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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즌트 Jan 27. 2023

부부간 말다툼의 순간 유머로 넘겨버리기

18년 차 부부는 사소한 일로는 싸우지 않는다?

계획적이지 않은 p성향이 강한 나. 꼼꼼하고 계획적인 J성향이 강한 남편. 시부모님 생신 날짜를 잡는데 주말 포함 연휴가 길어서 그중 여유 있는 한 날을 잡기로 했다. 고등 큰 아이는 보통 토요일에 학원이 2개가 있었고 대치동은 보통 설 연휴 당일 하루만 쉰다고 하길래... 따로 학원에 전화통화하지 않고 연휴 마지막날 가족식사 날짜를 잡았다. 일요일 저녁으로 하려다가 한번 미뤄진 상황. 장소랑 시간은 남편이 아가씨랑 정했다.


P성향인 나는 연휴가 길기에 불확실한 토요일보다는 평일 연휴가 낫다고 생각했다. 학원이 두 개고 겨울방학 특강으로 듣는 수업이라 따로 (그날 휴강한다는) 빠진다는 문자도 없었다.


얼마 후 선생님들이 스케줄이 있으셨는지 문자가 왔고 토요일은 둘 다 (학원을) 쉰다고 했다. 

어차피 연휴 평일에 잡은 상황이라 쉬건 쉬지 않건 별 문제는 없었다. 아니 나만 그랬다. 

남편은 미리 학원에 연락하지 않고 짐작해서 날짜를 잡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편성격엔 그럴 수 있을 상황.) 토요일 학원 안 간다고? 간다고 하지 않았나? 하면서 황당해한다.


남편: 나 보고는 항상 음식점 가기 전에도 혹시 오늘 여는지 확인하고 가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학원 쉬는지도 미리 전화를 하지 않았어?

나: 어차피 연휴가 길고 학원이 쉬는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평일로 아예 잡으면 상관없는 거니까.


남편: 평일에 부모님이 안 되시면 어쩌려고?

나: 그럼 학원에 전화해서 묻거나 정 안 되면 학원을 빠지거나 했겠지.


남편: 아니. 무슨 일 처리를... 회사에선 그렇게 안 잡아.

나: 연휴가 길잖아. 그리고 시간이 되셨잖아. 대치동은 처음 보내보니까 연휴 당일날만 쉰다고들 하길래.

남편: 확실히 전화해서 확인을 했어야지.


나: 그냥 평일은 확실히 되니까... 부모님도 화요일 괜찮으시다고 하고 뭐가 문제일까?

남편: 한번 날짜를 바꾼 거잖아. 미리 확인했으면 토요일도 되었을 거고.


나: 근데 우리 별일 아닌 걸로 말다툼하는 거 같은데 별일 아니야. 다 날짜가 잘 정해졌고.. 우리도 부모님도 문제없으시고... 토요일보다 평일이 만나기도 편하지 않아? 난 오히려 좋은 거 같은데?

남편: 어른들이랑 약속 잡을 때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하고 해야지.


나: 토요일밖에 안 된다고 하셨으면 어떻게든 했을 거야. 우리 그냥 별일 아닌 일로 아무 일도 아닌 거니까..

부모님 되시고 우리도 되고... 문제없고.. 무슨 문제가 있을까? 난 진짜 모르겠는데.. 그날 즐겁게 만나면 되지. 내가 원래 만나 뵈면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분위기도 잘 살리고... 그런 며느리 얼마나 좋아? 하하하.



남편이랑 나는 그 이야기를 끝냈고 아주 잘 지냈다.

그런데 약속 당일... ㅋㅋㅋ

정말 브런치에 글을 적으면서도 실실 웃음 나는 일이 발생했다.


남편이 1시 반 약속이 잡혔다고 해서 11시 50분쯤 쉬고 있고 큰 아이는 이미 독서실에 보냈다.

1시 독서실 앞에서 만나서 이동하기로... 식당이 그 근처였다.


남편: 여보. 아버님 벌써 오셨다는데.. 좀 일찍 도착하셨대.

나: 벌써? 아직 1시간 반도 넘게 남았는데? 너무 빨리 오신 거 아니야?

남편: 글쎄.. 차가 안 막혀서 일찍 도착하셨대.


나: 근데 아무리 그래도 1시 반인데... 이상하네. 약속 시간 헷갈리신 거 아니고? 다르게 알고 계신 거 아닐까?

남편: (황급히 아가씨와의 카톡을 확인하며 놀라는 남편) 아차. 12시 반으로 옮겨졌었네. 원래 1시 반으로

이야기를 했었거든. 내가 다음 거를 못 봤나 봐.

나: 푸하하하. (이제부터 남편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 보고는 날짜로 뭐라 뭐라 해놓고는 당신은 약속 시간을... 푸하하. 평생 놀릴 거리 생겼군. 왜 실실 나는 웃음이 나.. 지금 안 늦게 갈 수 있어. 내가 큰 애한테 연락할게.


남편: 그러게.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 그러게. 당신 철저하게 이런 거 잘하는 사람인데... 이런 일이 다 있고... 나는 왜 웃음이 나올까?

일단 빨리 갑시다. 나 이거 기록했다가 당신이 비슷한 일로 나한테 뭐라고 하면 이거 끄집어내야지. 야호~

남편: 그래. 내가 실수하고 잘못했지. 할 말이 없네. 나 놀려도 된다.


얼마 전에 남편의 지적질(?)에 발끈하지 않고 그런 일로 힘 뺄 필요 없다고 그냥 웃으면서 넘기길 정말 잘했다.

만약 그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나도 뭐라고 했다면.. 말싸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오늘 같은 일에 웃으면서 놀리는 게 아니라 비난과 짜증으로 남편을 몰아세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녁 늦게 남편에게 물었다.

나: 만약에 반대상황이었으면 당신은 무슨 그런 실수를 하냐고 뭐라 했지? 그치?

남편: 응. 아마 그랬을 거야.

나: 죽고 사는 일 아니면 큰 일 아니니까 요런 일로는 싸울 필요 없지. 사람이니까 다들 실수하지뭐. 별 일 아닌거야. 사실..


역시. 오늘 아빠를 미워했던 일을 썼는데.. 모든 일에 스무쓰하게 넘기시는 좋게 좋게의 달인인 우리 아빠를

일정 부분 닮은 나는 이 날 일을... 크게 웃으며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아빠 닮은 성격. 좋을 때도 많다. 우리 아빠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맞네요.


#말다툼 #남편 #성격차이 #말싸움 #화해 #싸움의기술 #유머


https://brunch.co.kr/@129ba566e8e14a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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