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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23. 2022

사랑수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치내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오 리쯤 올라가면 서당골이라고 하는 곳이 있다. 이 서당골 입구에 약수터가 있고 이 약수터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조그마한 굴이 하나 있다. 거기서 위쪽으로 조금 더 오르다 보면 내리깎은 듯한 낭떠러지에 큰 굴이 한 더 있다. 이 굴과 약수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신라와 백제가 이곳을 국경으로 하여 잦은 싸움을 하던 때의 일이다. 신라에 속했던 이곳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재주가 영민하고 용맹이 출중하여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     

장군의 나이 열여덟 살이 되던 해 큰 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수의 백제군이 갑작스럽게 기습해 오는 바람에 장군의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리게 되었다. 장군은 혼자 따로 떨어져 적군의 추격을 받게 되자 숨을 장소를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쫓기던 중에 장군의 눈에 바위틈 굴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급히 그 속으로 몸을 피했다. 그런데 장군이 굴속으로 들어서자마자 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장군이 놀라 뒤를 돌아보니 자기가 조금 전에 들어왔던 굴의 입구를 커다란 바위가 막아버렸다. 그래서 다시 굴 밖으로 나가려고,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를 밀어 보았으나 바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뒤돌아선 장군은 출구를 찾기 위해 굴 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장군은 굴 안쪽에서 가느다란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장군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으나 혹시 그곳에 밖으로 나갈 길이 있지 않을까 하여 불빛이 흐르고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굴 안은 마치 넓은 들처럼 확 트였다. 장군이 나아가 보니 그곳에 큰 집이 한 채 있었다.     

집을 본 장군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서 불빛이 흐르는 방문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가볍게 기침을 하였더니 방문이 열리고 거기에는 한 여인이 호롱불을 밝혀놓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 여인은 장군을 보자 말하였다.     


“이렇게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군은 의아심을 가지고 물었다.

“누구신지요? 어떻게 해서 이곳에 계시게 되었소?”

그러자 여인은 장군에게 말하였다.

“저는 인간으로 변신한 구렁이에게 납치되어 이곳에 오게 된 여인입니다. 그동안 누군가가 와서 저를 구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군은 처음에는 도깨비에 홀린 듯한 기분이 되어 여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으나 여인의 진지한 태도를 보고는 여인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여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구렁이를 죽일 수 있겠소?”

여인이 장군에게 대답했다.

“구렁이가 잠을 잘 때 그놈의 목 한가운데를 칼로 내리치셔요. 목이 떨어지는 순간 제가 재를 가지고 있다가 그 목에 뿌리겠습니다. 그러면 그 구렁이가 죽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멀리서부터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자 여인은 구렁이가 왔다며 벽장 속으로 숨으라고 했다. 장군은 황급히 방안 다락 속으로 숨어들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조금 후에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는데 몸집이 거대하였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서자 여인에게 사람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벽장 속의 장군은 간이 콩알만 해져서 여차하면 벽장문을 박차고 뛰쳐나갈 기세로 칼 손잡이를 꼭 움켜잡았다. 여인이 구렁이에게 아양을 떨며 말했다.     

“사람 냄새는 무슨 사람 냄새예요? 오늘 구 밖에서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 냄새가 낮부터 이곳으로 스며들어 나도 그 냄새를 참느라고 애를 먹었어요.”

여인이 하는 말을 들은 구렁이는 그렇다고 여기고는 곧장 방안에 벌렁 드러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구렁이가 깊은 잠에 빠졌다고 생각되자 여인은 벽장문을 열었다. 벽장에서 내려온 장군은 호흡을 가다듬고 사람으로 화한 구렁이의 목 한가운데를 향하여 정확하게 칼을 내리쳤다. 그랬더니 그 목이 천장으로 벌떡 뛰어올랐다가 다시 제자리로 달라붙으려고 하였다. 이때 여인이 재빠르게 가지고 있던 재를 뿌리자 구렁이의 목은 몸에 달라붙지 못하고 떨어졌다. 그리고는 목이 잘린 구렁이로 변하여 꿈틀거렸다. 장군은 칼로써 그 구렁이의 몸통을 열 토막으로 잘라 죽여버렸다.      


구렁이를 죽이고 나서 여인을 찾으니 조금 전까지 있었던 여인이 보이지를 않았다. 장군은 집 안을 둘러보았으나 여인의 행적은 묘연하였다. 하는 수 없이 장군은 다시 굴을 더듬어 원해 들어왔던 굴의 입구까지 왔다. 그러자 어디선가 형체도 없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다시 굴 안의 집으로 가서 그 구렁이를 태워 재로 만드세요. 그러고 나서 호롱불을 켜서 불을 밝히면 굴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의 표면에 화살표가 나타날 것입니다. 화살표 방향으로 세 발자국 가면 조그마한 구멍이 있을 것인데, 그 구멍에다 구렁이를 태운 재를 뿌리면 돌문이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돌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에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장군은 여인이 시키는 대로 구렁이를 태워 재로 만들어 구멍에 그 재를 뿌렸다. 그랬더니 여인의 말대로 육중한 바위문이 저절로 열렸다. 환한 햇살이 어두침침한 굴 안으로 들어오자 장군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여인이 일러 준 말을 잊어버리고 뒤를 돌아다보고 말았다. 그러자 이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여인의 형체가 드러나더니 이내 여인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쓰러진 여인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구렁이는 원해 하늘나라에 있었으나, 상제께 죄를 짓고 구렁이가 되어 인간 세상을 쫓겨왔습니다. 그런데 남자 구렁이는 인간 세상에 와서까지도 악한 짓을 계속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구렁이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나 혼자의 힘으로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던 중 마침 당신이 와서 당신의 도움으로 못된 구렁이를 죽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이 상제가 우리에게 정해준 기간이 다하는 날입니다. 나는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당신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는 하늘로 돌아가지 않고 당신과 함께 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렁이의 허물을 벗어버리기로 하였는데, 제가 허물을 벗는 모습을 당신이 보아서는 안 되었기에 뒤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뒤돌아 저를 보았으니 저는 더 이상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말을 마치고 여인은 숨을 거두었는데 놀랍게도 죽은 여인의 몸은 큰 구렁이로 변해 있었다. 구렁이의 주검을 본 장군도 너무나 가련한 마음에 슬피 울다가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그때 장군이 흘린 눈물이 흘러내려 지금의 약수터가 되었다고 하며, 마을 사람들은 이 약수를 사랑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들도 이곳에 와 치성을 드리고 약수를 마시면 완치된다고 하며,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 또한 이곳에서 지성껏 기원을 하면 인연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 1997년 경남 방문의 해, 경남 전설을 찾아서, 거창편, 5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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