 싶은 꿈은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사, 요리사였는데 지금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최근.... 글 쓰기를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아이가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무엇이 되건 책을 즐기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