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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r 21. 2021

동유럽에서 문득 낯선 나를 만나다

- 동유럽여행기 7 <사로잡힌 생각들>

- 독일 속의 동화나라,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 

로텐부르크의 본명은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로 ‘타우버 강가의 붉은 성’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남쪽 버스주차장에서 내려 슈피탈 문으로 들어갔다. 슈피탈 문은 17세기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입구가 낮고 좁아 볼품없었다. 다소 미로 같은 길을 따라가니 성벽을 따라 만들어진 성벽 위 회랑이 나왔다. 회랑의 길목은 좁고 어두웠으며 마침 현지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바람에 비좁기 그지없었다. 회랑이 끝난 곳에서 계단으로 올라서니, 비로소 길잡이님의 목소리가 수신기에서 들렸다.


오르막길의 거리 곳곳에는 기념품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 등……. 꽃으로 장식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반 거리인데도 영화 세트장 같기도 하고 장난감 도시 같기도 하여 몽롱한 꿈속같이 느껴졌다. 소박하고 편안하고 귀여운 간판들이 많아, 어디를 보나 정겨웠고 로맨틱하였다. 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니 마르크트 광장이 나타났다. 마르크트란 시장(마켓)이라는 뜻의 보통명사여서 독일 어느 도시에 가나 있으며, 중심 광장에 시장이 선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사, 시청사 탑, 시의원 연회관, 게오르그 분수, 야곱교회 등이 둘러 자리하고 있었다.


시청사 첨탑의 마이스터 트룽크(술마시는 시장) 시계는 아름다운 이 도시를 지킨 시장을 기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중세의 도시도 한때 잿더미로 변할 뻔한 때가 있었다고 한다. 17세기 독일을 뒤흔든 30년 전쟁 때, 가톨릭군의 지휘관 틸리 백작이 로텐부르크를 점령했는데, 그곳에 살던 소년이 그 지역의 와인을 권했다. 그 와인 맛에 감탄한 백작이 큰 잔"(3.2리터짜리)에 부은 와인을 단숨에 들이키는 자가 있으면 이 도시의 약탈과 파괴를 포기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에 당시 시장이었던 누쉬가 나서서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 며칠 동안 잠만 잤다는 것이다. 결국 틸리는 약속대로 관용을 베풀어 도시를 파괴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틸리는 처음부터 이 아름다운 도시를 파괴할 생각이 없어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길 맞은편에는 줄무늬 벽과 지붕을 한 건축물 아래 성 게오르크 분수대가 있었다. 로마 황제 근위대 기사 게오르기우스는 로마 영토인 시레나 왕국에서 처녀를 잡아먹던 용(드래곤)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해 그 나라를 기독교로 개종시켰으나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온 몸을 찢겨 순교하였다 한다. 유럽에서 말 탄 기사가 창으로 용을 찌르고 있는 것을 보면 게오르크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두어 시간 광장을 중심으로 둘러본 나는 시내로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내려왔다. 길잡이님이 기다리는 지버스 탑을 지나 처음 들어왔던 슈피탈 성문을 통하여 나온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허무하고 씁쓸하였다. 이곳이 여행지다운 여행지로서는 마지막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나, 아직 이 자리에서 매돌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잠시 떠나왔을 뿐, 삶이란 것은 그냥 던져버릴 수는 없는 것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 서먹했던 사람들끼리 정이 들어갈수록 우리의 여행일정은 점점 끝을 향하여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때그때 더 충실하게 보고 듣고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이후 네 시 즈음에 공항에 닿아 표를 끊고 짐을 부치고 일곱 시가 되어 우리를 태운 항공기는 날아올랐다. 한국을 떠나 올 때 덤으로 얻었던 일곱 시간을 다시 반납하고 25일에서 26일로 앞질러 날아와 인천에 도착한 시각은 열두시 이십 분이었다. 열 시간 삼십 분 만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마셨던 2유로짜리 에스프레소의 쓴 맛이 아직 내 입술에서 지워지기 전이었다. 그날 내 항공기 좌석표에는  ‘OZ542 55C’라고 적혀 있었다.


2014년 925()~26()

[독일 테네스버그 숙소(05:10~07:10)-로텐부르크(09:30~11:10)- 프랑크푸르트(11:10~19:00)-한국 인천(19:00~12:20)]

 * 식사 : 기내식(안심스테이크, 스크림볼 에그)     

                                                                                                                                                                

* 참좋은여행사 ‘2014년 이달(10월)의 베스트 여행후기’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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