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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아람 Mar 21. 2021

열하일기를 통해 본 연암의 생각

- 3부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셋째는 연암이 왜 한문이라는 남의 글자에 연연해 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점은 연암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점이다. 연암은 한족을 남의 겨레로 인식하면서도 반드시 본받아야 할 점이 많은 겨레로 여기고 있으며, 명나라 또한 조선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해 준 고마운 나라이므로 그 은혜를 입은 바가 크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한문은 문명의 꽃이며 모든 족속들이 다 배워도 모자랄 위대한 글자라고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한문은 은혜 입은 나라에서 선물 받은 양 고마워할 태세이다. 따라서 한문을 두고 나라별로 구별짓기보다는 사대부들이라면 중국이나 조선이나 다 함께 사용해야 하는 글자로 여기고 있음이 환하다. 연암에게는 우리말은 그의 말투대로 사투리 쯤이거나 속된 말일 뿐인 것이며, 글자가 있다 한들, 한낱 오랑캐의 하찮은 글일 뿐인 것이다.


다음은 [열하일기] 속의 “피서록” 편의 일부인데 여기서는 연암이 언어 습득에 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잣대로 하여 말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 중국 사람들은 글자로부터 말 배우기로 들어가고 우리나라 사람은 말로부터 글자 배우기로 옮겨 가므로 화이의 구별이 이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로 인하여 글자를 배운다면 말은 말대로 글은 글대로 따로 되는 까닭이다. 예를 들면 천(天)자를 읽되 [한날천(漢捺天)]이라고 한다면, 이는 글자밖에 다시 한 겹 풀이하기 어려운 언문이 있게 된다. … ”


여기서도 연암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말과 글을 분명하게 구별할 줄 안다. 그러나 사람이 말을 습득하는 과정이나 순서에 대하여서는 잘못 깨달았던 것 같다. 사람이 이 누리에 나서 말과 글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배우느냐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법이다. 글이 있든 없든 말은 다 배우는 것이다. “정현의 집 여종이 시경을 외는” 것도 여종이 말을 듣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치가 이러한데 연암은 중국 사람들은 글자부터 배우고 말 배우기로 옮겨가기 때문에 말과 글이 하나가 되는 것이요, 우리 나라 사람은 먼저 말을 배우고 뒤에 글을 배우기 때문에 말과 글이 따로따로 되어 두 겹으로 말글을 배우는 턱이라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천(天) 하나만 배우면 말과 뜻이 저절로 배워지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우선 글자인 천(天)자를 배워야 하고 이 글자의 뜻 한날(漢捺)이라는 언문도 다시 이중으로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 인식은 틀렸다. 우리 나라 사람에게 한문이 어렵고 문장으로 속마음을 풀어내려 하여도 개운하게 되지 않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이 말을 먼저 익힌 뒤에 글자로 옮겨가는 탓이 아닌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말을 담아내기에는 한문이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런 까닭에 신라인들은 한자라는 남의 글자만 빌려 와 스스로의 글본을 세운 뒤 향가 따위를 적어 남기지 않았던가? 신라 사람들이라면 천 년을 훨씬 넘은 세월 저 편의 사람들인데, 그들이 이미 깨우쳤던 이 말의 본바탕을 연암이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은 정말 뜻밖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아마도 한글에 대한 자신의 편견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吾之平生 不識一箇諺字 五十年偕老 竟無一字相寄 至今爲遣恨耳”


연암 스스로 밝혀 놓았듯이 그는 평생에 단 한줄의 한글도 몰랐다고 하면서 정작 문집 속에는 많은 한글 표기가 나오고 있음은 그의 말과 실제 행동에는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연암이 한글에 대하여 늘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글을 한 글자도 모른다고 한 것은 겸손 아닌 겸손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연암이 한글은 알았으나 문장으로 부려 쓸 수 있을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연암은 한글을 몰랐다고 볼 수 있으며, 한글을 한 자도 모른다는 자신의 표현은 그래서 다시, 겸손이 아닌 사실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연암은 그의 사상과 그 사상을 표현하는 수단에 있어서 상호 모순을 자아내게 되었다. 그는 많은 글에서 조선 사대부들의 사대부답지 못한 행각들을 비판해 왔으며, 그러한 비판 정신은 조선의 잘못된 주자학(옳은 주자학에 반대되는)에 대한 비판이면서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피상에 얽매어 있는 사대부들을 질타는 정신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공리적으로 볼 때 이 또한 애민 사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며, 북학파의 한 사람으로서 백성을 두텁게 하기 위한 학문을 추구한 사람으로 백성을 염두에 둔 학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문장이나 문학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도 문장가이기를 자처했고, 문에 도를 통한 자이기도 했다. 하여 우선 그는 문장에 혁명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훗날 정조대왕으로부터 혼이 나는 ‘문체반정’을 가져오게 하는 사건이 된다. 이와 같이 그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방식과 표현법으로 글을 짓던 선비들과는 달리 죽은 말이 아닌 살아 있는 말들을 부려썼고, 중국의 고사를 인용함으로써 앵무새처럼 노래하는 여느 선비와는 다르게 조선의 속담과 속언을 과감하게 사용함으로써 주체적인 문장체를 창출해 낸 것이다. 결국 주체성과 민족주의를 외치는 사람이 남의 나라 글자로 외침으로써 그 목적과 수단 사이에 모순이 생겨난 셈인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아가 생각하면 연암은 스스로 자신의 독자들을 매우 한정하였다는 점이다. 누리 가운데 귀한 것은 사람인 법인데 연암은 그 사람들 중에 가장 귀한 사람들은 사대부들이라 여기는 것 같다. 연암은 [열하일기] 전반에서 나라를 떠나서 지식인들과 교우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을 존중하고 예우한다. 그 가운데서도 한족과 명나라를 가장 존대한다. 연암은 나라나 겨레, 그리고 신분과 믿음(종교) 혹은 철학이라는 모든 사회적인 껍질을 벗겨 놓고 사람을 볼 줄을 모른다. 만인이 평등하게 태어난다거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인 것 같다. 하여 연암은 인생의 진리는커녕 문자 하나마저도 신분이 낮은 사람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민 중에 농부는 농사를 지어야 하며, 상인은 장사만 하여야 하고, 장인은 무쇠만 두드리고 살면 되지 사대부들의 본업(?)인 학문을 하거나 글자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질서가 흐트러져서 사회가 혼란하고 나라가 어지럽게 만들 것으로 믿었다. 연암은 그가 살던 당대를 변환기의 위태로운 시기로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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