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요일 저녁,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찾으러 엄마 집에 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처음 맡아보는 강하고 역한 누린내가 온 집 안을 뒤덮었다.
중문을 지나자 노모가 거실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표정은 멍했고, 시선은 어딘가 허공을 떠다녔다.
주방 조리대 쪽에서는 커다란 냄비 하나가 끓으며 붉은 불꽃 위에서 부글거리고 있었다.
“엄마 뭐 끓이세요?”
“오냐, 내 새끼… 배 고프제? 니 좋아하는 닭 삶는다…”
그런데 아내가 작은방 쪽으로 달려가더니 비명을 질렀다.
“여보, 솔이가 없어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엄마, 애 어디 있어요?”
노모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배 고프지야… 다 되었을 끼다… 닭 묵고 가거라…”
라고만 되풀이했다.
아내는 얼굴이 잿빛이 된 채 주방으로 달려가 냄비 뚜껑을 열었다.
“으악!!! 여보!!!”
금속 뚜껑이 바닥에 떨어지며 큰 소리를 냈고, 아내는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그녀를 향해 뛰어가려다가,
그 순간 가슴 한가운데를 붙잡은 듯한 공포가 치밀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냄비 안의 ‘정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을 수도 있었던 어떤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공포가 정점으로 치닫는 그 찰나—
어릴 적 어머니에게 들었던 끔찍한 옛이야기 한 토막이 번개처럼 떠 올랐다.
2
옛날 옛적…
지신의 손자 감청이가 있었제.
하늘같이 귀한 오대 독자였고, 산속 절간에 보내져 공부하던 아이라.
그러던 중, 집에서는 할애비가 큰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했어야.
감청이 부모는 용한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사정을 호소했다제.
병을 고치려면 머리 둘 달린 닭 머리뼈가 필요하다 해서 기가 찼지마는,
그보다 더 무서운 ‘둘째 방도’는 차마 사람이 할 수 없는 짓인기라.
할 수 없다고 버티는 감청이 아버지를,
점쟁이는 “천하에 불효 자식놈”이라며 내쫓다 안 그나.
부모는 하는 수 없어 그 길로 아들을 데불로 절간으로 떠났제.
끝내 감청이는… 커다란 가마솥에 몸을 누이고,
아버지는 뚜껑을 덮고 올라타 이레 밤낮으로 불을 땠다고 한다…
부모는 그 약으로 병든 할아버지를 살렸겠지만서도,
자식 삶아 쥑인 죄책감에 두 눈을 잃어뿌릿다꼬 안 하나.
어릴 적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까닭도 모른 채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지금,
뭔가가 끓고 있는 저 냄비를 바라보며
그 끔찍한 장면이 겹쳐 떠오르고 있었다.
3
나는 심호흡을 하고 냄비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뚜껑은 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었고,
뭉그러진 노란색 무언가가 탕 속에서 흐물거리며 떠올랐다.
가스 불을 끄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거의 녹아 형태가 사라졌지만, 머리 부분만 남아 있는 그것은
솔이가 늘 들고 다니던 ‘삑삑이 닭 인형’이었다.
그제야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때 등 뒤에서 초인종 소리가 났다.
현관문 앞에는
경비 아저씨가 솔이를 데리고 서 있었다.
놀이터에 혼자 놀고 있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세 살배기 딸아이를 끌어안고 울먹였고,
나는 믿기지 않는 안도감과 함께 어디에도 숨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상황 파악을 마친 낯익은 경비원이 담담히 말했다.
“제가 드릴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님… 이제는 정말 병원으로 모셔야 하지 않을는지요?
집에 혼자가 계시는 것도 위험하실 테고, 가뜩이나 저 어린아이까지요.”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 떠올랐던 구전 설화의 잔상은
내가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
앞으로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더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끓던 냄비 위로 남은 김이 천천히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