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워낙 일복이 많으셔서 아빠께서 우리 두 자매에게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이 있었다. "너희 엄마 나 때문에 여태껏 고생했으니까 절대로 애들은 맡기지 마라. 알겠지? 너희 엄마. 몸도 약하고... "
지금도 이모 병간호를 하러 가신 엄마. 우리 자매는 아예 엄마께 아이를 맡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아니어도 엄마는 여기저기 섬기고 돌보시는 스타일이시다.
남편이랑 노후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남편에게..
"아이들 취업하면 결혼 전까지는 생활비 조금이라도 받으면 어때?"
물으니 남편이 우리 집에서 살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한다. 그래도 남편은 어떻게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내라고 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아이들 지금까지 키워줬으니 결혼 전까지는 취업한 아이에게는 월급의 10프로 정도 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되면 또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남편은 약간 놀란 눈치다. 평소에 남편은 아이들이 잘 먹으면 본인은 안 먹는 사람이고 나는 적게 먹더라도 조금이라도 먹는 엄마다.)
남편이 갑자기 묻는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
남편: 당신은 나중에 애들이 손주 봐달라고 하면 봐줄 거야?
나: 내가 왜? 지금껏 길러줬는데.. 나 체력도 약하고 나 하나 돌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아. 그리고 애들 셋인데 누군 봐주고 누군 안 봐줄 수도 없잖아.
남편:....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잖아.
나: 그래도 나는 애는 못 볼 것 같애. 아. 그래도 애들 좀 크면 그때 픽업하거나 간식 챙겨주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솔직히 세명 낳아서 길렀는데 또 나이 들어서 애를 기르는 건 내가 힘들 것 같아. 한 번도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
남편:... (더 이상 묻지 못한다.)
나: 아. 근데 당신도 그때는 집에 있으니까... 같이는 또 모르겠다. 당신이 볼래? 시간도 있을 거니까.
남편은 문 닫고 도망갔다. (사실은 아이 픽업하러 감)
나: 그리고... 아. 우리 딸이 부탁하면.. 아....
순간... 우리 딸이 생각났다. 아. 근데 우리 딸이 전문직 일 경력을 쌓아가는 도중에 나에게 부탁을 한다면...??? 아... 그러면 그러면.. 어쩌지? 아. 근데 아들들도 귀한 자식들인데... 왜 딸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흔들리지?
나의 이중적인 마음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그래서 보통 친정어머니께서 손주를 봐주고 계신 건가?
아니야. 공평하지 않지. 아들이 물으면 나는 할 말이 없지 않은가?
내 노후에 (솔직히 단 한 번도) 손주 돌보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 봐주고 누군 안 봐주기도 뭐 하고 쉬운 문제가 아니다. 노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기도 하다. 좀 그래도 되지 않나? 건강 챙기고 남편이랑산책하면서... 손주는 무척 예쁘겠지만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심정으로는 딸에게도 그렇다. 미안할 일 아니다. 지금 열심히 너희 키울 테니까....
나이는 mz 세대가 아닌데 사실 내 사고방식은 그랬던 걸까?
남편이 나를 보고 조금은 놀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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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갔다 돌아온 남편에게 다시 물어봤다.
나: 여보. 내가 좀 심해? 손주 안 봐준다는 게?
남편: 아니. 그럴 수 있지. 근데 아이들 시대는 지금보다 어렵지 싶어서... 아마도 봐줘야 되지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