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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야기꽃

외삼촌의 그림자

by 달마루아람

교무실의 딱딱한 의자에 앉은 나는 바깥 풍경을 응시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교정은 회색빛이었다. 잿빛 건물들, 잿빛 운동장, 잿빛 교복을 입은 아이들. 내 입에서 새어 나온 한숨마저 뿌연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징계위원회란 말이 막상 내 세계로 들어오자 낯선 단어가 되어 숨통을 죄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무감각이 더 익숙한 감정이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체념하는 데 익숙한 아이였다.


무거상고 2학년 남재형. 체념에 익숙한 나였지만, 이번 총학생회장 선거운동은 그 체념에 마침표를 찍었다. 거창한 대의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친구를 따라, 지지 후보 유세에 참여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교실이 아니었다. 주먹과 욕설이 난무하는 전쟁터, 이빨 빠진 맹수들의 아수라장이었다. 우리 학교는 학교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무법에 가까운 곳이었다. 이 도시의 건달 지망생들이 모여들었고,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들어와 교내에 뿌렸다. 조폭 심부름으로 용돈을 벌고, 교내 서열은 오직 주먹으로 정해졌다. 사회 조폭 파벌에 따라 교내에서도 은밀한 파벌 싸움이 존재했고, 이번 선거는 그 갈등이 폭발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대립은 격화되었다. 상대편 후보 유세단과의 패싸움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나도 휩쓸렸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휘두른 주먹이 누군가에게 닿았고,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품었던 칼이었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낭자한 피. 우리 측 한 명이 칼에 찔렸고, 그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피해 학생은 경상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찰이 오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관련된 학생들은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들의 부모가 가진 권력과 재력은 학교의 담벼락을 넘어서 단단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유유히 일상생활로 돌아간 그들의 자녀와는 달리, 나는 찌꺼기처럼 유치장에 남아있었고, 학교에 돌아와서는 유독 혼자 징계위원회에 회부 되었다. 모든 범죄의 책임은 내게 쏠리는 듯했다. 회유와 협박이 무섭다기보다 아니꼽고 더러워서 모든 걸 인정해 버린 다음 학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퇴학 처분. 붉은 글씨가 박힌 가정통신문이 빈방의 유일한 빛처럼 나를 비추었다. 어차피 예견된 일이었다.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더 이상 이 잿빛 교정에 남아 폭력과 위선의 공기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제 마지막 절차에 따라 학교에서 나의 유일한 보호자인 외삼촌의 얼굴을 볼 차례였다. 외삼촌은 평소 내게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았고, 나 역시 외삼촌에게서 어떤 희망도 찾지 않았다.


외삼촌, 김기범. 쉰 줄에 접어든 백수 외삼촌은 나에게 무관심했다. 거칠고 무정한 성격 탓에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은 항상 삐딱했다. 외삼촌은 한때 형사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외삼촌은 그랬다. 아주 잠깐 형사를 하다가 비리를 저질러 징계를 먹고 옷을 벗었다는 말을 어른들 귀동냥으로 주워들었을 뿐이었다. 그 후로 그는 내가 아는 한, 늘 무직이었다.


