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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Jun 24. 2021

이명산 이야기

- 하동군의 옛이야기 2  <옛이야기 속으로>

이명산은 진교면과 북천면, 양보면 3개 면의 어우름에 있는 높이 570미터의 경계봉이다. 양보면 쪽에서 달구봉, 천왕봉, 비아봉 순으로 세봉이 줄 지워 서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하동현 산천 조를 보면 


이명산 고개는 곤양현에서 이십 리 거리에 있다.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서울(신라 서울 경두)을 비호하는 산인데, 그 산정에는 옛날 용소가 있어서 달구지(달구봉)를 가지고 서울 사람을 많이 눈 멀게 하여 사람들이 빛을 못 보게 하는지라, 불에 달군 쇠 돌로써 깊은 못의 이무기를 곤양의 진제에 있는 깊은 못으로 이르게 하였더니 그 후로는 사람이 눈이 멀지 아니하였다 한다.


란 기록이 있는데 이명산은 문무왕 9년(669)에 삼국 통일 과업을 이룩한 후 신라의 서울 경주(동경)를 비보하는 산으로 중요시하면서 이명산의 전설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명산의 주봉인 달구봉(547미터) 정상에 깊은 못이 있어 이 못에 득천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인 이무기(蛟龍)가 있어 득천하지 못한 분풀이로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심술이 나면 물 위로 목을 길게 내밀어 방향을 잡고 강한 독기를 내뿜었다.


그러면 그 방향의 사람들이 갑자기 맹인이 되었기에 이 산이 이맹산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속수무책을 해마다 무사하기를 기원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동안 이맹산 주위 사람들은 제단을 만들어 이무기에게 제물도 바치고 때로는 처녀도 바치기도 하였지만 그 횡포는 변함이 없었다.


어느 날 도승(道僧) 한 분이 마을에 탁발(托鉢)을 왔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불심이 깊은 사람들은 보시를 하지마는 마을 사람들의 안색을 보니 대부분 수심이 가득하기에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시주 나온 어느 부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수심이 가득하니 필시 곡절이 있을듯한데 대체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스님의 물음에 그 부인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예, 스님 다름이 아니옵고 저기 보이는 저 이맹산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이무기가 고개를 쳐들어 독을 뿜어내면 그 방향의 마을에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장님이 되어버리니 우리도 언제 그 화를 입을지 알 수 없어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스님은 마음속으로 ‘고얀 미물이로다. 한갓 미물이 불심 깊은 사람들을 이다지도 괴롭힌단 말인가’라고 한탄했다.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스님이 어느 새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면 “어렵기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스님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얼굴이 환해졌다. 스님은 정색을 하고 이무기를 물리칠 방법을 알려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주민들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여 차근차근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무기는 고개를 쳐들어 동경(경주)을 향하여 강한 독기를 뿜었다. 공교롭게도 왕가 공주의 눈이 멀게 되었다. 임금은 당황한 나머지 전의를 불러 치료를 시켰으나 조금도 치유될 기미가 없자 전국에 방(榜)을 붙여 공주의 눈을 뜨게 한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한 도사 나타나서 말하기를 동경의 곤방(서남쪽)에 이맹산이란 산이 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이무기의 소행 같다고 아뢰었다. 임금은 즉시 많은 사람들을 곤방으로 보내 이맹산을 찾아보니 산정(山頂)에 깊은 못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무기를 잡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전번에 어느 도사가 이 지역 주민에게 이무기를 쫓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에 주민들이 쫓아낼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하들은 도승이 가르쳐 준대로 불에 달군 돌(火鐵石)을 못에 던져 넣기 위하여 인근 주민을 총동원하여 수십 대의 풍구를 산봉우리 위에 설치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풀무 불에 돌을 달구어 계속 못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이레(7일)만에 못 안 수온이 올라가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리면서 못의 물결이 요동치더니 청천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와 폭우가 쏟아지는데 이무기는 뜨거워서 물 밖으로 솟구쳤다.


그 후 이무기는 남해의 해룡이 되어 왜구를 막아주는 용이 되었다. 이무기가 이맹산에서 옮겨간 후에는 공주도 눈을 뜨고 맹인이 생기지 아니하고 광명을 찾았다 하여 이맹산(理盲山)을 이명산(理明山)으로 개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명산 달구봉에는 돌이 불에 달구어져서 녹아 붙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어 이명산이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명산의 용이 옮겨가 득천(得天)을 하기 위해 사다리를 놓았다 하여 민다리(용다리)라 하였고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여 진제 또는 진교(辰橋)라고 하였다고 한다.(하동군 진교면)


출처 :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 하동의 구전설화, 하동문화원, 2005, 357~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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