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를 기르면서 일을 내려놓고 지냈다.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마음 한 구석에 부러움도 있었고 심리학과 동기는 직접적으로 나에게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언니. 나중에 후회할지도 몰라요."
(진짜 그럴 것 같아 먹먹하기도 했다.)
특별한 재능도 직업적인 성공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들을 도움 없이 기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육아가 잘 맞긴 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존재했었다.
그러다 외국에 가서 몇 개월 지내는 기회가 생겼고 어렵게 시작한 파트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떠났다.
영어도 잘 못하고 남편도 회사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겁 없는 앞뒤 크게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 이럴 때 티가 난다. 큰 아이는 5학년, 둘째는 3학년, 막내는 7살이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가자마자 3일 후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갔다. (사실 아이들은 외국인을 거의 처음 만났고 영어회화학원조차도 보낸 적이 없었다.)
나처럼 아이가 셋이면서 남편 없이 온 가정도 없었다.
게다가 영어도 못하는데 한국인도 열 손안에 드는 곳으로
간 거였으니... 그곳에서 만난 한국 엄마가 신기해했다. 영어라도 유창한 줄 알았다고...
6 개월의 시간 동안 힘든 것도 있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타지 생활에 가장 적응 잘하고, 평온하게 지내는 엄마'
로 불리게 되었다.
일단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졌고 초대받고 초대하며 지내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영어를 잘하는
엄마들도 (신기하게) 한국인들과 다니면서 지내고 외국인과는 잘 친해지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말도 잘 못하는 나를 좋아해 주었다. 항상 나를 껴주고 챙겨주고 내가 떠듬떠듬 엉뚱한 단어들을 내뱉어도 기다려주고 먼저 다가와주었다. (내가 평온하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시며 내가 믿는 종교에 대해 궁금해졌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
그곳엔 한인도 거의 없어서 한인회도 없었고 가끔 단기 어학연수 유학생들이 거쳐가곤 했다. 한국 가정은 우리 가정을 포함해 (현지인과 결혼해서 정착한 몇 가정을 빼곤) 5~ 6 가정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가자마자 한인 교회도 없어서 현지 교회에 참석했고 한 두 달 지나 갑자기 한인교회를 세우고자 목사님 몇 분이 방문하셨다.
그곳에 가 있는 동안 처음으로 한인 교회가 생겼고
우리 가정 포함 4 가정이 그 시작점이 되었다.
그 가정 중 한 분이 임시 장소를 물색하셨고
어학원에 딸린 작은 교실에서 예배가 시작되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초대교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참여하는 4 가정 아이들로 찬양팀이 급하게 결성되고 큰 아이는 한국 학교 방과후에서 배운 바이올린 실력으로
예배 연주를 했다. 중학교 두 자매가 기타와 플루트를
우리 아이가 바이올린, 나머지 우리 아이 포함 4명은
노래와 워십을 했다.
다 모여도 예배 인원이 15명~ 20명이 넘지 않았다.
(가끔 여행 온 분들이 참여해서 이 인원이었음)
별다른 재능이 없었던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안내였고 유학생들 5명 정도와 현지에서 일하는 싱글 몇 분을 챙기는 역할이었다. 거쳐가는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환영하며
소통하는 역할.
내가 재능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이 적기에 아주 잘 사용되었고 15살~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청년들과의 소통도 어렵지 않게 즐기며 할 수 있었다.
딱 나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 처음 온 사람을 챙기고 부담스럽지 않게 모임에 스밀 수 있게 하는 윤활유(?) 역할이 한 셈이다. 새로운 사람, 낯선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많아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오랜 시간 나에겐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리더십이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조용한 듯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속한 모임들은 분위기가 좋았고 오래가고 소통이 잘 되었다.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은 없지만 그 안에서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나름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곤 그것도 굉장히 특별한 능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전에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할 말을 다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말하면 사실 화도 못 내겠고 강한 사람이라니까." 이렇게 말을 하곤 했었다.
이런 부분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능력은 아니다. 다재다능도 아니고 어디 이력서에 담길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숨겨진 능력, 그것을 스스로 인정해주기까지도 40년은 걸렸고 (그동안)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걸 인정한 후부터는 더더욱 어느 모임에 가도 자신감이 생겼고 모임 분위기를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고 진솔하게 만들어낼 자신이 생겼다. 영어를 정말 정말 못해도 그것이 가능했고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를 대할 때 표정, 말투, 기다려주는 시선 등이 전달되어 소통이 가능함을 알았다.
일단 방어적이지 않고 유연한 태도가 중요했다.
혹시 자신에게 아무런 능력과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주변에서 자신에게 말해준 아주 작은 피드백을 곰곰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오래 자신을 알아온 사람은
그것을 (어느 순간) 알아봐준다.
원래 진짜 중요하고 소중한 건.. 숨겨져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사라지면 그때서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
누구나 열등감이 있다. 전에 서울대간 (우리가 보기엔 영재급의 친구를) 위로해준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열등감이 많고 고통스러워하는지를 알고 놀랐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어느 부분에서는 열등감이 있다.
부족감을 채우고자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숨겨진 (눈에는 사소해 보이고 별거 아니고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이는 듯한) 그 보물을 스스로 인정해줄 수 있다면...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다.
진정한 자기 사랑은....
(자기만 특별하고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지 않음에도 의미 있는 존재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진정한 자신감은 남들이 알아주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의 작은 부분을 알아봐 줄 때... 생긴다.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자신 속에 있는 진짜를 알아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