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다섯 살이던 그때 그녀는 신경증 환자처럼 생각되었다. 자살을 꿈꾸고 있다던 그녀에게서는 늘 '이드' 냄새가 났다. 육체적 욕구와 본능적 충동으로 움직이는 마음의 밑바닥, 외부의 요인에 개이치 않고 욕구의 어떤 조건적 또는 즉각적 목표를 향하여 운동하는 정신 요소, 반사회적 쾌락 원리로 작동하는 동물적 속성! 프로이트가 인간의 모든 악을 찬양하기 위하여 이드라는 개념을 찾아냈다기보다, 인간의 마음을 일정한 통계 아래 두려는 의도였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무성해져가는 성교육이 성범죄의 폭증을 증명하듯, 우리의 본능적 엔트로피는 극한의 지점을 향하여 폭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본능의 맹목적 충동과 초자아의 도덕적 억압을 중재하는 구실을 하던 자아가 이미 지쳐 버린 탓일까. 우리에게 현실 원리는 초자아의 경계 근처로 안내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의 손아귀에 붙잡혀 질식 중에 있다. 목졸리고 있다.
그녀는 운명의 불행한 와류 속에 휘말려 있었다. 그녀는 한 남자에게서 내팽겨쳐진 자신을 자괴감으로 곱씹으며 죽음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녀가 일으키는 금기 비하적인 온갖 삶의 블랙홀 속으로 나는 점점 중독되어 갔다. 12년이 지난 1991년 겨울 현재, 그녀는 아직도 나에게 이드로 얼룩져 있다. 나의 이드는 서울이라는 거대하고 완벽한 익명의 성(城)을 동경한다. 남해 금산과 서울특별시 사이의 거리는 시원적 거리감보다도 멀지만, 어쩌면 벼락같은 지척일 수도 있다. 나는 상사바위에서 자아가 강요하는 부끄러움을 떨쳐 버리고, 옴몸 던져 하늘을 날며 한바탕 활개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녀가 서울로 갔다는 풍문을 들은 것은 스무 살 때였다. 세상의 부조리함과 모순됨에 쫓기며 방황했던 갯벌 같은 시절이었다. 그때에도 나는 바다가 아닌 상사 바위에 앉아 있었다. 천심 절벽, 아득한 발치 아래에는 거대한 바다가 검은 혀를 날름거렸다. 바다 때문에 생긴 내 모욕감의 뿌리는 나를 산에 오르게 하였고, 산 정상에 서자 다시 바다가 유혹했다. 나는 산행을 하면서 늘 그녀의 바다를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바다 같은 그녀를 아마도 나는 그리워했을 것이다.
밀물이 차 오르고 들물 위에 달이 비췰 때 그녀는 화필을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나에게 그대로 석고상이 된 채 허공만 바라봐 주기를 원했다. 그녀는 나의 시선을 껌처럼 떼어가며 사랑인지 미움인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녀 손에 들린 4B 연필은 끊임없이 나의 요구를 거절하듯이 움직였다. 캔버스에는 알 수 없는 속도의 크로키가 미친 듯이 질주하고, 내가 잠시 그녀의 마음 속으로 몇 차례 다녀온 후면, 무심한 초상이 달 그림자처럼 어둑하게 드리워져 있곤 했다. 그래도 그때 나는 행복하였는지 모른다. 그녀가 가장 불행한 시절이었음을 잘 알지만, 그녀에게로 가는 길목에 마음의 출입문은 잠겨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마 충분히 행복하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바깥에는 바닷바람이 모질게 몰아쳐 출입문을 쾅쾅 때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깜짝깜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때마다 그녀의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들이 발그레한 볼 쪽으로 톡 하고 떨어지곤 하였다. 풀어헤쳐진 수천 가닥의 머리칼이 얼굴에 헝클어져 있었다. 왜 그 기억만은 정지화면처럼 멈춰선 채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달이 기울어지며 썰물을 잡아당길 무렵이 되면 우리는 빛이 잘 들지 않는 자취방에서 그렇게 며칠을 보내곤 했다. 그녀는 버림받은 자신과 바닷바람 같이 모진 그 남자를 저주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바다였을까? 달 그림자이기라도 했을까? 그저 열다섯 살짜리 석고상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녀 생각에서 깨어난 것은 ‘상사 바위’를 쓴 사람에 대하여 간략한 소문을 들으면서부터였다. 그런 다음 ‘상사바위’라는 글에 얽힌 이야기도 들었다. 수필의 정통성을 파계했다는 혹평을 받았던 것과 그러나 전하는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최고라는 것, 글에 얽힌 주변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그래서 글쓴이를 생각에서 밀어내고 다시 그녀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잊고 있던 나의 불멸한 이드를 되찾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생각해 낸 것은 틀림없이 비극일 것이다. 나의 건강한 사회성을 무릎 꿇리고 자신만만했던 자아의 약점을 스스로 들추어낸 셈이 되었으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