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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y 31. 2021

유이태 이야기

- 산청군의 옛이야기 2 <옛이야기 속으로>

유이태는 거창군 위천면 사마리에서 출생했다. 유이태는 이 사마리에서 출생하여 후년에 산청군 생초면 신연리로 옮겨 살았는데, 그의 의술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고성대명이 널리 알려진 명의로 유명하다.


그는 어려서 거창군 위천면 어나리에 있는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였는데, 그 재주가 총명했다 한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이곳으로 글공부를 하러 올 때나 갈 때에 웬 아리따운 처녀가 나타나서 유이태에게 추파를 던지며 유혹을 했다. 유이태는 처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으나 마음을 굳게 다지고는 그 처녀를 본체만체 하곤 그냥 지나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달이 휘영청 밝을 때, 서당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바로 아래에 있는 척수대 근처에 이르렀을 때 예의 그 아가씨가 그의 앞을 가로 막고는 눈물을 흘리며, “평소에 도련님을 사모해 왔는데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소녀를 안아 주시오면 원이 없겠나이다. 만약 오늘밤 도련님이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을 것 같으면 저는 척수대 아래 소(沼)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제 사모의 정을 나타내 보이겠나이다.” 하고 애원했다.


소녀의 청이 너무나 간절한 것이고, 그 미모 또한 이태 소년을 황홀하게 만들 정도로 청염한데다가, 휘영청 높이 뜬 밝은 달이 소년의 마음을 깊은 정감에 빠지게끔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기에 마침내 유이태는 척수대의 소나무 숲에서 그녀를 안았다. 소녀의 부드럽고 가느다란 몸을 안자 그녀의 향긋한 체온이 유이태의 온 전신으로 퍼지면서 그 소녀가 가까이 하는 입술에 자신도 모르게 끌리어 그의 입을 그녀의 입술에 대었다. 그랬더니 형언할 수 없는 황홀함과 신비스러울 만큼 향긋한 기분에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이 소녀와 입맞춤을 할 때 그녀의 입술 속 구슬이 유이태의 입 속으로 굴러 들어왔다가는 다시 그 소녀의 입속으로 흘러들어가고 했는데, 이때의 감미로움은 온 몸에 퍼져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러기를 계속하다가 그녀는 유이태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날부터 오히려 유이태가 그 소녀를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척수대에서 만나 황홀한 쾌락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소녀와의 만남이 있고 나서부터 유이태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갔고, 안색도 병색이 되어 창백한 모습이 완연히 드러났다. 이것을 이상히 여긴 서당 훈장이 하루는 유이태에게 그 사연을 물으니 처음에 주저하던 유이태는 얼굴을 붉히며 그간의 처녀와 있었던 사실을 모두 이야기했다. 유이태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훈장은 한 동안 말이 없다가, “오늘밤 그 처녀를 만나거든 처녀의 입안에 있는 구슬이 너의 입속으로 들어오거든 즉시 그 구슬을 삼켜라. 만약 그 구슬을 네가 삼키지 않으면 너는 반드시 죽게 된다.”라고 했다.


스승의 이야기를 들은 유이태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척수대에서 그 처녀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입맞춤을 계속했는데, 구슬이 몇 번을 자기의 입속으로 굴러들어 와도 전신을 감싸고 드는 쾌감으로 구슬을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승의 심각한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자 유이태는 눈을 딱 감고 입 안으로 흘러들어 온 구슬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순간 고요한 밤하늘을 찢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던 그 처녀가 한 마리의 백여우로 변하더니 어둠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유이태도 한동안 얼이 나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수습하여 곧 바로 스승에 달려와 시종 이야기를 하였더니, 다음 날 측간에 가서 그 구슬을 찾아서 잘 간수하라고 했다. 스승의 말대로 유이태는 그 다음 날 뒷간에서 구슬을 찾아 자기 몸에 소중히 간직을 했는데, 그로부터 그 처녀는 나타나지 않고 유이태의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구슬을 몸에 지니고 나서부터 유이태의 영민함은 날로 더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총기를 지니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의서를 열심히 공부하여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그 성가를 떨치게 되었다.(산청군 생초면)


출처 : 산청군지편찬위원회, 산청군지(제2장 680~725쪽), 금창인쇄사, 2006, 686~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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