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저학년까지... 성향상 워낙 신중하고 낯선 것을 시작하기 힘들어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데 기회(시기)를 다 놓치면 어쩌지?'
최대한 아이가 원할 때 배움을 시작하도록 기다리는 편이었지만 운동과 미술 학원은 권유를 해서 보내기도 했었다. 한번 시작하는 건 고민하고 망설여하지만 시작하면 꾸준히 지속하는 스타일이라 배움을 통해 쌓이는 것들은 제법 많았다.
큰 아이는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고민만 6개월을 했다. 자신은 태권도를 할 줄 모르니 혼자 연습해서 잘하게 되면 가겠다고 하는 아이였다. 그랬던 큰 아이의 변화는 초등학교 3학년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클래식 음악 듣기가 취미였던 아이는 바이올린 소리를 유독 좋아했다.
영화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너무 좋아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바이올린이 얼마나 좋았는지 (기타를 배우고 있었음에도) 방과 후 교실이라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처음으로 아이가 간절히 원해서 배우게 된 바이올린.
본인이 선택한 악기여서 일까? 클래식 기타도 5년을 배워 제법 잘 쳤지만 결국 바이올린을 선택하여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악기다.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한참(6개월 가까이)을 조르길래 가을쯤 피아노를 보냈고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즐기면서 배우고 있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 적이 없다.
둘째와 막내는 첫째와 성향이 달라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은 확실히 말하는 편이었고..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아이가 정말 정말 원할 때까지 기다려서 보냈다.
둘째는 5학년 때 1년을 졸라서 수학학원을 보냈는데 보내기 직전에 다니고 싶어서 눈물까지 흘렸다. 6학년쯤 보내려고 했었는데 (예상보다) 몇 개월 먼저 다니게 되었고 중 2가 된 지금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
막내는 운동을 좋아해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하는 리듬체조를 다녔고 복지관에서 수영도 배웠었다.
나와 달리 몸놀림이 유연하고 끼가 있는 막내여서.. (언젠가) 춤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원하지 않았다.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시킬 수가 없어서 (가끔) 춤 관련 영상을 보여주거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관심을 끌어보려고 했지만 다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던 딸이 요즘.. 춤에 관심이 생겼다. 유튜브로 노래에 맞게 기초부터 알려주는 채널을 보고 연습을 하는 뒷모습을 보자니.. 신기하다. 역시 아이의 자발성이 가장 먼저다! 확신이 든다.
피아노 선생님이 두어 번 아이가 음악을 즐기고 좋아한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내가 볼 때) 아이는 분명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아직은) 실력이 탁월하거나 연습량이 많지는 않다.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아이가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로 크면 그걸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선생님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배움을 즐기는 모습을 볼 때.. 부모로서 흐뭇할 때가 있다. 나는 배움이 학업으로 여겨져서 부담이 되기도 했고 결과를 의식하니까 어느 순간 재미보다는 성취 쪽으로 기울었다.
그 결과 과정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결과에 연연했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스스로 하는 배움,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독서, 언어 공부가 재밌어졌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순간순간을 즐기다 보니 얼마 전보다 더 나아진 실력에 스스로 만족해한다.
큰 아이는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수업 시간이 재밌다고 했다. 교과서가 재밌기는 어려운데.. 좀 신기했다. (나의 경우) 교과서를 보면 시험이 생각나고 외워야 하는 게 버겁게 느껴졌던 거 같은데..
아이는 훈민정음의 원리에 흥미를 느끼고 처음 배우는 스페인어의 문법을 신기해한다. 그날 처음 배운 향가에 대해 설명하면서 눈이 반짝거리고 신나 보였다. '향가가 재밌다고? really?' 전에 DNA에 대해 배우면서 너무 신기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받은 충격이 적지 않았다고...
아이는 시험과 학업을 곧바로 연결시키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험 결과로 속상할 때도 있지만 공부 자체에 대해 지겹거나 재미없다는 느낌 자체가 없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지 그건 모르겠다. 다만 아이가 대학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즐기면서 깊게 공부하며 성장할 것 같다. 아이의 인생에는 항상 배움의 길이 펼쳐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둘째는 게임 유튜브 편집에 빠져있다. 편집 시간이 필요하기에 둘째만 (그 시간을 고려해서) 일주일에 편집 포함 4시간 반 인터넷 게임 시간을 허용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그 시간을 거의 다 게임에 쓰고 편집은 안 할 줄 알았다. 아이는 편집의 재미가 상당하여 꾸준히 1, 2주에 1번씩 영상을 올린다.
아이: 엄마. 난 편집이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어. 영상을 올리려면 게임만 즐길 수는 없거든. 컨셉에 맞게 신경 써서 해야 하니까. 그런데도 난 게임만큼 영상 준비하는 게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