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수)
가랑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이른 아침, 단양 여행을 위해 길을 나선다.
신해운대역에서 07시 38분 청량리행 itx 마음 열차에 탑승한다.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금방 오시리아, 롯데월드가 저 멀리 나타나고 기장역, 임랑 바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스쳐 지나간다.
열차가 남창역에 도착할 즈음,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베트남에서 알고 지낸 지인이 은퇴 후 충청북도 단양 산속에 터를 잡고 호젓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국내 굴지의 S 그룹 임원을 역임한 뒤, 단양의 매력에 이끌려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노후를 즐기고 있다.
단양 지인은 목공 일과 텃밭 가꾸기에 재미를 붙여, 직장 생활할 때처럼 스스로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방과 야외에서 스스로 일을 찾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오랜 기간 단양집 부부와 부부간에 막역하게 지내 온 고등학교 후배가 있다. 이들 부부는 한국에 들를 때면 꼭 한 번은 단양을 방문하는데, 우리 부부보다 하루 먼저 이미 단양에 도착해 있다.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역을 지나니 곧이어 단양이다.
1980년대 중반, 다니던 회사 야유회 행사 때 이후 단양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양역 밖으로 나가니, 우리 부부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제수씨 두 분이 우리 부부 목에 커다란 꽃 메달을 걸어준다. 서프라이즈와 위트가 넘치는 두 콤비답다.
우리 부부를 마중 나온 이 두 부부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단양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중식당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찾은 곳은 2024년 제천시 우수 건축상을 수상한 카페였다.
오랜 기간 잘 관리해 온 듯한 카페 입구의 정원은 형형색색의 꽃들과 빼어난 수석, 분재, 조형물들로 조성되어 있어, 저 멀리 발아래 펼쳐진 충주호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상2리 마을 초입에서 구불구불 경사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 예쁘고 하얀 2층 집이 한 채 나타난다.
이 집을 자신들의 집으로 여기는 들고양이 5 마리가 차 소리를 듣고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긴다.
우리는 거실에 자리를 잡고, 귀촌 생활에 대한 질문과 답변,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주고받는다.
전날 민락동 회 센터에서 장만해 온 광어, 전어회가 첫날 예상 밖의 인기 저녁 메뉴가 되었다.
식후에는 마당에 설치된 벽돌 화로에 장작불을 피우고 불멍을 즐겨 본다.
머리 위에 하나 둘 나타나는 별들도 조용히 우리 곁에 내려앉는다. 이 순간 별들은 그리운 이들이다.
포일에 싼 옥수수, 고구마와 쥐포를 장작불에 구워 먹어 보기도 한다. 색다른 경험이다.
준비된 프로그램인 듯한 실내 노래방이 오픈되어, 나도 수년만에 마이크를 잡고 옛 기억을 더듬어 아는 노래 몇 곡을 불러본다.
주인장의 클래식 기타 연주에 맞춘 노래를 끝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 날 아침, 발아래 병풍처럼 펼쳐진 초록 산 허리에는 새하얀 운무가 걸려 있고, 거실 2층 유리창문 너머에 나타난 평화로운 뭉게구름 또한 탄성을 자아낸다.
지인 집 주변 산책과 아침 식사 후, 고구마 캐기 작업이 있었다.
최근 산돼지들의 텃밭 공격으로 인해 고구마 수확은 겨우 한 소쿠리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와이프들은 어느새, 고구마 대신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3 부부가 담소를 나누다, 우리 부부의 기차 시각까지 잠시 남은 시간 동안 루미큐브 게임도 해 보았다.
한국에서 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오랜만에 하는 만큼 늘 새롭지만 재미도 있다.
해운대로 돌아가는 우리 부부를 위해 두 부부가 단양역 플랫폼까지 따라와 배웅을 한다.
기차가 떠나는 순간까지 남아 손을 흔드는 이들의 모습에 진한 정을 느낀다.
베트남 후배 부부야 자주 보는 사이지만, 다 함께 정기 모임을 하자고 했으니, 단양 지인 부부도 향후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볼 인연이다.
선한 사람들과 함께 할 여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