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민 Mar 21. 2021

열하일기를 통해 본 연암의 생각

- 2부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열하일기]의 “혹정필담”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오는데, 연암의 말글 보는 눈이 어떠한가를 짐작할 만하다 하겠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우리 나라에 글짓는 사람이 중국과 다른 것을 알았으니, 중국은 바로 문자로써 말을 삼고 있으므로 경ㆍ사ㆍ자ㆍ집이 모두 입에서 흘러나는 성어였다. 그 기억력이 남과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억지로 시문을 지을 때는 벌써 그 옛뜻을 잃어버리고 글과 말이 판이하게 두 가지 물건이 되어 버리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글을 짓는 자는 떠서 틀리기 쉬운 옛날 글자를 갖고, 다시 알기 어려운 사투리(方言)를 번역하고 나면 그 글 뜻은 캄캄해지고 말이 모호하게 되는 것이 까닭이 아니겠는가. …”


이 대목은 연암이 우리말과 중국말, 글말과 입말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중국은 글말로써 입말을 삼으니 입 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말이 이룩되는데, 우리 나라에서 글을 짓는 사람들은 틀리기 쉬운 옛날 글자 - 한자를 가지고, 다시 알기 어려운 사투리(방언:우리말)를 번역하고 나면, 그 글 뜻이 캄캄해지고 말이 모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연암은 글말과 입말이 구분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중국 사람은 중국말과 중국 글이 딱 들어맞아 떨어지니 입 속에서 흘러나온 말이 곧이곧대로 글이 되지마는 우리 나라 사람은 사투리와 중국 글이 딱 들어맞아 떨어지지 않으니, 사투리 즉 우리말을 중국 글에 맞도록 다시 번역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번역해 두고 보면 위의 중국 사람들과 같이 명쾌하지 아니하다. 글 뜻이 캄캄해지고 말이 모호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사람은 더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도 뜻을 표현하는 데에는 훨씬 덜 효과적인 셈이 되는 것이다. 한자라고 하는 하나의 글말을 가지고, 중국 사람은 중국말을 적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우리말을 적는 것인데, 원래가 한자는 중국말에 적합하게 만들어졌거니와 현 중국 발음과 일치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운자 사전이 있으니, 중국 글이 중국말에 부합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일 터이다. 이치가 이러한데도 한자를 우리말을 적는 데에 사용하고 있으니, 이는 잘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연암은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으로 연암이 말과 글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연암이 입말과 글말 가운데 글말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 둘을 평가함에 있어서도 글말을 잣대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의 상황을 연암은 한자라는 글말을 축으로 하여 양쪽 끝에 중국말과 우리말이 놓여 있는 평형 저울로 간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글말은 한자 하나뿐임을 전제한 생각인 것이다. 그의 머리 속에는, 만들어진 지 삼백 사십 육 년이나 지났고,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소설 ‘홍길동전’이 백성들에게 읽힌 지도 백 육십 구 년이 지난, 훈민정음 혹은 한글에 대한 생각이 전혀 들어 있지 못한 것이다. 한글은 그에게 글자로서의 가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한글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문장은 속어(우리 백성말)나 속담, 방언(우리말), 민요와 같은 순수한 우리의 생활 언어를 문장에 담아야 진실된 문장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실지로 [열하일기]와 같은 작품에서 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자화된 것이지 ‘한글’은 아니었다. 한글은 “황도기략” 편 속의 꼭 한 낱말, 곧 “뱝새”라는 새 이름이 나올 뿐이다. 이 점에 대하여 조동일은


“ 이렇게 주장한 박지원이 국문으로 글을 쓰지 않았고, 국어문학이 소중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방언을 문자로 옮기고, 민요를 운율에 맞추기만 하면 자연히 문장이 이루어진다고만 했을 뿐이고, 방언을 그대로 쓰고 민요를 그대로 부르는 문학을 긍정하는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았으며, … 한문을 사용하면서 독자적인 문학을 개척할 것을 주장했다.”


위 대목에서 “방언을 문자로 옮기고”에 대한 부분은 위의 “뱝새”라는 단어 외의 한글 표기는 찾을 수 없다. 윗글의 지적대로 연암은 말의 문제에 대하여 독특한 이론과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으로 남긴 것이 없을뿐더러 뿌리 되는 말 보는 눈이 전근대적이며 봉건적임에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이와 같이 연암은 글말인 한문에 비추어 우리말이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있으므로 글말을 잣대로 하여 입말을 재는 꼴이다. 그러나 말과 글의 본바탕은 깊이 되돌아 볼 경우에, 어느 것이 더 자연스럽고 본바탕에 가까운 것인가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수많은 말 연구자들이 밝혀 놓은 바이다. 연암은 우리말이 한문에 맞지 않아서, 중국말이 한문에 들어맞는 중국사람들보다 글짓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말이 먼저 잣대가 되지 못하는 데에서 우리말은 사투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연암 자신도 말의 위력을 깨달았듯이 우리말을 스스로 비하하는 이러한 언어관이야말로 모화 사상의 뿌리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 뜻이 어두워지고 말이 모호해지는 것에서 연암은 우리말을 적는 데에는 우리말에 적합한 글자가 따로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한 것일까? 다른 여느 사대부들보다 과감하고 앞서 간 연암이었음을 돌이켜 볼 때 다시 한번 의아함을 감출 수 없게 된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열하일기를 통해 본 연암의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