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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Jul 08. 2021

함양 설화의 짜임과 속살 2

- 함양군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지리산 무당설화」는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 전해오는 지리산 여신 마고할미 이야기이다.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 산신들 가운데 여신은 지리산의 마고할미와 한라산의 설문대할망 뿐이고, 이 두 명의 거인 여신에 관한 전설은 남부지방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백무동에 전해오는 「지리산 무당설화」는 마고할미가 법우화상과 결혼하여 딸 여덟을 낳아 모두 무당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 성모사가 있고 지리산 산신 성모상을 모시고 있다. 지리산 산신설화는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고려시대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에는 고려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 설이요, 둘째는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불타의 어머니 마야부인설이요, 셋째는 무당설이요, 넷째는 법우화상과 무당과의 관계설이다.


법우화상이 성모사 단칸방에서 불공을 드리며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무당이 법우화상을 유혹하기 위해 천왕봉에 올라왔다. 얇은 모시옷 차림에 비를 맞은 무당이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법우화상은 산짐승이 무서워 내치지도 못하고 방에 들이지도 못해 난감했다. 고민 끝에 자고 가도록 허락한 법우화상은 결국 무당의 유혹에 넘어갔다. 법우화상은 불가에서 나와 속세 생활을 하며 여덟의 딸을 낳았다. 무당이 딸을 모두 무당으로 만들어 전국 팔도 무당을 장악하였다. 일 년에 한 번 지리산에서 굿을 벌이는데 천왕봉에 눈이 와서 백무동에서 했다. 그리하여 어머니 무당이 지리산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출처 : 함양군사편찬위원회, 함양군사(3권), 대일윤전인쇄, 2012, 377쪽.)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고할미는 원래 무당이었고, 법우화상은 불승인 것으로 보인다. 무당은 산 아래에서 법우화상을 유혹하기 위해 산 아래에서 산 위쪽으로 올라왔으므로, 속세와 산중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존재, 즉 초월적 세계와 세속적 세계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무당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법우화상은 본래부터 산에 거처하고 있었고, 성모사라는 신성 공간에서 신성행위인 불공을 드리고 있었으므로 속세와는 동떨어진 공간의 존재로 볼 수 있다. 대개 산에 거주하는 신은 천신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속세의 무당이 신성한 남성과 결연하여 신성한 자식을 낳음으로써 지리산 여신이라는 신직을 부여받는 본풀이 구조를 띤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이 남성의 세계에 들어가 그곳에서 결연을 맺는다는 점에서는 오구본풀이와 닮았지만, 그 남성이 물이 아닌 산의 세계에 속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제석본풀이를 닮았다. 


한편으로 무당이 우리의 재래 서낭을 모시는 사제이고 지리산 산신 또한 전통 신앙의 대상이므로, 무당은 오래 전부터 우리 겨레를 돌보아 주던 서낭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법우화상은 말 그대로 불승이므로 외래 불교신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두 인물의 결연은 재래 신앙과 외래 신앙이 습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무당의 행동이 법우화상의 행동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데 비해, 법우화상은 그 결연에 있어서 심각하게 갈등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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