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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21. 2021

배달을 심은 사람

- 빗방울 선생이 국어심의회에 남긴 자취 1 <내가 읽은 책과 세상>

김수업 선생의 국어심의회 시절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그냥 나무를 심은 사람이 아니라 프레데릭 바크가 그림으로 다시 그린 주인공 부피에의 얼굴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다. 소박해 보이면서도 영롱하고, 한없이 여린 것 같으면서도 대단히 야무지게 느껴지던 오묘한 낯빛! 2008년 겨울이 다가올 무렵 선생은 우리 앞에 책 한 권을 가만히 내밀었다. 프랑스 생태학자 장 지오노가 지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국어심의회 일로 선생이 가장 힘들어 하던 때의 일이다. 주인공 부피에의 삶이 선생의 얼굴에 겹쳐 보였다. 부피에의 손에 들린 나무씨앗이 선생의 가슴에 담긴 배달말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한동안 두 사람의 고매한 삶에 푹 빠져 살았다. 이러한 경험이 국어심의회와 나무를 심은 사람 부피에의 기억을 한데 버물려 놓았던 모양이다.


먼저 김수업 선생이 국어심의회에 남긴 발자취의 얼개 그림을 보이면 이러하다. 김수업 선생은 2004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국어심의회에서 활동했다. 국어심의회 위원의 임기가 2년이므로 사실상 심의위원으로 두 번 위촉된 것이다. 위촉된 때는 2004년 7월과 2006년 7월이라 짐작된다. 그동안 2005년 11월과 2007년 7월에 국어순화분과 위원장으로 선출되고, 그해 9월 국어심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전체 위원회에서 선생은 국어심의회 전체를 대표하는 국어심의회 위원장으로 선출된다. 말하자면 초대 국어심의회 위원장이 된 셈이다. 선생이 전체 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그동안 시들했던 국어심의회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내부적으로 많은 개혁이 일어나고 매우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국어정책 심의기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2월 대통령과 문화관광부 장관이 바뀌면서 국어심의회 활동이 갑자기 졸아들고, 7월 이후 선생은 국립국어원의 요청에 따라 국어문화학교 특강 정도만 하면서 국어심의회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김수업 선생은 2004년부터 국어심의회에 들어가 국어에 관한 시책 심의에 관여하였다. 당시 국립국어원장이었던 남기심 원장이 적극 추천하였고, 제1부장(어문연구부장)이던 연세대학교 김하수 교수가 강력히 추천하였다고 한다.


국어심의회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관련된 여러 시책을 심의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어 발전과 보급을 위한 여러 정책을 세울 때, 자문에 응하고 관련 시책을 다룬다. 국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조사하고 연구하며 심의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위원회이다. 국어심의회는 6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국립국어원의 추천을 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위촉한다. 대부분 위원들은 국어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고 있으며 임기는 2년이다. 이들 중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각각 1명씩 선출하며, 국어순화분과위원회를 비롯한 5개의 분과위원회에서 각 분야별 전문위원을 둔다.


하지만 선생이 심의회 활동을 하고 있을 때에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라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름이 문화관광부였고, 국어심의회 분과 위원회도 국어순화분과위원회, 언어정책분과위원회, 어문규범분과위원회 이렇게 셋뿐이었다.


선생은 국어심의회에 들어가기 전부터 일찌감치 국립국어원의 초청을 받아 특별 강연을 하는 등 이러저러한 일로 자주 불려 다녔다. 2003년 11월 즈음부터이다. 당시 국립국어원장이던 남기심 원장과 어문연구부장이던 권재일 교수 등이 선생의 덕망과 학식을 높이 사서 자주 초청하였다고 한다. 그때 선생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맡아 일하고 있었으므로 몹시 바쁜 가운데서도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고 초청에 응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국립국어원장이 이상규 원장, 권재일 원장으로 바뀌었지만, 선생은 한 달에 한두 번 국어원에 불려가 공무원이나 교사를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하거나 학술대회의 토론자로 초청되는 등 한때도 느긋하게 쉴 때가 없었다.


 그 보기의 하나로 ‘국어순화 실천방안 마련을 위한 학술 대회’를 들 수 있다. 이 대회는 557돌 한글날을 맞아 ‘우리 말글의 위기,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주제로 2003년 10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남기심 국립국어원장의 기조 강연으로 시작된 이 대회에서 선생은 ‘국어순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고길섶 문화연대 편집위원장의 발표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여기서 선생은 국어순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선생은 국어심의회에 들어가기 전부터 국립국어원의 요청을 뿌리치지 않고 도움을 주고 있었다.  <계속>

* 김수업선생 1주기 추모사업회, 새벽을 열어 길이 된 사람 빗방울 김수업, 도서출판 피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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