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여름, 남쪽 끝 바닷가 마을은 짠바람과 비린 파도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골목을 돌면 작은 잡화점 하나가 있었고, 그 진열대 맨 위 칸에는 햇살 한 조각처럼 노랗고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카스텔라 빵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갓 일곱 살 나이로 깡충거리며, 온동네를 누비며 쏘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맞닥뜨린 돌돌말이 해무늬! 그 부드럽고 달콤한 유혹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이름을 부르듯 반짝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 키 작은 까치발을 들어도 손끝에 겨우 닿을 듯 말 듯한 높이에 있었다. 내 손바닥은 조그만 조개껍데기 같아, 그 부드러운 빵 하나도 온전히 거머쥐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엄마의 주름진 손등은 늘 그 부름을 막아섰다. 마른 멸치와 콩나물국으로 간신히 이어가는 식탁 위에는, 그 빵 한 조각조차 놓일 자리가 없었다. 엄마는 “그건 부잣집 아이들이나 먹는 거다”라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그 손길은 멸치 뼈처럼 앙상하고 부서질 듯 떨렸다.
어느 날, 머리칼이 쨍하게 달궈질 만큼 햇살이 매서운 오후였다. 엄마는 장독대 옆에서 생선을 손질하며 바다를 등지고 있었다. 나는 마당 돌멩이 위에 선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 장롱문을 열었다. 엄마 치마 속에 숨겨둔 지폐는 내 손바닥보다 훨씬 컸고, 그 순간 심장 소리가 생선의 아가미처럼 꿀꺽거렸다. 손금 사이로 소금물 같은 땀이 미끄러졌다.
가게 할머니는 내 꼬깃꼬깃한 손과 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디서 이런 돈이 났을꼬…”
“엄마가 사 오라 캤어예…”
거짓말에 익숙하지 못한 내 목 안에서 조개껍데기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봉지를 쥔 손은 파도에 흔들리는 작은 배처럼 떨렸고, 나는 마을 끝 갯바위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뒤꿈치는 자꾸만 벗겨졌고, 발바닥엔 모래가 파고들어 쌓였다.
갯바위에 도착해 봉지를 열자, 노란 카스텔라는 바닷속 꽃 소라처럼 둥글게 말린 채로 눈부시게 부드러웠다. 첫입을 베어 문 순간, 혓바닥 위에 퍼지는 달콤함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을 만들었다. 연거푸 몇 입을 베어 물었는지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명치께가 눌리는 듯 숨이 막혔고, 묵직한 무게가 온몸을 죄어 왔다. 부드러운 빵의 촉각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수록 속을 긁어내는 사금파리처럼 아프고 따가워졌다. 한 입, 또 한 입. 처음의 황홀은 점점 밋밋하고 무감각한 맛으로 변했고, 혓바닥은 그 변질된 단맛에 몸서리를 쳤다. 달콤함의 가벼움과 숨 막히는 무게감이 한데 뒤엉킨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때였다. 멀리 교회 종소리가 바람을 타고 실려 왔다. 처음엔 부드러운 물결 같더니, 점점 천둥처럼 둔탁하고 크게 울렸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한 얼굴이 바닷가에 쪼그린 내 죄를 내려다보며 호통치는 소리 같았다.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종소리는 내 안을 파고들어 죄상을 낱낱이 헤집었다.
눈물이 콧잔등을 타고 흘렀다. 혀 위의 달콤함은 이미 내 안에서 죄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억지로 삼키려 했다. 그러나 더는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다. 손가락은 힘없이 떨렸고, 입가에 묻은 단맛의 흔적을 바닷바람이 지워갔다. 처음의 희열은 한없이 찬란했지만, 그 뒤를 따른 고통은 참혹했다.
주머니 속 남은 동전은 거칠고 차가웠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웠으므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에게 빵을 사고 남은 동전들을 쥐여주었다.
“너 가져.” “너도.”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 손을 받아들였지만, 그 순간에도 내 속은 텅 비어 있었고 몸이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파도처럼 몰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은 내 허영을 비웃는 듯했고, 나의 죄를 덮어주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손질하던 칼을 내려놓고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바다의 밑바닥까지 꿰뚫을 듯 깊었다.
“가게 할머니 다녀갔다. 나머지 주리는 오데다 숨겼노!”
그 목소리는 칼끝처럼 차가웠고, 내 속살을 바로 찌르는 듯했다.
“몰라… 몰라…”
혀 끝에 남은 카스텔라의 단맛은 이제 독처럼 쓴 신물이 되어 입안 가득 고였다.
그날 밤, 나는 알았다. 달콤함과 죄는 언제나 함께 오고, 아무리 달아도 결국 내 안에서 썩어간다는 것을. 밤바다는 쉼 없이 울었고, 내 작은 영혼은 밤새도록 파도에 잠긴 조약돌처럼 시달렸다. 까치발로 겨우 올려다보던 빵처럼, 나는 아직 너무 작았다. 세상을 삼킬 만큼 배고팠고, 그만큼 죄를 삼키는 법도 서툴렀다.
그해 여름, 바다는 내 죄보다 더 깊었고, 내 욕망보다 더 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