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충분한 당신에게 전하는 메시지
누구나 결핍이 있다. 과거의 어린 시절일 수도 있고 현재의 자신일 수도 있다. 못 이룬 꿈에 대한 미련이나 끝까지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도 자신의 부족감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
중년이 되면서 나 자신을 작아지게 하는 듯한 사람들에게서 방어의 벽을 치게 되었다. 건강한 거리 두기이기도 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기도 했다.
최근에 나이가 많으신 한 분으로부터 들은 말이 작은 타격감을 주었다. 과거의 나라면 한동안 가슴 한편에 무언가 뭉쳐진 것처럼 속상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으리라. 그 사람의 말을 믿고 나를 바꾸려 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문득 올라온 타격감은 현재의 나에게 잠시 머물렀을 뿐, 이곳에 둥지를 틀지 못했고 내 속에 머물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세월 속에 겹겹이 쌓아온.. 나를 단단히 보호하는 막이 나를 지켜주었고 자기반성적이며 자책이 많았던 (과거의) 나에서 벗어나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상대가 그렇게 말한 깊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의외로 알게 된 사실, 그는 나를 비난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부러워하고 있었다. 자신처럼 절실하게 노력하여 얻지 않고 천천히 가면서도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는 나의 삶에 대해 (그는) 억울했을 것이다. 자신은 몸이 아파질 만큼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인생을 거는 반면, (그 사람의 시각에선 나는..) 그저 생을 즐기며 느슨하게 여유롭게 가는 내가 게을러 보이거나 욕심이 없어 보이거나 혹은 너무 간절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시 일을 하면서 과거와 달리, 성공보다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누리게 되었고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커져가고 있었다.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만족감으로 나를 채우고 있었다. 살아갈 의미와 보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보기엔 '자신보다 행복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나'의 기쁨과 만족감이 보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게으르지도, 일에 대한 성공의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함께 가지고 가야 하기에, 모든 힘을 한 곳을 쏟을 수가 없었을 뿐. 그 일을 사랑하지 않거나 대강대강 살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점검하면서... 그저 그와 나 사이에 에너지 수준이 다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삶과 나의 인생을 놓고 비교하며 판단할 때, 나는 그 사람의 결핍이 보였다. 자신은 항상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갈아 넣어야만 얻었던 것들이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그것들의 실체가 허무한 것이고 허상이었음을.. 그도 인정하기 싫었을지 모른다. 항상 긴장되고 경쟁적인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였다.
우리는 모두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부족함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인간다움이고 겸손함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는 의미에선 축복이기도 하다.
진정한 자기 사랑은 자신의 연약함마저도 토닥여주며 함께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하니, 누군가의 질책이나 비난조차도 서서히 힘을 잃고 만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의 내면의 결핍을 보게 된다.
누가 자신을 함부로 비난하도록 두지 않는 것! 나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그는 나를 모르기에 비난할 자격이 없다. 함부로 누군가를 판단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음을 알아가는 것이 나이 들어감의 축복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당신을 잘 모른다.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기준이 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면 된다. 나를 함부로 평가하게 두지 말고, 나의 존재에 대해 비난한다 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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