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민 Apr 27. 2021

숨은 지도자

- 존 스타인벡의 '민중의 지도자'를 읽고 1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잘 읽어 보셨나요? ‘민중의 지도자’라는 제목은 어떤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일까요? 이 소설을 두고 생각하면 당연히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아니겠어요? 과거 서부 개척 시대에는 분명히 할아버지가 민중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이미 흘러가 버렸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요즈음 민중의 지도자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죠디의 아버지 카알은 어떨까요? 카알에게서 민중의 지도자다운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을까요? 그도 아니라면 혹시 죠디는 어때요? 죠디는 열정으로 가득 찬 할아버지와 현실 감각으로 뭉친 아버지 사이에 있는 인물이잖아요.


어떤 사람이 민중의 지도자일까 하는 물음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하는 물음과 맥이 닿아 있어요. 누가 이 소설의 주인공일까요? 문학도 예술이기에 예술이 지닌 다면적인 성질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주인공을 누구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눈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인물이 움직이는 모습(행위)을 보고서야 우리는 그 속성을 알 수 있는데, 그 모습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아우르면서 이루어지는 법이죠. 그러면 지금부터 주요 인물인 할아버지, 아버지, 죠디를 차례대로 살펴 볼까요.



<나는 그들의 대장이었다.>


할아버지는 분명 서부 개척 시대에 민중의 지도자였기에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보면 어떨까요? 할아버지가 없다면 이 소설의 알맹이인 대륙 횡단이야기도 없겠죠.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도 일어나지 않을 거고요.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는 핵심 인물이라 할 만해요. 그리고 ‘민중의 지도자’라는 제목도 사실은 할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던가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주인공일 수도 있겠는데,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라면 대립되는 인물은 당연히 카알이 되겠고, 이들의 대립 기준은 대륙횡단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새 세대들은 대륙횡단 시절의 이야기를 너무 가치 없게 받아들이는 반면, 할아버지는 요즈음 사람들이 너무 나약해졌다고 보고 있어요. 할아버지에게 대륙횡단은 대단히 거창하고 값진 일이었어요. 더욱이 할아버지는 그들의 대장이었잖아요. 할아버지 생각에는 새 세대들이 너무 나약해서, 생쥐사냥 같은 짓이나 하는 졸렬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카알이 할아버지를 비난하다가 할아버지가 나타나자 말을 바꾸는 것도 생쥐 사냥이나 하고 있을 사람들이나 할 짓인 거죠.


자연의 시간이 말해주듯이 모든 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갑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과거를 비껴 돌아온 것은 없어요. 그런데 카알은 철저하게 과거를 부정하고 비판하려고만 듭니다. 시간을 과거-현재-미래 세 덩이로 나눌 수 있다면 할아버지는 당연히 과거 쪽 사람인 셈입니다. 서부 개척 시대에 민중을 이끌었던 일은 과거임이 틀림없으니까. 또 이 시간을 하루를 기준으로 본다면 할아버지는 하루 가운데 토요일 저녁 시간의 주인인 셈이에요. 할아버지가 목장에 오는 시간이 해가 다 져 가는 무렵이어서 그 시간이 노년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저녁 식사 시간과 그 이후에 벽로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함으로써 분위기를 이끌려고 하잖아요? 죠디를 빼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러나 대어 놓고 반발하는 사람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일단은 할아버지의 시간이라 할 만하죠. 하루 중에 가장 늦은 시간인 저녁 혹은 밤 시간이라는 점에서 늙은이의 시간과 맞아떨어진다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가장 활기차던 시간이 식사를 마친 뒤의 시간이었잖아요? 그 반대로 할아버지가 가장 의기소침해 하던 때는 언제였죠? 네, 아침이었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과거, 저녁 혹은 밤에 어울리는 인물임을 알 수 있겠는데, 세대로 본다면 구세대인 셈이 되겠네요.


그러면 할아버지와 관련된 공간은 어디일까요? 이 이야기의 공간은 크게 대평원, 목장, 집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그 공간들은 수평적으로 짜여 있어요. 아래위가 아닌 안팎으로 짜여있다는 거죠. 따라서 집을 기준으로 집 안과 집 바깥, 목장 안과 목장 바깥, 대평원 안과 대평원 바깥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어요.


이 가운데 할아버지가 전성기를 누렸던 바로 공간이 대평원이에요. 따라서 대평원은 할아버지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공간인 셈이에요. 대평원은 목장에 비해 매우 넓고도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대평원은 그러니까 과거 시점에서 부를 만한 이름이고, 현재 시점에서는 목장 바깥이 할아버지 공간이겠어요.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파멸하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할아버지의 뜻이 좌절되고 기분마저 씁쓸해지고 마는 서글픈 이야기입니다.  <계속>

* 주요섭 외 공편, 현대영미단편소설감상, 한일문화사 [원제] Understanding Short Stort, 1959.                                   






















작가의 이전글 혼인축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