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일)
지지난 주말 초등학교 (예전의 국민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모교에서 열렸다.
54년 전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교정을 찾았다. 왠지 모르게, 소풍 가기 전 날 같은,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 합계출산율 0.7~0.8명의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로, 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모교는 곧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한 학급에 80명, 한 학년에 13반에다, 오전반과 오후반 마저 있을 정도로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우리 모교로부터 인근에 3개의 학교가 분리 신설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을 정도로 모교에 학생이 없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행사시각과 무관하게 느린 걸음으로 모교에 도착해 보니, 정문 맞은편 본부석에, 이번 체육대회가 '15번째 총동창회 체육대회'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운동장 외곽으로 캐노피 천막이 'ㄴ'자 모양으로 설치되어 있고, 기수별로 동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눈에 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보인다. 35회 우리 동기들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는다. 우리 동기들은 20여 명이 참석해 있었다.
체육대회는 행사순서에 따라 한창 진행 중이다.
테이블에는 도시락과 음료들이 준비되어 있고, 목소리 톤이 올라간 몇몇 친구들은 기분 좋은 술잔이 이미 몇 순배 돌았음을 알려준다.
나는 졸업 후 54년 만인 금년 2월에 초등학교 동기 모임에 처음 참석했었다.
9월에 소수가 모인 번개 모임이 한번 있기는 했으나, 이번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공식적인, 동기들과의 두 번째 만남이다.
초등학교 동기들과의 만남은,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아스라한 나의 추억 여행이다.
조금씩 되살아나는 동기들과의 옛 추억들을 통해 그 시절 내 모습을 반추하는 재미를 즐겨본다. 서로가 뚜렷이 기억하는 옛 일을 회상해 낼 때면, 높아지는 목소리 톤과 함께 빛의 속도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간다.
울산에서 온 성환이를 보면 초등학교 시절, 골목시장통에서 나에게 춤을 가르치던 일이 떠오르고, 원삼이를 보면 박상옥 선생님의 방과 후 무료 주산반 수업용 교재를 사러 둘이서 영주동 터널을 걸어갔던 일이 생각난다.
헌영이는 쌍둥이 형 시영이와 헷갈려 실수한 일이 떠오르고, '할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흰머리 동영이는 찜뽕 놀이 때 늘 조그만 고무공을 가장 멀리 쳐서 보내던 일이 생생하다.
그 조그만 꼬마들이 세월이 흘러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만나 옛날 일들을 회상하고 있노라면, 흐릿해진 눈동자마저 순간적으로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특히 우리 동기들은, 약육강식의 거친 세상에서 적자생존의 세월을 거친 베이비 부머들로서, 이 초등학교 동기 모임은 이해를 따지지 않는 따스한 옛정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이기에, 이 만남의 시간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이 옛 친구들이 모이는 날이면 약속장소로 발길이 저절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 기쁘고 즐거운 날, 동기 한 명이 계단에서 굴러 쓰러져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주위에 있던 후배 한 명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자동심장충격기까지 시도를 해 보았으나 의식과 호흡이 돌아오지 못했는데, 119에 실려간 뒤에도 결국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그는 영면에 들고 말았다.
발을 헛디디는 조그만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한 것이다.
졸업 후 처음 만나 아직 어색함을 떨쳐 버리지도 않은 사이지만, 만나자마자 영원한 이별이라니 황망하기 그지없다.
우리 세대들이 아직 마음은 청춘이지만, 이제는 언제나 일상생활 속 안전사고에 조심해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나의 지인 모두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친구의 명복을 빈다.