외삼촌의 삶은 비밀스러웠다. 내가 잠들기 전에는 결코 집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밤늦게 들려오는 쿵, 하는 현관문 소리가 외삼촌의 귀가를 알리는 유일한 신호였다. 때로는 일주일, 달포가 지나도록 귀가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의 방에서는 늘 눅진한 담배 연기와 며칠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런 외삼촌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고,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밥맛마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비리나 저지르고 쫓겨난 주제에.' 그의 더러운 몸과 행동거지는 그의 경력을 너무도 완벽하게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나의 학교생활에 대해서는 일절 묻는 법이 없었고,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내가 학교를 가든 말든, 퇴학을 당하든 말든, 외삼촌은 늘 무심할 태세였다. 나의 책가방 옆에서 펼쳐 놓은 문제집은 외삼촌에게 그저 차가 막힌다며 내뱉는 짜증 섞인 한숨보다도 가치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낡은 운동화 차림의 그가 어디선가 가져온 듯한 반짝이는 고급 볼펜으로 자신의 더러운 손톱을 긁어내거나, 뜬금없이 오래된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볼 때면, ‘어디서 주워 온 거지? 또 어디서 비리라도 저질러서 얻어온 건가?’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어쩌다 외삼촌이 늦은 새벽 거실에서 낯선 이와 작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지만, 이내 또 사채 독촉이겠거니 하며 나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퇴학 통보를 받은 날부터 나는 텅 빈 방에서 말없이 짐을 정리했다. 며칠이라도 훌쩍 이 역겨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낡은 교복과 빛바랜 책들이 나의 학창 시절을 대변하는 듯했다. 마지막 등교일, 나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텅 빈 복도를 걸었다. 홀가분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서운함이 교차했다. 이제 정말 혼자가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남재형!”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학생주임이었다. “너…. 외삼촌 말이야, 뭐 하시는 분인지 물어봐도 돼?”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학생주임을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더러운 백수라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의 냉랭함 대신, 당혹감과 함께 다소 비굴한 기색이 비치었다. “네 퇴학 처분 말이야 교장 선생님이 반려하셨단다. 알고 보니 범인은 딴 놈이더구나.” 마치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침 냄새가 밴 너스레를 떨어댔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퇴학 취소? 이런 일도 취소가 되나요. 이참에 전 그냥 퇴학했으면 좋겠는데요. 야, 미안하다. 좀 더 잘 챙겨야 했었는데. 학생주임의 눈빛이 더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의 눈빛도, 말투도, 말뜻도 죄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냉소적인 시선으로 깔보던 낯빛이었는데,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때였다. 교장실 문이 스르륵 열리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삼촌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깔끔한 물색 양복. 번쩍이는 고급 수제 구두.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카락에서 은은한 남성 향수 향이 풍겨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잔뜩 굽신거리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는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넓은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옆을 지나던 교감 선생님과 교무부장 선생님마저 얼어붙은 듯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교문 앞을 지키던 덩치 큰 경비원은 평소의 오만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외삼촌을 향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서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나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둡고 더러운 작업복 차림으로 밤늦게 귀가하던 모습만 기억하는 외삼촌이, 내 눈앞에서 고급 양복을 차려입고 교장 선생님의 극진한 배웅을 받고 있었다. 외삼촌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그림자가 느껴졌지만, 이제 그 그림자는 어둡고 무정한 백수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이와 위압감이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남자의 그림자였다.


한번은 외삼촌 꿈을 꾸었다. 독감에 걸려 사나흘을 앓던 중에 신열이 가장 높았던 날 밤이었다. 나는 빼꼼히 열린 방문 틈으로 거실에서 외삼촌이 누군가와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외삼촌은 만지작거리던 비싼 볼펜으로 무언가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외삼촌은 비리 경찰의 뒤를 캐는 감찰관이었다. 이후 스쳐 지나듯 들었던 소문 - 외삼촌이 '경찰 내부의 비리를 파헤치는 감찰관'에 배속되었다는 알 수 없는 소문 - 을 접했을 때도 그저 그때의 그 꿈이라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다. 비리로 옷 벗은 무능한 백수가 무슨 수로 그런 보직을 맡을 수 있겠냐는 게 나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 이 광경이 현실이라면 그게 꿈이 아닌 생시였단 말이 되는 것이다. 충격과 혼란, 그리고 그동안 외삼촌을 향했던 나의 어리석은 오해에 대한 배신감마저 밀려왔다. 외삼촌은 나를 스쳐 지나며, 말없이 나의 어깨를 툭, 하고 한 번 쳤다. 짧고 무심한 터치였지만, 그 순간 나는 심장이 낯설게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 손끝에는 이상하게도 따뜻함과 냉기가 동시에 배어 있었다. 마치 내가 알던 세상과 알지 못하던 세상이 그 짧은 접촉 안에서 맞닿은 듯했다.


그가 중앙 현관을 나서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는 단순히 한 남자의 형상이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하고, 혐오하고, 그러나 결국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힘의 실체’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외삼촌이 두르고 있던 어둠은 부패의 흔적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감추는 거대한 베일이었다는 것을. 그때부터 내 안에서 무언가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노도, 부끄러움도 아닌 이해였다.


나는 이제 세상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그 경계에 진짜 인간이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그림자는 내 발끝까지 스며들어, 내가 이제껏 알던 세상의 색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이제는 회색도, 검정도 아닌, 어딘가 섬세하게 빛나는 어둠. 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어른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느꼈다.


외삼촌의 그림자.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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