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광등 같은 사람입니다.

감정은 차단해도 사라지지 않더군요.

by 프레즌트

형광등 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었다.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템포가 느린,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고 주변을 밝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었다.


언니 말로는 나를 보면 '한 템포 늦게 스미는 스타일 같고 그 대신 그 감정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맞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을 너무 싫어하면서도 헤어질 땐 그 순간을 회피하려는 듯 밝게 인사를 하고 막상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 왜 눈물이 나지?" 스스로도 몰랐다.


친하지 않은 관계여도 아는 집이 이사를 가면 오래 그 허전함을 간직하며 문득 많이 그리워졌다. 표현하진 못했다.


강사 활동을 하면서 만난 강사님이 계신데 최근에 같은 곳으로 출강을 한다는 것을 알고 카톡을 드렸다. 강사님도 반갑다고 하시곤 그다음 날 한 줄의 연락을 받았다.


"**씨. 나 사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어 상중이에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주변에는 말하진 못했어요. 마무리되면 연락할게요."


순간 눈앞이 캄캄하기도 하고 안 믿겨서 여러 번 메시지를 확인했다.


얼마 전 박완서 작가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나서 쓴 "한 말씀만 하소서." 란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간 문장들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먹먹하고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읽으면서 쉬고 읽다가 덮기도 했다. 한 번은 책을 약간 멀리 두기도 했었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 아는 강사님의 소식이 겹치면서 감정적으로 슬픔과 허전함, 허무함의 감정이 머무르고 있다. 친정엄마도 피부가 염증이 심하시고 곪아서 계속 병원에 다니시면서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걱정과 속상함에 힘이 빠지기도 했다.


"우리 엄마도 이젠 아프신 곳들이 생기시는구나. 이제 나이가 들어가시는구나."

혼잣말이 불쑥 나왔다.


"아. 너무 슬퍼. 엄마가 너무 불쌍해."


옆 동에 살던 삼 남매 엄마가 이사를 가셨는데 집에 들어오는 현관, 재활용장 등에서 그 가족 생각이 나서 한 번씩 감정이 올라온다. 내가 주책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감정을 나 스스로 평가해버렸다. 오버스러운 감정은 no!라고 커트를 한다.


같이 지낼 때도 차 몇 번 마시고 오며 가며 이야기 나누던 게 다인데.. 친하다고 말하기도 그런... 동네 아는 주민이었다. 최근 막내가 초등학교부터 오래 다녔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는 상황도 아이도 아이인데 내가 더 마음이 허전했고 아쉬웠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마침표라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큰 이모께서 돌아가실 때도, 친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난 눈물도 나오지 않았었다. 그냥 덤덤하기도 하고 냉정한 사람처럼 감정이 너무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거리를 두어 감정을 차단을 하고, 쿨하게 지내는 것도 한동안 가능했다.


지금은 더 그립고 생각이 난다. 이모랑 비슷한 사람을 보면 이모에 대한 기억이 올라오고 돌아가신 지 2년이 되는 지금 더 이모가 깊이 그립기만 하다.


어쩌면 감정을 감당하는 것이 부담되고 힘들다 보니 나중으로 더더 미뤄서 조금 옅어지게 만들고 조금 지나서... 그때나 마주하고 싶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사 가는 동네 엄마 앞에서 아는 언니는 눈물이 펑펑 났다고 했다. 언니의 눈물을 보며 이사 가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단다. "나 이사 간다고 이렇게 슬퍼하는 사람 언니가 처음이에요. 고마워요." 그분은 언니의 솔직한 감정 앞에 뭉클한 감동을 느끼셨다. 10년 넘게 같은 동네에 살았던 것도 큰 인연이니까.


사실 나는 겉으로는 쿨하게 보냈다. 속에서는 울음이랑 비슷한 감정이 나왔지만 애써 표현할 자신은 없었다. 부담이 될 수 있고 부적절한 감정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차단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난 어른이고 이건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하는 행동일 것이다.'라고 나를 납득시키고 수긍시켰던 것 같다.


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언니만큼의 용기는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종교를 가지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헤어짐, 영원하지 않음에 대한 슬픔이 컸다. 사랑하는 사람들,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아 지는 것도 서글펐다.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죽음 자체의 공포가 아니라 그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던 것 같다.


죽음은 나에게 두려움보다는 슬픔, 그리움을 뜻했으니까.


가끔은 감정이 좀 없는 사람이었음 싶기도 하다. 그럼 사는 게 덜 힘들지 않을까? 단순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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