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볼 때마다 누워있는 이유를 알았다.
아이는 노트북으로 글을 쓴 지 꽤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 시작한 스토리가 중간에 마무리되고 다시 중학교 때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여 3년이 넘었다고 한다. 노트북으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노크하고 문을 열면 우리 아이는 유독 침대에 누워서 음악을 듣거나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10번 중 8번은 침대다. 자는 것도 아니고...)
막내도 상상해서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한다. 차로 이동 중에 말을 걸면 (생각에 빠져) 말을 안 시켰으면 싶어 한다. 막내는 초등학생이라 귀엽게만 보이는데... 정작 고등학생 아들은 아빠가 노크 후 문을 열어도 누워있고 내가 문을 열어도.. 동생들도 형은 항상 빈둥거린다고 놀린다. 물어보면 소설 구상 중이라며...
아이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계속 소설 줄거리를 생각하느라 누워있는 것이고 충분히 생각한 내용을 노트북에 적고 있다고 했다. 궁금해서 내용 좀 보자고 하니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아직 미완성이라며...
오늘은 내가 쓴 성장소설을 잠깐 읽어주고 아이에게도 조금만 보여달라고 졸랐다. 아이는 목차만 보여준다고 하더니 결국 처음 2페이지를 허락해서 읽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일단 배경과 묘사가 디테일하고 판타지 소설을 읽는 느낌이 물씬 났다. 인트로가 멋졌다. 더는 못 읽게 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썼는지 페이지만 알자고 하니... 이야기 구상은 3년 가까이 되고 노트북으로 옮긴지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100페이지 정도 썼다고 했다.
엄마는 이제 40페이지 넘겼는데... ^^
아이가 멍하니 누워있을 때... 내가 볼 땐 멍 때리기로 보였지만...
그의 머릿속에 흥미진진한 스케일 웅장한 영화를 한편 찍고 있었던 거였다.
아이가 엄마, 아빠 몰래 1년 반 정도 팔굽혀 펴기를 했다는 것을 알고도 놀랐는데.. 매일 20~30개씩 했던 아이는 1년 반이 지나니 어딘지 남성미가 물씬 풍기게 되었다. 그때서야 아이는 자신이 했던 1년 반의 운동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에 너의 글을 조금씩 올려보고 싶다고 하니 화들짝 놀라며 자신은 하나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학업량이 많고 분주한 방학을 보내고 있음에도... 어딘지 뭔가 행복해 보인다.
빈둥거리며 자신이 좋아하는 스토리를 만들어가서 일까? 얼굴엔 미소를 머금고 혼자 웃기도 한다. 물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누가 보면 여자 친구가 생긴 줄 알겠다.
인물들 이름을 정할 때도 어찌나 고심하던지... 정말 특별한 이름을 찾아내고 변형해서 짓고 있다. 절대로 안 알려준다. 엄마가 써먹을까 봐 그런가 보다. 자슥~ 엄마는 판타지 아니거든. 성장소설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