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어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내가 되어가는 중년의 시간
저는 내향적이고 겁도 많고 여린 성격의 아이였습니다. 엄마는 조용한 성격, 민감한 감정의 소유자인 저를 보호하셨고 안쓰럽게 생각하신 적도 많으셨어요. 저도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손해 보더라도 그냥 참는 게 익숙했었고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 죽을 만큼 싫고 부담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나는 '다 좋아.' '나는 그냥 다 괜찮다.'라고 생각하면서 타인의 의견과 생각에 참 많이 동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주변의 시선에도 민감하여 누군가 저를 좋다고 하면, 부담감을 느끼기도 하였고 나를 잘 알면 실망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의 시선에서 조금씩 벗어나서 진짜 나를 알아가며 가끔씩 놀라곤 합니다. 저를 아주 잘 아는 친한 친구들은 저의 다소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들을 알고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소수만 알았던 저의 찐 모습이 점점 확장되면서 어느새 지금의 저는 자유로운 사람, 여유 있고 편안하며 재미도 있는 사람이란 소리를 자주 듣곤 합니다.
전에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어리어리한 저의 모습을 감추려고 긴장하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그것도 나의 한 가지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강의를 할 때도 사람들을 만날 때도 그 모습 그대로 다가가려고 합니다.
저의 약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집중했을 때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저만의 강점, 개성, 역량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전에는 차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 이제는 "참 밝은 분 같아요. "은근히 재밌고 재치 있으세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다. 가끔 모임에서는 웃음 유발자(?)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경청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그것이 감정적인 소진을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저도 많이 달라졌어요. 정서적 거리 두기를 하는 법을 배우고 인간관계에서 '만만하지 않으면서도'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사 전달을 딱딱하지는 않지만 단호하게 하는 법, 전보다는 덜 돌려서 말하는 법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장시간 만나고 오면 에너지가 바닥나는 경험을 했었어요. 지금은 나를 보호하고 조절하는 것을 할 줄 알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독 집중(?) 때론 집착했던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밝고 재밌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내면서 진짜 원래 나의 모습 중 일부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나는 정말 웃음이 많고 재밌는 발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구나'.
'경청하는 것만큼이나 나는 스토리텔링하면서 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새삼 알게 됩니다. 감정적인 공감뿐 아니라 생각 없이 같이 웃는 그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따스함이 되고 작은 용기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요. 인생의 모든 것에 진지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나랑 코드가 잘 맞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며 잘 대해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함도 경험하게 되었어요. 나에게는 이제 타인을 위한 시간보다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공간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나를 채워야 더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중년의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나의 과거도 나의 일부의 모습이지만 나에겐 그런 모습 말고도 다양한 내가 존재합니다. 그동안은 나의 작음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나만의 진짜인 것들로 '승부수'를 띄워봅니다.
"인생 한 번뿐인데 나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중년이 되어서야 인생의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그 오묘한 맛을 조금은 알게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